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3주간의 일본 교토교구 탐방을 마치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12-11 19:10
조회
4034
사흘 같은 3주간 - 3주간의 일본 교토교구 탐방을 마치고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대전노회 에큐메니칼협력위원회 서기)


1.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와 일본그리스도교단 교토교구는 1998년 교류협력관계를 맺은 이래 한일간의 역사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정책협의회를 갖는 등 목회자 및 신도들간의 여러 교류프로그램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교류 10년을 맞아 보다 진일보한 교류를 위해 목회자 교환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하였고, 그 첫 번째 기회로 2008년 11월 6일부터 26일까지 3주간 제가 교토교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교토교구가 제안하고 처음 시도하는 교류형태였던 만큼 교토교구의 의욕이 대단했습니다. 3주간의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 총괄책임을 맡은 후가미(府上征三) 목사님께서 교토교구의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 말씀이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짜임새 있고 정성을 다한 일정이었습니다.


전반적인 일정은 기본적으로 교토교구 내 각 지역교회들을 순회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였고, 몇몇 집회 참석과 동지사대 방문, 기관 방문,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 몇 군데 명소를 들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중요한 활동은 현장을 방문하여 그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별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충분히 제공되었습니다. 다섯 차례의 설교, 두 차례의 강의와 발제(동지사대에서의 “오늘의 한국사회와 기독교” 특강, 그리고 시가지구에서의 “한국에서의 차별문제”),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인사말과 소감의 기회 등 많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 방문의 첫 번째 목적은 일본교회를 좀더 깊이 알고자 한 것이었고 두 번째 목적은 한국교회의 경험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비록 제한된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 두 가지 목적에 잘 부합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일본 교회현장을 충분히 들러보고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배려 받음과 동시에 한국교회의 경험, 그리고 저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충분히 배려 받았습니다.


2.


저는 어쩌면 교토교구에 속해 있는 분들보다 더 많이 교구내 교회들과 현장을 방문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셈인데, 그 파급효과에 대한 평가는 제 몫이 아닙니다. 그때그때마다 반응을 직접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다 냉정하고 진솔한 반응과 평가는 교토교구에 속해 있는 분들의 몫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방문자로서 인상과 소감을 밝히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저로서는 일본교회에 관해 새삼스럽게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받은 인상과 생각을 전합니다.


1) 첫 번째로 일본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상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인상은 진지함과 집요함입니다. 방문할 때마다 받아 왔던 인상이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그 점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기독교인들의 진지함은 그 표정에서 읽을 수 있지만, 언제나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끊이지 않는 물음과 대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도 예외 없이 주일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예배담당자들이 준비기도회를 갖는 것도 그 진지함의 일면으로 보였습니다.      

집요함은 어떤 일의 규모나 당장의 파급효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이미 문을 닫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소수의 공동체 회중만으로도 교회를 지속하며 그 몫을 다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점은 그 한 단면을 보여 줍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보육원이나 유치원을 운영하며 교회로서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은 그 나름의 지혜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와 같은 형태를 띤 것은 아닙니다. 제법 큰 교회도 있고, 어떤 부설 기관도 갖지 않은 채 극소수의 예배 인원으로 교회로서 존속하는 ‘전도소’와 같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 작은 교회들에 대해서는 교구가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존속하게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선교의 거점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은 기독교인이 소수자인 일본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찾아나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인 것 같습니다.  


2) 두 번째로 일본 기독교는 그 사회 안에서 소수자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수용력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 가운데 1%가 될까말까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소수자입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용력이 클 수밖에 없을까요?

일본교회 역시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어 걱정이라는 이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특히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방의 교회들이 더욱 보수화하여 교토교구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적인 교회들을 압박하는 형편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교단 전반적으로 교회의 사회적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토교구의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은 여전히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천황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모임에도 참여를 했고, 일본 사회 안에서 대표적 차별문제 가운데 하나인 ‘부라꾸민’(部落民)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교회현장,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현장, 재일 한국인 문제(우토로, 히가시9조)*를 자기 사회의 문제로 알고 대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성동일성(性同一性) 장애를 겪은 분이 당당하게 목회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 그 당사자와 대화를 나눈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성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활동현장을 보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주* 교토 인근 우토로 지역의 재일한국인 거주지역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간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우토로 문제가 쟁점이 되었고, 결국 양국 정부의 노력까지 가세하여 문제해결에 커다란 진척을 보였습니다. 일본정부는 그 지역의 개발을 허가하였고, 한국정부는 그 지역의 땅을 구입하는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그 지역의 땅을 구입하고 관리해야 할 재단을 구성하는데, 우토로 지역 주민과 한국정부 사이에 의견 차이가 문제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시금 관심과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3) 교회의 전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논쟁으로 지금 일본그리스도교단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황이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일본그리스도교단 안에서 성찬 개방 문제가 커다란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될 정도로 그 문제는 뜨거운 문제였습니다. 본래 회중교회의 전통이 강한 교토교구 지역에서는 세례와 상관없이 성찬을 베푸는 전통이 지배적인데, 일본 기독교의 보수화 추세 속에서 관동지역의 교회들이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에서는 미세례자에게 성찬을 베푸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교회에서 세례와 상관없이 성찬을 베푸는 전통이 이미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교회의 전통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 논쟁이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찬반논란으로 봉합되지 않고 교회의 다양한 전통을 사려깊게 이해하는 기회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4) 두 개의 교회가 하나로 통합되어 건강하게 존속하고 있는 교회의 모형은 도농간 교회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교토북부 료탄(兩丹)지구에 있는 탄바신세(丹波新生)교회는 두 교회가 하나로 통합되어 두 명의 공동목회자가 네 개 예배당의 회중을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당별로 예배시간은 다르지만 종종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고, 재정운영을 비롯한 일체의 교회운영 및 목회사항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일본그리스도교단 안에서 통합을 시도했던 사례들 가운데 드물게 성공한 사례로 남아 있는 경우라 합니다.

