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진보정치와 기독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5-30 00:21
조회
3689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특별강좌

“기독교, 진보의 재편을 생각하다”

2008년 5월 29일(목) 오후 7시


진보정치와 기독교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1. 진보정치와 기독교를 논하는 맥락


“진보정치와 기독교”라는 주제는 특정한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의 제도권 내의  진보적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를 생각해보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제도권 내의 정치라 하면 일반적으로 정당정치를 뜻하는 까닭에 그 차원으로 문제를 좁혀 말하면 정당정치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함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주제는 그렇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정할 것 같으면 사실상 논의의 현실적 근거가 매우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해방정국에서 기독교 이념을 표방한 정당이 존재하기도 했고 최근에 기독교 정당의 정치적 실험이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의 문제의식에서 비중 있게 평가할 만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도들은 주류 보수교회 일각에서 시도된 것으로서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진보정치와는 상관이 없다. 결국 특별히 진보정치와 관련하여 기독교 입장에서 어떠한 정당정치의 경험도 없는 현실에서 “진보정치와 기독교”라는 주제는 정당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로 한정되지 않고,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국가권력 체제 안에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치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함축한다. 우리의 문제 영역이 그렇게 설정될 것 같으면, 우리가 검토할 만한 현실적 근거들은 매우 풍부하다.

이 주제는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진보정치의 재건 내지는 실현에 기독교가 어떤 몫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 전망은 이전의 역사적 선례에 대한 평가 및 반성과 긴밀히 관련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선례에 대한 엄밀한 평가와 반성이야말로 향후 과제를 전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기대와 희망이 섞인 전망을 내놓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역사적 선례에 대한 평가와 반성 없는 전망은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진보정치와 기독교”에 관한 역사적 선례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시도하고 이어 그에 기초하여 결론 삼아 향후 전망을 모색하려고 한다.  



2. 진보정치와 기독교, 그 역사적 선례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정치와 기독교”와 관련하여 의미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시기는 역시 1970년대에서 1987년에 이르는 민주화운동 시기와 1987년 이후 20년간의 민주주의 제도화 시기이다. 이 두 시기를 경유하면서 기독교는 현실의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그 영향을 받아 왔다. 진보적 기독교운동의 입장에서 이 두 시기에 확연히 다른 정치적 경험을 해 왔다.

    

1) 민주화운동과 저항의 정치


1970년대에서 1987년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 시기 진보적 기독교는 제도권 내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가장 효과적으로 제도권 내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가 진보정치의 실현에 효과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국가권력의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비단 진보적 기독교운동과의 관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기독교 세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민주화 세력 내지는 민중운동 진영과의 관계에서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그 상황을 개략적으로 보자면 이렇게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을 기점으로 분화되는 민주화운동의 시대와 민주주의의 제도화 시대의 결정적 차이는 국가권력의 성격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1987년에 이르기까지 개발독재 체제하의 국가권력은 거의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회의 전 영역을 통제하였다. 국가권력은 헌법상 보장된 시민의 제 권리마저 무시할 만큼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했고, 급기야는 형식적으로나마 보장되었던 국민의 기본권마저 제한하는 유신헌법을 통해 전 사회를 통제하기도 했다. 유신체제에 이어지는 신군부의 정권 역시 기본적으로 개발독재 체제의 유산을 계승했다. 당시 지배체제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공규율로 사회를 통제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통제와 가속화된 경제개발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낳고 그에 대한 저항세력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은 그와 같은 조건에서 대두하였다.

흔히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으로 일컫는 당시 사회운동은 사실 이질적인 매우 다양한 운동세력을 총괄하고 있었다. 반공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보수주의 세력의 지배체제 아래서 그로부터 배제된 제도정치권의 자유주의적 세력(당시 야당세력),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재야 및 종교계의 양심세력, 경제개발의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이념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띤 학생운동 세력 등이 모두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의 범주 안에 묶여 있었다. 개발독재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이들 다양한 세력을 하나의 전선으로 묶일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의 진영 내에서 진보적 기독교운동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유리한 조건들 덕분에 민중운동의 요람 역할을 하는 한편 스스로 영향력 있는 민중운동의 한 부문으로서 위치를 점하고 적극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당시 기독교운동이 지닌 유리한 조건들은 스스로의 신학적 입장, 교회가 가진 인적ㆍ물적 자원, 전 세계 교회와의 네트워크 등을 들 수 있다. 민중신학을 비롯한 진보적 기독교운동의 신학적 입장은 강고한 반공주의에 균열을 불러으킬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 반공주의를 무기로 하는 체제의 폭압에 대한 방어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민중운동을 보호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직화된 교회의 인적ㆍ물적 자원, 그리고 국외 교회들의 지지가 민주화를 위한 진보적 기독교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 없다.

