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어느 부모인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4-26 21:15
조회
3209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77번째 원고입니다(090427).


어느 부모인들...


대학 신입생 큰 녀석이 요즘 잔뜩 고민을 하는 표정으로 다닌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으니 마냥 신나서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학 신입생으로서 설렘 같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안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한 까닭에 웬만한 활동은 그 비슷하게 일찌감치 겪어 본 탓일 것이다. 아마도 전공은 제대로 택한 것인지, 그 전공으로 장차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 장래에 대한 고민이 당면 과제인 모양이다. 어느 날 엄마랑 나선 등굣길에서 부모님의 기대감이 부담이 된다는 의중을 비쳤다고.


왜 아니겠는가? 자식에게 그 어떤 기대를 걸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자식이 부모의 그 기대감을 의식하는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만 문제라면 그 기대가 당사자의 삶에 긍정적인 동인이 될지 아니면 거꾸로 부정적인 중압감이 될지 하는 것일 게다. 어느 편일까?


어떤 부모든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더 낫기를 기대할 것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선택해 그 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 덧붙인다면 자기가 하는 그 일에서 일가견을 갖고 몫을 감당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 정도다. 아마도 내 삶에 대한 반추일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수없이 많은 난관을 헤치고 나오느라 버겁게 느꼈던 터라, 그 버거운 과정을 가급적이면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맘껏 향유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다. 글쎄, 이 정도면 긍정적인 자극제가 될 만한 기대감일까 아니면 부정적 중압감으로 느껴질 만한 기대감일까?


자식에 대한 그 기대감을 새삼 확인하고 나니 내 그 시절이 떠올려진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잔뜩 받고 기대감을 가득 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인생의 진로를 놓고 부모님과 격론을 벌여 본 적이 없어 늘 아쉬움을 갖고 있던 시절이다. 어쩌다 친구들 가운데 부모님과 격론을 벌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 무척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툭툭 끊어지는 일상의 대화 가운데 눈빛과 마음으로만 부모님의 기대감을 읽어냈을 뿐 고민의 과정과 결단의 순간은 언제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처지여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 결여감을 거꾸로 보상이라도 하듯 지금 아이들에게는 어떤 주제이든 고민이 되는 것이면 언제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 아이들과 대화는 때로는 원활하게 잘 되지만 가끔은 대화 자체가 어려울 때도 있다. 모든 것을 다 꿰고 있는 듯한 아비의 태도가 부담스러운 것일까?


자식이 커가다 보니 사연도 점점 늘어나고, 덩달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더 늘어난다. 자식이 커나가듯 부모도 커나간다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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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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