논단

독립기념관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8-13 23:43
조회
3364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21번째 원고입니다(090813).


독립기념관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외국의 교회와 오랫동안 교류를 하다보니 매우 빈번하게 외국 손님들을 맞이한다. 천안에서 그 손님들을 맞이할 때 독립기념관 탐방은 필수 코스에 해당한다. 일제의 가혹한 지배와 그에 맞선 독립운동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오랜 역사와 오늘의 번영상까지 보여 줄 수 있으니 외국 손님들에게 독립기념관을 안내하는 것은 여러 모로 유익하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외국손님들은 예외 없이 깊은 인상을 받는다. 특히 일본 손님들의 경우에 그 받는 인상의 강도는 더욱 깊은 것 같다.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으니 만큼 독립기념관 탐방은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종종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여 일본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일본인을 볼 수도 있고, 단체로 방문하는 일본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탐방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언젠가 교류 관계로 자주 왕래하는 일본 목사님으로부터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인 그 아들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난 다음 얼굴이 새파래지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처참한 고문 장면을 재현해놓은 것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전시 내용에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일제의 지배가 그만큼 가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진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린 학생이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쉽사리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자, 봐라! 너희 나라가 그렇게 가혹한 짓을 했으니 반성해라.’ 그런 효과를 그만큼 강렬하게 심어준  것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독립기념관을 안내하고 난 다음 늘 뭔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기념관에는 평화의 전망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없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보여주고 희망하는 전시관은 있지만 평화의 전망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없다. 동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그리는 전시관이 없다. 늘 아쉬웠던 마음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고난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역사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혹여 그러한 태도가 가해자에 대한 증오감에만 매여 있는 것이라면 위험할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반성만을 촉구할 뿐 스스로의 현실을 되돌아보지 못한다면 역사의 악순환은 종식되지 않는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최후의 대로마 항쟁지 마사다 성채에 올라 “다시는 나라를 잃는 비극이 없기를!”(Never Again!) 외친다고 한다. 예루살렘에는 ‘영원한 기억’이라는 뜻의 ‘야드바셈’이라는 이름을 붙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워놓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기억한다. 이 기념관은 통곡의 벽 다음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는 추방과 학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추방과 학살이다. 자신들이 받은 고통의 기억은 지우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자신들로 인한 타인의 고통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탓이다.


혹시라도 독립기념관이 우리 사회 안팎의 억압과 차별을 덮어버리는 구실을 만들어주는 기념관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야스쿠니’에 반대한다면 그것이 상징하는 군국주의의 이념과 정신을 넘어서는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독립기념관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삼았으면 하는 기대는 그 대안적인 전망을 바라는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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