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고맙습니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11-02 22:38
조회
3522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72번째 원고입니다(081102).


“고맙습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자니 마침 대문 앞에서 마주친 동네 이장님이 차를 세운다. 면소재지에 아드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햅쌀 두 포대를 가져가란다. 그렇잖아도 매년 추수 때면 옆 동네에 사는 장인 장모님 댁에 쌀을 보내 주어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터였다. 멈칫 하는 내 표정 탓이었는지 이장님은 얼른 한마디 덧붙인다. “저기는 따로 보내드릴 테니, 목사님 댁으로 가져가세요.” 얼떨떨해하면서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본래 성격이 화끈한 이장님은 다른 군더더기 없이 “기도나 많이 해 주슈!” 하신다.


사실 시골 동네에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늘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한 동네에 산다 뿐이지 생활을 공유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을 때도, 그 다음 시내 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도 그랬다. 지금도 집은 그 동네 그대로이지만 교회는 시내에 있으니 마찬가지다. 동네 사람들과 간격을 좁혀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사는 제쳐두더라도 애사가 있는 집은 꼬박 찾아다니며 문상도 하고, 동네 청소라든지 폭우가 내려 하천에 울력거리라도 있을 때면 삽 들고 나서기도 한다. 그래도 생활의 차이로 인한 간격이 쉽사리 메워지지는 않는다. 한동안은 따가운 눈총을 느껴야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호의로 대해주어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있다. 이장님도 그런 분 가운데 한 분이다. 술을 즐겨 늘 얼굴이 벌건 채로 살다시피 하던 양반이 몇 해 전부터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활도 많이 달라지고 목사인 나를 대하는 태도도 더욱 친근해졌다. 서울에 살다 사위를 따라 내려와 옆 동네에 사시는 장인 장모님께 이 분이 호의를 아끼지 않은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같은 교회 식구가 되었으니 그 마음 씀이 더욱 각별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우리 교회에 드리는 헌금이라며 미리 준비해둔 봉투를 내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얼큰해져 기분이 상기된 상태에서 곧바로 지폐 몇 장을 꺼내 헌금이라며 건네주기도 하신다.  


그렇게 호의를 입을 때마다 한 동네 사는 사람으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또한 동네 사람으로 마을 일에 협조도 잘 못하는데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와 목사에게 정성을 표하는 그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햅쌀 두 포대를 단번에 들고 차에 싣자니 내 마음이 후끈해진다. 그 따뜻한 호의 덕분에 더욱 풍요로워진 감사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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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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