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하나님의 정의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4-08-16 21:06
조회
311
<종교와 평화> 193(2024.7.31.) 사회적 약자 이야기 01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하나님의 정의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가운데서 약자들이 마땅한 삶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그 사회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지표이다. 그러기에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한 삶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희망은 어떤 종교적 가르침에서든 비켜 갈 수 없는 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기초가 되는 성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의 요체라고 가르치고 있다.
널리 통용되듯 그리스-로마로부터 비롯되는 정의의 요체는 나에게 유익한 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응분의 몫’을 나누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 응분의 몫은 일정한 자격과 업적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례적 정의’로서 분배정의의 원리는 그 요체를 잘 집약하고 있다. 비례적 정의에서 응분의 몫을 분배하는 데 그 기준이 동일할 경우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 기준이 서로 다를 경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돈으로 기여하고 어떤 사람은 노동으로 기여했다면, 두 가지 기여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적, 공동선의 과제가 제기된다.
성서적 정의는 그리스-로마의 비례적 정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성서에서 정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함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편에서 그 정의는 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체다카’(zedakah)는 좁은 의미의 정의만을 뜻하지 않고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신실한 인간의 실존을 형성하는 모든 것, 곧 평화, 해방, 속죄, 은총, 구원 등을 포괄한다. 이 점에서 성서의 정의는 인간에게 베푸는 신실한 하나님의 행위에 상응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서 정의는 억압받는 백성을 선택하여 그들과 약속을 맺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의 해방에 이르게 되고, 이로부터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자신들의 인간관계 안에서 구체화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다. 성서는 일관되게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한 하나님의 신실한 행위를 환기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져야 할 정의를 역설한다. 출애굽 사건의 맥락에서 제시되는 계약법전(출애 20:22~23:33)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함으로써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정신은 이후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과 성결법전(레위 17~26장) 등에서는 물론 예언자들의 선포에서 또한 반복되고 있다. 그 정신은 예수와 사도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
성서의 법전들은 내용과 형식상 고대 근동의 대표적 법전들과 유사한 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고유한 사회적 상황과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대개의 그 법전이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에 대한 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존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온존하는 한계 안에 있다면, 성서의 법전은 기본적으로 모든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한 형제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특별히 약한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시혜가 아닌 ‘하나님의 친권 행위’라는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말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사회의 정의로 구체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선포하였다. 이때 인간사회의 정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하였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7:24). 이 말씀은 예언서의 그 정신을 집약하고 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선포하였으며(누가 6:20~21), 자신과 사회적 약자들을 동일시하였다(마태 25:31~46).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기본급여를 보장하는 포도원 농장 비유(마태 20:1~16)는 성서적 정의 개념의 압권에 해당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기를 갈망하는 주의 기도(마태 6:11)와 그대로 통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인의론(認義論) 또한 그 정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그 어떤 업적과 자격을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고, 누구나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것에 부합한다. 그들의 실상을 살펴보는 것은 그들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는 오늘의 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하나님의 정의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가운데서 약자들이 마땅한 삶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그 사회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지표이다. 그러기에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한 삶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희망은 어떤 종교적 가르침에서든 비켜 갈 수 없는 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기초가 되는 성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의 요체라고 가르치고 있다.
널리 통용되듯 그리스-로마로부터 비롯되는 정의의 요체는 나에게 유익한 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응분의 몫’을 나누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 응분의 몫은 일정한 자격과 업적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례적 정의’로서 분배정의의 원리는 그 요체를 잘 집약하고 있다. 비례적 정의에서 응분의 몫을 분배하는 데 그 기준이 동일할 경우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 기준이 서로 다를 경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돈으로 기여하고 어떤 사람은 노동으로 기여했다면, 두 가지 기여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적, 공동선의 과제가 제기된다.
성서적 정의는 그리스-로마의 비례적 정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성서에서 정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함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편에서 그 정의는 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체다카’(zedakah)는 좁은 의미의 정의만을 뜻하지 않고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신실한 인간의 실존을 형성하는 모든 것, 곧 평화, 해방, 속죄, 은총, 구원 등을 포괄한다. 이 점에서 성서의 정의는 인간에게 베푸는 신실한 하나님의 행위에 상응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서 정의는 억압받는 백성을 선택하여 그들과 약속을 맺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의 해방에 이르게 되고, 이로부터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자신들의 인간관계 안에서 구체화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다. 성서는 일관되게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한 하나님의 신실한 행위를 환기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져야 할 정의를 역설한다. 출애굽 사건의 맥락에서 제시되는 계약법전(출애 20:22~23:33)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함으로써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정신은 이후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과 성결법전(레위 17~26장) 등에서는 물론 예언자들의 선포에서 또한 반복되고 있다. 그 정신은 예수와 사도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
성서의 법전들은 내용과 형식상 고대 근동의 대표적 법전들과 유사한 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고유한 사회적 상황과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대개의 그 법전이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에 대한 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존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온존하는 한계 안에 있다면, 성서의 법전은 기본적으로 모든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한 형제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특별히 약한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시혜가 아닌 ‘하나님의 친권 행위’라는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말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사회의 정의로 구체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선포하였다. 이때 인간사회의 정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하였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7:24). 이 말씀은 예언서의 그 정신을 집약하고 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선포하였으며(누가 6:20~21), 자신과 사회적 약자들을 동일시하였다(마태 25:31~46).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기본급여를 보장하는 포도원 농장 비유(마태 20:1~16)는 성서적 정의 개념의 압권에 해당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기를 갈망하는 주의 기도(마태 6:11)와 그대로 통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인의론(認義論) 또한 그 정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그 어떤 업적과 자격을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고, 누구나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것에 부합한다. 그들의 실상을 살펴보는 것은 그들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는 오늘의 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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