두 개의 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통합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의 교회 이름으로 여러 교회를 통합하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도농간 교회들 사이에 격차가 커지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탄바신세교회의 사례는 교회간 네트워크 형성에 참고가 될 만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컨대 도시외곽의 어떤 교회와 그 주변 농촌의 미약한 교회들이 강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각기 교회로서 몫을 다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5) 교회 건물이 한결 같이 저마다 특색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코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교회당들이 종교성과 실용성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공간을 아름답게 꾸민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물론 건물이 아니고 공동체이지만, 그와 같은 교회당의 특성이 일본 기독교인들의 심미적인 신앙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일본교회의 역사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시가지구 오오미하치반시에서 선교사 보리스 기념관과 유적들을 보고, 히코네시에서 선교사 스미스 기념관을 보았으며, 교토에서는 카톨릭 순교지 근처에 세워진 프란치스코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교회당들 가운데서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교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유적들의 보존과 관리는 교회의 노력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사회 공동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흔적들을 지켜나감으로써 오늘 우리의 신앙에 배인 역사의 숨결을 새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입니다.


7) 일본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로 심각하게 느껴진 것은 현저한 고령화 현상이었습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 교사나 신학생 등 젊은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도들의 대부분은 전반적으로 고령자였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역시 젊은이들이 감소하는 추세 속에 있지만 기본적인 규모가 있기 때문에 아직 그렇게 심각하게 체감되지 않은 데 반해 일본교회는 고령화되어 있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두 교구와 노회가 교류하면서 젊은이들을 교회에 불러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공동의 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와도 어느 정도 관련되는데, 일본에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할 때 대략 60% 가까이가 교회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신앙과 상관없는 일이고 단지 하나의 유행을 따르는 취향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 점이 매우 특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텔에 채플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리조트 시설에 그럴 듯한 교회당이 들어서 있기도 했습니다. 전혀 종교시설이 아니라 그저 웨딩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종교성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의 현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기에 그런 현상도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기대일지 모르지만, 그와 같은 기독교에 대한 젊은이들의 호감에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의 실마리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8) 일본의 교회들이 존속하는 방식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보육원 또는 유치원 운영과 관련하여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부설기관이 교회 존립을 위한 현실적인 조건일 수만은 없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린이들 교육에 기독교 정신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단순히 예배를 드린다거나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은 아닌, 교육철학과 방식 안에 기독교 정신이 과연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영어교육이나 지식교육에 몰입하는 한국의 일반적인 어린이교육 현장과 달리 거의 전적으로 놀이를 위주로 하는 어린교육 현장을 목격하고, 어린이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을 관철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교육하는 사례를 들을 수 있어 그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 일본 교회의 미래를 여는 어떤 열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흔히 교류 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공동의 행동 등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류의 일차적 의미는 상호 이해와 공감의 기반을 넓혀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호 이해와 공감의 기반이 넓혀질 때 눈에 보이는 성과나 공동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방문 프로그램은 상호 이해와 공감의 기반을 넓히는 데 아주 유익한 기회였습니다. 앞서 밝힌 대로, 일본교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나 한국교회의 경험을 전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동시에 유익한 기회였습니다. 2009년도에는 일본 교토교구에서 대전노회를 방문하여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인데, 그 기회 역시 같은 성과를 거두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번에 저를 파송해 주신 대전노회와 관계자 모든 분들, 아울러 저를 맞이해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고 모든 일정을 안내해 주신 교토교구와 관계자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교류 프로그램의 총책임을 맡으신 교토교구 선교부장 후가미(府上征三) 목사님께서는 제가 이야기를 하는 현장마다 거의 매번 나타나셔서 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시고 틈틈이 후한 대접을 해주셨습니다. 의장 모찌즈키(望月修治) 목사님은 교토교구를 대표하여 저를 뜨겁게 맞아주셨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배려와 친절 또한 아끼지 않았고, 부의장 이노우에(井上勇一) 목사님은 전반적인 일정을 총괄하시며 빈틈마다 안내자로서 손수 나서주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대전노회와의 교류 실무책임자인 오오야마(大山修司) 목사님은 오랜 친구와 같이 저를 편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이 세 분은 마지막 날 공항까지 나와 배웅해주시면서 석별의 정을 아쉬워했습니다. 일일이 거명하지 못하지만 지구별 안내를 맡은 분들과 만난 모든 분들, 통역을 하시느라 애쓰신 분들, 이러저런 기회 때마다 관심을 보이시고 정을 표한 모든 분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마음으로 통했던 모든 분들의 정성을 기억합니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행복한 3주간, 아니 사흘 같은 3주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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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와 京都교구와의 교류프로그램을 마치고


