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비경(秘境), 비감(悲感)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7-21 21:57
조회
381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9번째(8월 3일자) 원고입니다(080721).


비경(秘境), 비감(悲感)


시국도 뒤숭숭하여 마음도 편치 않고, 바쁜 일과도 그칠 줄 몰라 어수선하기만 하지만 찾아온 여행 기회를 쉽게 물리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산란한 마음을 다소마나 달래고 싶은 마음도 절실하여 여행을 떠났다. 파격적으로 비용도 저렴하다니 더 가볍게 나섰다.


지역의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중국 호남성 장가계, 원가계의 비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평생 그런 비경을 언제 또 내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비경 앞에 연이은 감탄사 외에 달리 그 느낌을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암절벽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들이 신비롭고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금강산이지만, 아마도 수십 수백의 금강산이 펼쳐져 있는 풍경인 듯했다. 비슷한 풍경이라도 장가계의 장엄함과 원가계의 아기자기함이 대조되는 것은 여행객에게 묘미를 더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행의 진짜 묘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느끼는 데 있다. 선입견 탓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역시 대국으로서 풍모를 물씬 풍긴다. 그 넓은 땅에 그 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을 하고 촘촘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예부터 ‘천하’(天下)를 운운한 중국 사람들의 말버릇을 이해할 만했다.


그런데 11년만에 다시 찾은 중국은 확연히 달라지고 있었다. 거리의 남루한 자취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통팔달한 도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도로변 농가 주택들은 번듯번듯했다. 장사 도심에는 고층건물들이 쭉 들어서 있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야경도 볼만했다. 팔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 차선과 신호를 어기고 아무 때나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의 풍경은 여전했지만, 곳곳에 신호등이 설치되고 교통안전요원도 눈에 띄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디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건설현장이었다. 대국이기는 하되 인민들의 삶은 빈한해 보이는 ‘가난한 나라’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호남성의 경제수준이 중국전체에서 어느 정도냐고 가이드에게 묻자니 평균수준을 약간 밑돈단다. 그 지역이 그 정도라면 더 발전한 지역은 훨씬 번화하리라 예감케 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어떤 도시지역에서 하루 벌어 어떤 오지에서 일년을 살 수 있을 만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부수고 짓는 현장이 마치 고도성장기 우리 사회의 풍경과도 같아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속사정도 그대로 닮았다. 바로 우리 일행이 비경에 도취해 있을 때, 장가계 시내에서는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 졸지에 집을 잃은 사람이 가스통을 폭발시켜 울분을 터뜨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단다. 여행에서 돌아와 국내신문을 보니 나온 기사였다.


그 비경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비감한 실상이었다. 어쩔거나! 그렇잖아도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야인곡 와족 사람들의 원시적 풍경을 보고 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터에, 비경 아래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겹쳐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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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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