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강좌

[2017 상반기 제2강]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 - 성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국가권력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7-05-17 22:13
조회
600
살림 인문교양강좌 2017년도 상반기 강의

주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권리 - 국민주권 시대에 다시 읽는 성서

강사: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제2강(5/17)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 - 성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국가권력

1-1.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요한 14: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요한 10:1,9) 성서에서 우리에게 증언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하며, 사나 죽으나 신뢰하고 복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선포의 원천으로서 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 그리고 그것과 나란히 다른 사건들, 권세들, 형상들 및 진리들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1934년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 신학 선언> 가운데서)

1-2. “현재의 한국의 독재정치는 법과 설득에 의한 통치를 파괴하고 있으며, 현재는 폭력과 위협만으로 통치하고 있다. 사회는 장글세계로 돌아가고 있다. 실로 하나님 이외에는 법을 초월할 수 없다. 이 세상의 권력이란 하나님이 정의와 질서를 인간사회에 유지하려고 권력자에게 위탁한 것이다. 누구든지 법을 초월하고 신이 위탁한 정의를 배반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 선언> 가운데서)

2. 인간사회 안에서 지배와 억압을 부정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이 모두 동등한 주체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성서의 정신은 초기 이스라엘 공동체의 평등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주권 개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주권 개념이 갖는 의미는 사사 기드온 이야기(사사기 6~8장)에서, 그리고 현실적 요구로서 왕권체제의 수립 요구에 맞선 사무엘의 경고(사무엘상 8:4~17)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서는 고대 근동에서 신의 주권이 지상 국가의 이념을 정당화해준 것을 거부하고, 백성을 위하여 권력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제한된 왕권 개념).

3.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구약성서의 입장은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선포로 재확인되고 강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의 핵심으로서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 목적으로서 종말론적 성격을 지녔고, 그 나라와 지상의 나라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의 통치자들에 대한 비판(마가 10:42), 빌라도와의 대화 가운데 당신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 것(요한 18:36)은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 준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대한 논란(마가 12:13~17; 마태 22:15~22; 누가 20:20~26)은 흔히 땅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가 병존하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황제의 것에 골몰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것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

4-1. 사도 바울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 이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한 세상의 통치를 주장하였지만(고전 15:24; 골로 2:10,15 등) 또 다른 한편 권위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였다(로마 13:1~7). 이로부터 로마의 ‘황제숭배’는 거부하지만 제국 내의 ‘공공질서’를 용인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태도가 결정되었다.

4-2. 권위에 대한 복종을 말한 사도 바울의 주장은 끊임없는 주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 주장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한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교회역사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관련하여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의 주권 또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더불어 국가권력이 병존할 수 있다는 입장이 형성되었다. 그 입장은 초기 교회 호교론의 차원에서 자연법(이성)과 신법(계시)의 결합으로 정당화되었다.

5. 초기 교회에서의 긴장된 두 경향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하나의 역사철학 안에서 통합된다. 유명한 <하나님나라>(426년경)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본적으로 종말론적 입장을 견지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전망을 그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존하는 역사를 그 궁극적 목적을 향하여 가는 여정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이에 따라 세속국가에 의의를 부여하였다.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에 비춰 세속국가는 불완전(선의 결핍으로서의 악)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6. 중세기에 이르러 교회가 유럽세계를 통일하고 그 정점에 자리잡게 되었을 때 세속국가와 신국은 정연한 위계질서 안에 통합된다. 물론 현실의 양상은 복잡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적 세계관의 차원에서 양자는 완전한 통합을 이룬 셈이다. <신학대전>을 통해 중세 사상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1224/25년?~1274)는 ‘신법-자연법-실정법’의 위계 안에서 교회의 세속국가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보편화를 이룬 셈이지만, 이로써 기독교 본연의 종말론적 전망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하나님나라는 곧 교회 안에서 전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7-1.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기독교적 세계관이 확립되고 보편적 교회의 지배가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기성 ‘교회(Church)’와는 구별되는 ‘종파(Sect)’들이 출현하여 세속국가와 신국을 구별하는 초기 교회의 성서적 입장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여러 종파들은 세속국가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스스로 초기 교회의 ‘사랑의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7-2. 또 다른 한편 기독교적으로 포섭된 자연법과 구별된 본래의 자연법 사상을 재조명하는 경향 또한 대두하였고, 이는 후에 근대 국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역할하게 된다.

8. 종교개혁은 기본적으로 성서적 입장으로의 회귀를 강조하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재가톨릭화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따른 교회는 로마교회에 의해 지배되는 세속국가라는 유일한 질서를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다르지만, 각 주권국가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 이념을 강조하면서 세속국가와의 관계를 지속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세기의 교회를 닮아갔다. 루터(1483~1546)의 ‘두 왕국론’(또는 ‘두 정부론’), 칼뱅(1509~1564)의 ‘그리스도의 주권론’은 그러한 맥락에서 재조명될 수 있다.

9-1. 근대의 정치적 혁명과 더불어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종교/교회로부터 국가의 분리를 뜻하며(중세적 질서의 종식) 또한 역으로 국가에 의한 종교/교회의 간섭(신앙의 자유 침해 등)을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9-2. 그러나 교회이든 국가이든 모두 세계 안에 존재하고, 또한 한 사람은 신앙인이자 동시에 시민으로서 존재하기에 그 ‘분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계속되는 논란꺼리이다. 종교인은 정치에 무관심해도 되는가? 거꾸로 국가는 사회적 공공성을 해치는 종교를 방치해도 되는가?

9-3.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상호관계에 대한 기본적 전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인권의 보장과 사회적 공공성/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 양자는 분리되어 있으되 협력할 수 있으며, 역으로 양자 가운데 어느 편에서 그 목표를 저해한다면 피차간에 저항과 간섭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용인된/용인될 수 있는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피차간 부당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1. 현대 세계의 질서 안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신앙은 부질없는 환상일까?

10-2. 만약 그것이 부질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존재 의의를 상실할 것이다. 구원과 자유의 총괄 개념으로서 하느님나라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 역사를 종결짓고 새로운 세계 역사를 창조하는 실재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완전한 단절과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뜻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 여기 현실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 나은 세계로의 희망을 고무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실질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0-3. 물론 그 희망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적 국면에 따라 매우 다르게 이해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실현방법에서 역사적 국면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고 할 것이다. 그 사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당대의 역사적ㆍ사회적 현실 및 그로부터 제기되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10-4.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나라는 어떻게 구현하여야 할까? 이번 강의는 그 고민을 함께 나누는 기회이다.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가 말했던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이라는 경구는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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