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51] 세상 법정에 소송하지 말라 - 고린도전서 6:1~1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5-04-08 21:15
조회
797
천안살림교회 2015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고린도전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5년 4월 8일 / 최형묵 목사


제51강 세상 법정에 소송하지 말라 - 고린도전서 6:1~11


1. 교회공동체의 윤리적 우위성 - 6:1~8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 그 분쟁을 세상 법정에서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여기서 ‘불의한 자들’은 윤리적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이방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세속 법정의 당사자들을 말한다. 그 단위가 어찌되었든간에 로마제국 질서하에서의 사법당국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그 사법당국에 교회 내 분쟁의 해결을 맡기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한다.

공동체내의 문제를 공동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유대교 사회에서나 그리스ㆍ로마사회 내의 사회단체들이나 종교단체에서도 흔히 권장되는 방식이다. 바울은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바울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세상의 질서, 세상의 단체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도들은 세상 자체를 심판한다. 그러니까 세상은 성도들에 의해 심판받게 되어 있다. 심지어 성도들은 천사들까지 심판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성도들에 의해 심판받는 천사들은 이른바 ‘타락한 천사들’을 말한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당시의 신화적 세계관을 그대로 따르며, 종말론적 의식에 기반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성도들은 그렇게 우월한 지위에 있거늘 스스로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맡겨서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천사들까지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성도들이 세상의 일상사에 대한 심판의 권한까지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말한다. 심지어 바울은 일상의 문제로 소송이 생길 경우조차도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여기서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사람들’은 교회 내의 연약한 사람들과는 상관없고, 교회적 가치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세속 법정의 당사자들을 말한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로마제국하의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교회 내의 분쟁을 외부의 사법당국에 맡기는 일을 부끄러운 줄로 알고, 이를 교회 내에서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소송을 해야만 하는 사태 자체가 이미 실패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차라리 스스로 불의를 당해 주고, 스스로 속아 주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환기하고 있는데, 사실 신약성서의 가르침만은 아니다. 그리스의 도덕철학에서도 악을 감수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낫다고 가르치고 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때 이른바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가르치는데 성도들의 경우는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유념하고 있다. 확실히 이 말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윤리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공동체의 문제해법의 한 방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서로 속이며 빼앗는 일이, 그것도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2.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할 교회의 윤리적 책무 - 6:9~11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분쟁이 생기고 그것을 세속 법정에 호소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말한 것에 이어 고린도교회 안의 여러 가지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먼저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기 못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불의한 자들’은 곧 윤리적 의미의 불의한 자들을 뜻한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그 불의한 자들을 언급한다. 그 첫 번째로 제시되는 음란한 자는 넓은 의미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자를 뜻한다. 우상숭배자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볼 때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진 이교 숭배자를 뜻한다. 간음하는 자는 말 그대로 정상적 성관계를 벗어나 성적으로 문란한 자를 뜻한다. 탐색하는 자(남창노릇을 하는 자?, Malakoi), 남색하는 자(동성연애를 하는 자?, Arsenokoitai)는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논란거리인데, ‘말라코이’는 남자 매춘부 가운데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쪽을, ‘아세노코타이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을 뜻한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은 흔히 동성연애 금지를 말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으나, 여기서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매춘행위와 (아동) 성적 착취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도둑질 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남을 중상하는 자,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해석된 그 개념으로 대개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더러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딱 꼬집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그런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고린도교회가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과거에 그런 악한 일에 연루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교회공동체 구성원은 그런 생활로부터 단절되어야 하고 거룩한 삶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할 윤리적 책무를 말한다. 그런 공동체가 사소한 일로 분쟁을 겪고, 그것도 세속 법정에 호소하는 부끄러운 일을 해야 되겠느냐고 바울은 지금 질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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