당시 기독교운동과 민중운동의 정치행위는 ‘저항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안에서의 정치라기보다는 권위적인 국가권력에 저항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그 국가권력 안에 포섭된 정치세력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였다. 그 저항의 정치는 물론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완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운동을 포함한 진보적 민중운동의 정치적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운동의 강력한 저항으로 권위주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한 국가권력은 자체 내의 모순을 격화시킬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스스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상황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제도권 내 야당세력마저도 포섭할 수 없었던 지배권력은 불안정한 위기의 요소로 내내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 제도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정치국면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그 점에서 저항의 정치는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저항의 정치는 지극히 폐쇄적인 국가권력의 성격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건하에서의 정치행위였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시대적 조건하에서만 의의를 갖는 정치행위로서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한 준거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정치, 특히 지배권력체제 안에서의 제도 정치가 사실상 권력분점을 위한 행위라는 기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저항의 정치는 그 권력체제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반정치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인 정치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체제내화하지 않는 진보정치의 준거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2)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참여의 정치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민중운동은 다양한 운동들로 분화되면서 그 정치행위의 성격도 달리하게 되었다. 저항의 정치보다는 ‘참여의 정치’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특별히 기독교운동에서는 그 상층 인사들이 꾸준히 국가권력 내부에 진입하는 경향을 띠어 왔다. 그것은 기독교가 비로소 국가권력 체제 내에서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진보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를 논하는 데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평가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평가 역시 국가권력의 성격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우선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시기의 개략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1987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거센 저항으로 개발독재 체제가 위기에 처하고 마침내 지배세력은 민주화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세로는 혁명적 위기를 방불케 했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이 권력을 직접 장악하는 혁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민주화의 성격이 결정되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배세력이 민주화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하되 지배권 자체를 이양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배체제가 유지되는 한에서 추진되는 점진적이고 보수적인 민주화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존 국가권력의 성격과 단절한 형태가 아니라 점진적인 변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경제적 성장주의를 그대로 계승하는 가운데 추진되었다. 더욱이 민주화의 과정이 자본의 지구화 과정과 동시적으로 진행된 까닭에, 정치적 자유화로서 민주화보다는 경제적 자유화로서 민주화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민주화가 이전의 민주화운동 시기와는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말하자면, 보수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서이기는 했지만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던 제도정치권의 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고(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지배체제가 급격히 해체되지 않은 조건에서나마 1987년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 가운데 일부가 직접 정권을 구성하기까지 이르렀다(참여정부). 그것이 사회운동의 확장 효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진보적 사회운동 세력 및 진보적 기독교운동 세력의 정치적 참여는 그와 같은 환경의 변화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권력에 참여하여 진보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세력이, 민주화의 한계 및 국가권력의 한계 상황에 그대로 매몰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의 성격을 변화시켜 민주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 역할은 여전히 제도정치 밖의 사회운동 세력에게 사실상 위임해버린 셈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은 정치제도상의 민주화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자본의 권력에 정치권력이 포섭되는 양상마저 띠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장을 명분으로 참여한 진보적 사회운동 및 기독교운동 세력은 국가권력 체제 안에서 의미있는 소수로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채 포섭된 형국이었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성장주의의 외연을 더욱 확대하는 결과를 빚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래 진보적 기독교 세력은 보수적 기독교 세력과 정치적 차원에서 분명히 구별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자원 배분에서 보수 기독교와의 경합관계를 야기하였고, 나아가 경제적 성장주의를 고수하는 권력에 동조함으로써 주류 보수 기독교와 사실상 동반자적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한편 민주화 시대 참여의 정치를 시도한 기독교 진보세력은 제도권 밖의 기독교운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그 동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아마도 제도권 내의 참여 정치를 시도한 세력과 제도권 밖의 기독교운동 세력이 진정한 의미에서 상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양 측면에서 동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을 것이다. 제도권 밖의 기독교운동은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한편 제도권 안의 정치 참여 세력은 운동의 동력을 부여받음으로써 제한된 권력체제 안에서나마 그야말로 유의미한 소수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민주화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그와 같은 ‘행복한’ 관계는 없었다. 비대칭적인 관계만 존재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영향력을 지닌 기독교운동 상층 세력의 제도 정치 참여 과정에서 과거 운동의 후광을 누렸을 뿐 당대의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이 보장하는 자원 배분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 기여라면 기여일까? 특별히 국가를 대신한 민간복지의 일익을 담당한 기존 기독교운동 세력에 그 시혜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시혜 효과는 제도권 바깥 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진보정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불행한 결과였다.  

