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FAST천안’ 유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10-08 20:20
조회
3294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22번째 원고입니다(091008).


‘FAST천안’ 유감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FAST천안’, 천안시내 길거리를 지나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어느 순간 ‘저게 뭐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의 도시 브랜드를 나타낸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도무지 뭘 함축하는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인지 알 수 없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 뜻을 설명 받은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억뿐, 그 문구를 볼 때마다 그 내용은 전혀 환기할 수 없었다. 필경 영문 첫 자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있을 터이니 그 내용이 뭘까 추측해보려 해도 쉽사리 연상되지 않았다.


그러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까지 했다. 아니, 도대체 누구 보라고 저런 문구를 여기저기 붙여 놓은단 말인가? 가끔 이렇게 지역 언론에 칼럼도 쓰고, 여러 다양한 매체에 비교적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쉽게 인지될 수 없는 문구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지나치면서 그 문구와 마주칠 때 동행한 사람들에게 종종 물어보기도 했다. 몇 차례의 기회 가운데서 그 뜻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사실은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최소한 그 뜻을 알아야겠기에 검색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 뜻을 알 수 없어 궁금했던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서도 알 수 없어 다른 사이트에 질문을 던진 이가 있었고 그에 대해 친절히 답해주는 이 또한 있었다. 요약하자면, F는 ‘제일’을 뜻하는 First를, A는 ‘넉넉한’을 뜻하는 Abundant를, S는 ‘만족스러운’을 뜻하는 Satisfied를, T는 ‘첨단기술’을 뜻하는 Technologic을 말한다고 했다.


그 뜻을 비로소 알고 나니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더 기가 막혔다. 그렇게 심오한(?) 뜻을 지닌 말이라니! 그야말로 찾아보고 학습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라 기가 막혔다. 그렇게 일부러 찾아보고 학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문구는 거리를 지나치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바로 그 천안의 도시브랜드가 함축하고 있는 그 가치를 문제 삼고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치들이 정말 천안시민들이 바라는 뜻을 잘 담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표방하는 방식이다. 시민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 시의 행정을 꾸려가야 할 시청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시정의 목표를 내던지고 있는 방식이 문제다.


시정 전체를 그 하나로 평가한다는 것은 분명 지나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도시 브랜드를 알리고자 하는 그 방식이 혹시라도 평범한 시민들과의 소통에는 아랑곳없이 일방적인 시정 운영 방식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되새겨 보는 것이다. 지금 길거리에 붙어 있는 그 문구가 시정을 운영하는 공직 사회 내부의 지침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문제 삼을 까닭이 없다. 그걸 길거리에 내걸었을 때는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 그것은 알아서 배우고 따라오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나타내거나 아니면 시민은 몰라도 되니 우린 갈대로 간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대전에서는 시민들이 시내 단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를 제공하면서 그 시설 이름을 ‘타슈’라고 해서 좋은 한글 이름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얼마나 명쾌하고 정감이 있는가? 여기 이렇게 자전거를 놓았으니 “타슈!” 하는 것 아닌가?


언어란 기본적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요 동시에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대면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복리를 위한 시정이 그렇게 원활한 의사소통 가운데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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