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성서의 맥 02] 하늘이 열리고 땅이 펼쳐지다 - 천지창조의 진실과 인간의 삶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9-04-10 22:17
조회
237
2019년 상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2019년 4월 3일~7월 10일 매주 수요일 오후 7:00~8:30
최형묵 목사

<2> (4/10) 하늘이 열리고 땅이 펼쳐지다 - 천지창조의 진실과 인간의 삶

1. 창조 이야기에 대한 접근방법

모세오경에는 네 명(또는 그 이상)의 저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J(하느님의 이름 Jahweh에서 유래), E(하느님의 이름 Elohim에서 유래), D(신명기 Deutronomy에서 유래), P(사제를 뜻하는 Priest에서 유래)가 그 기자들이다.
이스라엘 최초의 족장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 앞서 기록된 창조 이야기에서부터 노아의 이야기까지(창세기 1~11장)를 원역사라 부른다. 이 이야기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보편적인 인류역사 한 가운데서 자신들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원역사의 첫머리에 창조 이야기가 등장한다. 창세기 1:1~2:3까지 이어지는 창조 이야기와 2:4이하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 다른 것으로 각각 P기자와 J기자의 작품으로 분류된다.
조화로운 창조의 질서를 강조하는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바빌론 포로기 동안 사제 기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포로기 동안의 이스라엘 민족의 세계관 또는 역사관을 반영한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 포로 잡혀와 있던 이들이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고백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더욱이 그 창조의 질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고백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비참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도 저버리지 않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과 자의식을 드러내준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세계를 만드셨다. 그 세계는 완전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 안에 있는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았다.’ 이 이야기는 세계의 기원에 관한 단순한 호기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절망스러운 세계 현실에서 강력한 희망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탄생 시점에 형성된 J기자의 창조 이야기는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고된 노동, 그리고 그와 직결된 관계의 파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 고대 근동과 이집트의 신화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이스라엘 신앙 안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었다. 통상 다른 신화들이 신들의 노예로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강조하는 반면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놀랍게도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다른 신화와 다른 성서 창조 이야기가 보여주는 독특한 세계관이자 인간관이다.

2. 아름다운 세계, 아름다운 인간 - P기자의 창조 이야기

1) P 기자의 창조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전한다. 그것은 현존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뜻한다.
2) 스스로를 ‘우리’로 부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그 형상대로 만들었다.
3)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다른 피조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 몫을 한다.
4) 그러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 ‘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내’가 다른 생명들과 하나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각능력이며 그 자각에 따른 책임적 태도이다.
5) 하느님께서는 이 세계를 아름답게 지으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다. 안식은 창조의 완성을 의미한다. 창조 이야기는 하느님과 인간이 동반자적 관계임을 보여 준다.

3. 인간의 조건 - J기자의 창조 이야기: 창세기 2:4~25

1) 인간의 조건
창세기 2:4부터는 우리가 ‘에덴동산’ 이야기로 알고 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J 기자의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보다 더 고대의 전승에 속하는 것으로,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보다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한계와 동시에 가능성을 지닌 인간은, 자신에 주어진 조건과 능력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적절함, 그 균형의 지표가 바로 ‘선악과’요 ‘생명나무’이다.
2) 남자와 여자(2:18~25)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 인간은 남자와 여자(서로 다른 성)로 관계를 맺고 있다.

4. 실낙원, 창조질서의 파괴 - 창세기 3:1~24

1) 선악과의 비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픈 인간의 욕망(3:1~13)
2) 관계의 파탄, 고단한 노동과 소외로 시달리는 인간(3:14~21)
“노동은 노동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개발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체를 채찍질하고 자신의 정신을 황폐화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 있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며 노동을 할 때에는 탈아감을 느낀다.”(칼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
3) 실낙원(3:22~23)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인간은 낙원을 잃었다. 그런데 성서는 선악과나무와 구별되는 생명나무를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나무를, 거룹들을 세우고 불칼을 장치하여 사람이 거기에 이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보존되도록 했다고 한다. 선악과는 이미 범했지만 생명나무는 범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하느님의 의지이다.
이 생명나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 인간이 범해서는 안 되는 어떤 신성한 경계를 나타낸다. 피조물로서 우리 인간의 한계, 나아가 피조된 세계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둘째, 이 생명나무는 지키고 보존해야 할 중심이자 동시에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절대적 기준을 의미한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인간이 스스로의 생명을 인간 스스로의 방법에 의해 영원히 보존하려는 유혹에는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나무는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낙원회복 가능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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