요컨대, 민주화 시대 참여의 정치를 시도한 진보적 기독교 세력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는 정치 참여 세력이 국가권력의 한계 안에 매몰되어 유의미한 소수로서 역할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운동의 동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인 정치공간을 기독교운동이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 그 준거점을 상실한 기독교운동이 진보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이 전적인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보수적인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도 이러한 상황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3. 민주화 이후 진보정치 위기의 시대, 기독교운동의 과제  


역사적 선례들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는 현재 진보적 기독교운동의 방향을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역사적 선례들에 대한 평가에서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정치공간의 확보가 진보정치의 실현에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제도 정치권 내의 참여 형태보다는 비판적 거리두기가 진보정치의 실현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여러 가지 대안의 방향을 모색해볼 수 있지만, 역사적 선례들에 대한 평가에 기초할 때 우선 떠올릴 수 있는 원칙이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성격에 따라 재고할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현재와 같이 자본의 권력을 배제되지 않는 가운데 대의 민주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조건 안에서는 계속 유효한 원칙이 되리라 본다. 물론 현재의 조건이라 하더라도 제도권 밖의 강력한 운동세력과 강고한 유대 조건하에서라면 제도권 내의 참여 정치 형태가 고려될 수도 있겠지만, 단일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종교적 사회운동의 경우 그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혹 어떤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종교적 집단이 제도권 안팎을 아우르며 정치 세력화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하는 정치집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할 뿐 진보정치 실현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권력 분점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향한다면 모를까 권력의 성격을 보다 민주화하는 데 기여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는 논의의 가치가 없다. 최근 꾸준히 정치세력화 하려는 보수적 기독교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논외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인 정치공간의 확보는 한편으로는 전 사회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효과를 지님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 자체의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길이 된다. 특별히 기독교운동은 권력을 나눠 갖고자 하는 욕망을 철저히 경계하고 낮은 자리에서 정치ㆍ사회적인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운동에 기여하려는 목적을 뚜렷이 해야 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관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독교운동의 여러 형태들을 평가하고 전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기독교운동 내부에는 사안별 또는 부문별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운동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고무적인 현상은 그 운동들이 탈권력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거리두기를 뜻하며, 또 한편으로는 교회내의 권력 곧 교권으로부터 거리두기를 뜻한다. 국가권력으로부터 거리두기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인한 외적 조건의 변화와 함께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독교운동 상층 인사들의 권력 참여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교권으로부터의 거리두기는 기존의 교단구조 및 그 협의구조로서 이제까지 진보적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대한 신뢰의 감소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반성과 함께 기독교운동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매우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과거 ‘진보’[에큐메니칼 진영]와 ‘보수’[복음주의 진영]로 분류되는 기독교의 양 진영 저변으로부터 그와 같은 문제의식이 동시에 분출하고 있고 상호 수렴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기독교운동이 1970-1980년대와 같은 폭발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대 적 조건이 변화된 상황에서 그와 같은 기대를 하는 것이 환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역할과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해서 그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환상에 기대는 운동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역사적 요청에 성실하게 응하는 운동으로서 건강함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의를 지닌다. ‘사심없이’ 그 소임을 다하는 기독교운동의 동력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끝으로 부언하자면, 기독교운동이 기여해야 할 진보정치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 발제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앞의 두 발제 내용을 공유하는 가운데, 토론을 통해 더욱 구체화하기를 기대한다.*



  *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글로서, 논의의 맥을 짚어가기 위한 초고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전의 두 편의 글, “민주화 20년과 기독교 사회운동”(『기독교사상』2007년 6월호)[“민주화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 보수화에 맞서라”라는 제목으로『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에 수록] , “한국 교회의 미래, 적응이냐 변혁이냐”(『기독교사상』2008년 3월호 및 『시대와 민중신학』제10집에 동시 수록)가 이 주제와 직접 관련된 글로서, 보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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