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희망의 근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1-08 16:43
조회
4088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원고입니다(090108).


희망의 근거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새해 첫날 한 일간지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까 ‘살기가 나빠졌지만 희망은 있다’는 것으로 집약되었다. 우리 사회가 살 만한 사회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60.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더욱이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좋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90.6%가 나빠졌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84.3%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 결과를 보면 그래도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여론조사 결과를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안도할 수가 없다. 어디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느냐는 물음에 대부분 자기 자신과 가족이라고 답하고 있다. 사회적 공공성이나 연대성과 관련된 대상에 기대를 거는 수치는 매우 낮다. 결국 자기 자신과 피붙이 밖에는 믿을 구석이 없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상황이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희망의 근거가 자기 자신과 가족에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생존경쟁의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사람들이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저마다 성공하고 모든 가족들이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더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다소 침울해 있었던 탓일까? 바로 다음 날 신문을 보니까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인터넷 대안금융 ‘품앗이 대출’에 관한 기사였다. 720만 명에 달하는 신용 소외자들을 위한 금융실험이 인터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였다. ‘원클릭콤’이라는 사이트에서 회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빚을 내야 하는 사정을 밝히면 회원들 사이에서 그 진정성에 대해 토론을 하고 투표를 해 돈을 빌려주는 식의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십시일반 회원들이 작은 돈을 모아 기백만 원의 돈을 빌려주고 갚는 실험이다. 신용의 조건은 없다. 단지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의 진실성이 인정되면 된다. 그렇게 인정된 신용만으로 돈을 빌린 사람은 성실하게 빌린 돈을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거기서 유통되는 돈은 우리 사회 안에서 유통되는 돈의 규모 가운데서 그야말로 티끌보다 더 적은 비율밖에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시도는 매우 의미심장해 보인다. 좌절에 빠진 어떤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나아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삶을 그렇게 실현해보겠다는 의지가 놀라운 것이다.  


이 실험은 기존의 돈의 법칙이나 삶의 법칙과는 다른 돈의 법칙과 삶의 법칙을 만들어보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하지만 단순히 자선을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하나의 시도로서 그것은 매우 소중한 사례이다. 그렇게 사회적 연대성을 강화해가는 시도들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는 진짜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하는 데 진정한 희망의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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