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2017 상반기 7강] 성적 지향은 선택일까? - 성적 소수자의 권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7-11-15 08:47
조회
1003
살림 인문교양강좌 2017년도 상반기 강의
주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권리 - 국민주권 시대에 다시 읽는 성서
강사: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제7강(6/21) 성적 지향은 선택일까? - 성적 소수자의 권리


1-1. 지난 번 대통령 후보 토론회 당시 한 후보는 다른 후보를 향하여 동성애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를 다그쳐 물었다. 질문을 받은 후보가 그 물음의 덫에 걸려 반대라고 말했을 때, 또 다른 후보가 그것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현명한 답을 내놨다.
1-2. 대한민국 군형법 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를 명시하고 있고, 이 조항은 동성애를 처벌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1-3. 대한민국에서는 2007년, 2010년, 2012년 총 3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의 입법이 시도되었지만,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그 법안이 차별해서는 안 되는 조건으로 제시한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성적(性的)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가운데서, ‘성적 지향’에 관한 항목이 동성애를 부추길 것이라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그 법의 제정을 막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1-4. 2015년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0회 총회에서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목회지침 마련을 위한 연구위원회 구성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기각되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공교회 차원에서 성적 소수자에 관해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 기회가 차단되고 만 것이다.
1-5. 2017년 6월 15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이단대책위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 담임목사에게 ‘이단사상 조사연구에 대한 자료요청의 건’이라는 ‘무도한’ 공문을 발송하였다.

2-1. 오늘날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동성애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이성애자라는 분류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이성애를 제외한 모든 형태가 비정상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2-2.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적 지향에 관한 분류법이 19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통용된 점은 이른바 섹슈얼리티(성적 지향)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2-3.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진단의 표준을 제시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에 개탄하며, 그러한 판단력, 능력, 신뢰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에게 더 많이 지워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2-4. 이와 같은 의학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주장이 계속되자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입장을 재삼 밝혔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영속시킨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이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과 행동을 병리화하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 두 주요 진단 및 분류 체계에서는 동성에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 그리고 성별 정체성이 병리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2-5. 동성애가 선척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성적 지향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와 관련해 미국소아과학회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와 관련한 대다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은 선택에 의해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성서를 근거로 하여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특정한 성적 지향을 정죄하며 반대하고 있다.
3-2. 과연 성서를 근거로 하여 성적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는 비단 동성애 등 특정한 성적 지향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성서의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함축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강좌에서 이미 언급).
3-3. 다음에서 살펴보게 될 성서 본문은 흔히 동성애를 부정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본문들이다.

4-1. 창세기 1:27~28; 2:18~25의 본문은, 인류 첫 남녀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남녀를 축복한 것이 특정한 성적 지향을 정죄하는 것과는 상관없다.
4-2-1. 창세기 19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그리고 그와 유사한 사사기 19의 이야기는, 그 도시들에 동성애가 횡행했고 그것이 타락한 도시의 핵심적 범죄였다는 것을 증언하는 본문으로 간주되지만, 사실은 그 도시들의 핵심적 범죄는 손님을 ‘환대’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증언해 줄 뿐이다.
4-2-2. 소돔의 죄가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의 말씀(마태 10:14~15)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4-3. 레위기 18장 이하 성결법의 성관계에 관한 규정 가운데 특히 18:22은 동성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 한 구절이라도 성서가 금지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성서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까? 만일 그렇게 봐야 한다면 예컨대 각종 음식물에 관한 규정과 사제의 자격에 관한 각종 규정들이 오늘날 그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성적 지향에 관한 현대의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이 없는 가운데 형성된 고대적 견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굳이 문자적으로 엄밀하게 새겨보더라도 망측한 성행위의 한 형태를 문제시하는 것일 뿐 성적 지향을 문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4-4. 신명기 23:17~18; 열왕기상 14:24; 15:12; 22:46; 열왕기하 23:7의 성매매 금지 내지는 폐지에 관한 증언은, 당시 가나안 풍요종교/다산종교에서 행해지던 성창(聖娼)제도의 금지를 말하는 것일 뿐 동성애와는 상관없다.
4-5. 로마서 1:18~32에서 ‘사악함과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사도 바울이 오늘날 ‘동성애’라 불리는 현상을 왜곡된 인간관계의 한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문맥에서 볼 때 이 구절은 이성 관계까지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부적절한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동성애만을 정죄하려는 초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 역시 현대의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쨌든 바울 서신의 전반적 맥락에 비춰볼 때 바울은 ‘성적 착취’를 더 문제시하고 있다.
4-6. 고린도전서 6:9~11의 ‘부정한 자’로 언급된 ‘탐색하는 자’(남창노릇을 하는 자?, Malakoi), ‘남색하는 자’(동성연애를 하는 자?, Arsenokoitai)는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논란거리이다. ‘말라코이’는 남자 매춘부 가운데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쪽을, ‘아세노코타이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 또한 흔히 동성애 금지를 말하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으나, 여기서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매춘행위와 (아동) 성적 착취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4-7. 에베소서 5:33의 이상적 결혼관계에 관한 언급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말하고 있을 뿐 동성애와는 상관없다.
4-8. 유다서 1:7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언급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애’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이 구절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를 정죄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구절 역시 그에 대해 정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9. 결국 성서가 확고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히 예언자나 예수에게서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 동성애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반적인 문맥과 당대의 상황을 고려해 해석해야 하고, 또한 오늘의 보편적인 윤리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5-1. 동성애는 오랜 인류 역사에서 계속 존재해왔고, 많은 문화권에서 대체로 그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로마사회에서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고, 그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게 된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다.
5-2.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도덕을 주로 생식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고, 로마사회의 성적 관행을 문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소돔의 죄를 성서에 근거하지 않고 동성애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전 13~기원후 50)였으며, 그의 해석은 이후 기독교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여러 교부들이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언급했으나, 확고하게 교회의 공식적 입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3차 라테란공의회(1179년)에서였다. 고리대금업자, 이단자, 유대인, 상인과 더불어 동성애자가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5-4. 서구의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성에 대한 억압적 태도는 오늘날 서구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세기 이후에 성적 지향에 대한 분류가 분명해졌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즈음부터 성적 지향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5-5. 그러나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여러 운동들과 함께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철폐 운동 또한 활발히 일어났고, 더불어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의 발전으로 성적 지향이 차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점차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5-6. 세계의 많은 교회들에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역시 많은 교회들이 이에 대해 관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추세가 되어 가고 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고하게 동성애에 대해 정죄하는 입장을 취하는 교회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교회의 과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몇 가지 물음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① 모든 공동체와 교회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성적 지향의 소수자가 있음을 알고 있는가? ② 이러한 성적 지향이 교회 안의 회원권과 지도력을 갖는 데 방해가 되는가? ③ 이상의 물음을 공식적으로 결합한 동성애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가? ④ 교회는 이러한 관계가 성숙한 것이고 믿음의 서약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축복할 수 있는가?(* 알렌 브레쉬, <우리들의 차이에 직면하다 - 교회 그리고 게이 레즈비언 교인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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