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모’의 안식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3-30 10:51
조회
4080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76번째 원고입니다(090330).


‘사모’의 안식년


교회에서 ‘사모’의 지위란 미묘하다. 말 그대로 하면 사모란 목사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지만 교회에서 사모는 호칭 이상을 뜻한다. 대개 교회에서 사모는 사실상 하나의 직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목사의 부인에게 집사나 권사 또는 장로 등과 같은 직분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사모를 하나의 직분과 같이 여기는 탓이다.


사실상 사모가 하나의 직분으로서 용인될 때 과연 그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부정해도 교회의 직분에 일정한 서열이 매겨져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니 살짝 그 지위를 가늠해봄직도 하다. 목사와 항상 붙어 다니니 그 다음쯤 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사모라는 직분은 제법 영광을 누리는 지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그런 통념이 맞는 것 같지만, 교회에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사모는 흔히 구설수의 대상이 되거나 급기야는 모든 문제를 뒤집어쓰는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경우 사모의 직분은 결코 영광을 누리는 지위가 아니다. 그래서 미묘하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사모에게 집사의 직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그 미묘한 지위를 피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상 그 미묘한 역할의 문제가 전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목사의 부인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고, 그 비중 있는 역할을 교우들로부터 기대 받고 있다. 교회 분위기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역할의 비중은 크면서도 책임의 한계는 모호하고 미묘한 사모의 지위는 여느 교회와 다를 바 없는 게 사실이다.


교우들도 그 사실을 다 인지하고 있었던 탓일 게다. 어느 날 여신도회에서 기묘한 제안을 했다. 목사와 마찬가지로 사모에게도 안식년을 주자는 제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월을 주자고 제안했다. 한 달간 교회의 예배와 모든 일로부터 자유롭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여신도회의 제안은 곧바로 결행되었다.


주일 아침과 수요일 저녁 항상 붙어 다니던 사람이 떨어지니 사모의 안식월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낀 사람은 목사였다. 처음에는 교우들도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목사님, 쌀이 떨어졌는데요...” “물이 없는데요....” “뭐는 어디에 있어요?” 등등 물음이 많았다. 그 상황을 접하고서야 사모 안식월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여러 사람을 훈련시키는 계기였다.


정작 당사자에게는 어땠을까? 한달간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며 여러 가지 체험을 한 모양이다. 다른 교회에서 낯선 사람으로 처음 교회에 들어선 사람의 심정도 맛보았단다. 하지만 무엇보다 처음으로 교회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체험이었단다. 그 이야기는 본인에게 더 들어봐야겠지만, 그 기발한 제안을 한 여신도들이 참 가상하다.  
1_L_1238724458.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