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에서의 차별 문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1-22 01:25
조회
3928
일본그리스도교단 교토교구 滋賀지구 교사회 발제

2008년 11월 10일(월) 오전


한국에서의 차별 문제


崔亨黙(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1.

오늘날 한국에서 전근대적인 신분에 의한 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일본의 ‘部落民’과 같은 집단이 구별된 신분집단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그와 같은 전근대적 신분에 따른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제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부락민과 유사한 백정(白丁)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백정해방운동이 중요한 사회운동의 하나였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전통적인 신분차별은 사실상 사라졌고, 희미하게 남아 있던 반상의식(班常意識: 兩班과 常民을 구별하는 의식)도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적 성장을 동반한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전통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사라진 것이 차별 자체가 사라진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근대화는 또 다른 형태의 다양한 차별을 낳았다. 근대화는 만민평등과 주권재민 등의 정치이념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표방되는 이상과는 다르다. 가장 전형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서구사회에서조차도 만인의 동등한 시민권의 확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근대적 정치혁명을 경유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사실상 시민권 확보 문제는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급속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다양한 소외와 차별이 발생하였다.

1960년대 이후, 그리고 1970-198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정치ㆍ경제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소외된 이들을 일컬어 ‘민중’이라 일컬었다. 특히 1980년대 이르러 ‘민중’은 역사의 주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지만, 그 기본 조건은 억압과 소외에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러 민중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만큼 즐겨 사용되지 않는다. 1980년대 ‘민중’은 이중적인 분화 과정을 밟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과거의 ‘민중’은 한편으로는 ‘시민’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시민’이 민주화를 이루고 그 성과를 누리는 정치적 주체로서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면, ‘소수자’는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조건들을 암시하고 동시에 그 차별의 조건들이 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함축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진전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화 과정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민주주의 기반마저 위협함으로써, ‘시민’적 성취를 무색하게 하고 있고 다시 ‘민중’을 부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기왕에 형성된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퇴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민중’이라는 단일한 실체로 인식할 때보다 차별과 소외가 훨씬 심각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2.

그렇다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현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기 위해 먼저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어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 4일 한국 국무회의에서는 차별금지법안이 정부의 공식안으로 채택되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관행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를 지니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초 입법 예고된 후 10월 22일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수정안이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애초 입법 예고안에는 차별해서는 안 되는 조건으로 20 가지가 예시되어 있었다.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성적(性的)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예시되어 있었다. 여기에 예시된 사항들은 한국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발제중 보완할 예정임).  

그러나 최종안에는 수정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가운데 7 가지 조건이 빠지고 예시된 13 가지 조건도 다소 미묘하게 바뀌었다. “성적 지향”을 비롯해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학력” 등 7 가지 조건이 삭제되어 “그 밖의 사유”라고 뭉뚱그려지고, “사상 및 정치적 의견”이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으로, “용모 및 신체조건”이 “신체조건”으로, “혼인 여부”가 “혼인”으로 변경되어 확정되었다.

정부의 입장은 예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예시된 것들은 대표적인 것들에 해당할 뿐이라고 해명하였지만, 변경의 사유가 개운한 것은 아니다. 변경안으로 확정된 데에는 예고안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계에서는 채용시 신체검사를 금지하는 취지에 대해 기업의 비용증가를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쟁점이 된 것은 “성적 지향”에 관한 것이었다. 韓國基督敎總聯合會(진보적 기독교연합단체인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KNCC]와 다른 보수적 기독교연합단체)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계가 앞장서 이 조항이 동성애를 부추길 것이라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가 결국 관철되었다.

여러 인권단체들은 오늘날 차별금지를 통한 인권보호의 시금석과 같은 중요 조항들이 빠진데다가, 시정명령권 및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안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하여 논란이 된 차별현상 외에도 심각한 차별현상이 오늘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가장 일반화되고 가장 심각한 차별현상은 비정규직 차별 현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조건에 따른 노동의 차별현상은 일반적이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숙련직과 단순직의 차이, 그리고 국적과 학력 등에 따른 차이 등이 어떤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하지만 특히 한국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극단적이다. 그 차별이 더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략 60% 가까운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데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사회는 사회적 안전망도 부실하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잃으면 가계 자체가 곧바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에서는 지난해 비정규직에 관한 법률(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그 법은 거꾸로 악용되어 거의 비정규직 보호법으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2년이 초과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규정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비정규직의 실질적 보호를 위한 법 개정과 조치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겼다. 그 태도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선포하였다. 차별의 문제에 접근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바로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을 출발점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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