大山修司(膳所교회 목사 / 일본그리스도교단 교토교구 선교부 대전노회교류소위원회 위원) 


 양 노회, 교구가 이제까지 교류의 성과를 기초로 2008년도부터 3주간 정도에 걸쳐 상호방문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11월 6일부터 26일까지 대전노회로부터 천안살림교회 최형묵 목사님을 맞이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3주 동안 상당히 힘든 일정으로 피곤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최형묵목사님께서 흔쾌히 따라 주시고, 또한 교토교구의 각 지구의 담당하신 분과 더불어 각각의 장소에서 정성껏 대접해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3주 동안에 3번의 주일은 최목사님께 膳所교회, 同志社교회, 洛南교회에서의 예배설교를 부탁 드렸고, 그 이외에도 京都교회, 洛陽교회의 수요일 기도회에서 성서의 메시지를 전달받았고 同志社대학에서는 채플설교도 해주셨습니다.

 또한 滋賀지구의 교사회에서 한국의 차별문제에 대해 발표해 주셨고, 同志社대학의 신학부 그리스도교사의 세미나에서는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개신)교회의 동향과 신앙인의 과제에 대해 최신의 내용으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한편 최목사님은 “이번 京都방문 때에는 일본사회 안에서 교회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게 배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라는 방문의 동기를 미리 밝히셨습니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에는 밝히신 동기 그대로 교구내의 両丹지구, 滋賀지구, 京都남부의 각 지구, 또한 전도圈의 여러 교회 등 많은 교회를 정력적으로 방문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에 교구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녁순회 활동에 참여하셨고, 장애자와 함께 행동하려는 교회 및 시설, 東九条, 우토로 지역 등 여러 현장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1월 24일에는 약200명이 참가하여 개최한 京都교구대회에서도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교류프로그램은 최목사님이 여러 교구의 현장을 방문하는 내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京都교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해주시길 바랬고 또한 일본의 여러 교회가 현재 안고 있는 과제와 고민에 대해 알아주시길 바랬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京都교구의 신도 분들이 대전노회 소속 교회 신도들과의 교류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면 교류가 더욱 다양한 형태로 넓혀지고 보다 유익한 형태로 발전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습니다.


 최목사님은 대전노회의 에큐메니칼 협력위원회 서기로서의 입장으로 京都에 오셨지만, 동시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연구소 등과도 관련을 가지는 신학자로서 세계의 큰 변화가운데의 한국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실천적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계시고 그리스도교계의 언론을 통해서도 활약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번 교류프로그램가운데에서도 수 차례 한국그리스도교계의 동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전 군사통치시대에 인권수호를 위해 발언해왔던 교회 중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많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이후, 즉 어느 정도까지는 민주주의적인 구조를 얻어 낼 수 있었던 이후에는 대형교회로 대표되는 보수주의적인 그리스도교회의 정치행동이 표면화되어 권력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결과 이명박정권을 탄생시키게 되었다는 과정을 분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 대형교회가 현재 큰 폐해를 낳아 시민과 타종교인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고,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이익집단이 되어버렸다는 한국교회의 실태를 지적하고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또한 최목사님의 말씀 중에서 한국교회 가운데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결코 큰 세력이 아니고 오히려 소수세력이지만 교회의 부패를 방지하고 사회정의에 공헌하기 위한 존재로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비판세력으로서의 위치를 견지함과 동시에 생명, 평화운동과 소수자운동에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모색하고 자본의 글로벌화와 다른 공생의 형태를 제시하여 창조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관계형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 일본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심각한 사회적 격차사회가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리스도교회가 보수화의 큰 흐름 한 가운데에 서있는 현실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최목사님은 “일본교회는 작고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사회에서는 수적으로 소수인 그리스도교회가 의미 있는 소수자가 될 때야말로 그 존재의의가 보다 커질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수화하여 다수파의 흐름에 맞추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과제에 맞닥뜨려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관철시키길 바란다는 力說로 받아들이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정보교환뿐만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격려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러한 교류를 단지 형식적, 사교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교회가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복음선교의 현재적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내용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각각의 행동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009년도는 京都에서 대전노회를 방문하여 교류하게 됩니다만, 선교부의 대전노회 교류소위원회에 교류참가 신청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교류프로그램으로 방문하신 최형묵 목사님, 보내주신 대전장로회 여러 교회의 신도 분들 그리고 방문 받으신 京都교구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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