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선물로 주어진 삶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0-08-30 15:16
조회
2831
* <주간 기독교> 다림줄 여덟번째 원고입니다. 9월 12일치(100830).


선물로 주어진 삶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늘 경제 지상주의가 압도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도 그가 다루고 있는 ‘정의’의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은 그래도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그렇게 흐리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아 퍽이나 다행스럽다. 물론 그의 책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책이 다루는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저자의 독특한 소통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수 천 명을 청중을 놓고도 대화식 강의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하였을 때도 그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일방적 설파가 아니라 그렇게 상호 소통하는 방식 때문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정책이든 교육이든 일방적 독주가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그 상호 소통하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서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책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은 주저인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매우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역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유전공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윤리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다. 핵심 요체는 이렇다. 우생학이나 유전공학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계획적인 의도가 주어진 것을 이기고, 경외보다는 지배가 이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틀에 맞게 찍어내는 것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것을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원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인간 사회 안에 겸손과 책임, 연대의 원리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샌델은 우리의 삶을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삶에 대한 인식은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고 있다. 요컨대, “우리중 누구도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기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의식은 능력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선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사유가 비단 특정한 종교적 전통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설파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가 설명하듯이 얼마든지 세속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도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는 해명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점에 동의하지만, 사실은 ‘선물로 주어진 삶’에 대한 통찰이 기독교 신앙의 전통에서만큼 확연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인간관은 저마다의 삶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은 은혜로 비롯된다는 믿음이 그 뜻을 함축하고 있거니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창조 신앙이 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창조절이 시작되는 이 즈음, 삶의 연대성이 날로 붕괴되어 오늘 현실을 돌아볼 때 그 믿음의 의미가 더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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