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20년 젊어진 사람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9-29 00:56
조회
357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71번째 원고입니다(080929).


20년 젊어진 사람들


요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하다. 한 20년 전쯤으로 되돌아간 것 아닐까? 아니 그보다 몇 년을 더하여 30년 가까이 되돌아간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현상들도 있다. 하나하나 비교하자면 들쭉날쭉하겠지만 대략 한국 민주화운동의 절정기인 1987년을 기준 삼을 것 같으면 그 전과 그 이후 현상으로 대별될 터이다. 그러니 대략 20년여 년이라고 하자.


정권이 바뀌면서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경찰력의 강화현상이다. 몇 달 동안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의를 외면한 정부는 자기 갈 길만 가고 있다.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던 대통령이 그 사실을 곤욕스러워했던 탓일까? 다시 그 곤욕을 치르지 않겠다는 듯이 부쩍 경찰력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틀어막으려 들고 있다. 인터넷 언론에 족쇄를 채우고 네티즌들을 수사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유모차 부대까지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도시 외곽에 평화 집회 지구를 따로 만들겠다는 발상에까지 이른 것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와중에 왕년에 익숙한 간첩사건 발표도 있었다. 공영방송 장악과 각종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 급속히 냉각되어 가는 남북관계, 교과서 이념 논쟁 등등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이 거꾸로 가도 한참 되돌아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그간 민주화로 이룬 성과들을 쉽사리 무너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라 자조했던 기대는 그야말로 순진한 것이었다. 극소수의 부자들만을 위한 세금 정책, 아무리 기대해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서민생활은 더더욱 사람들을 열 받게 만든다.


어느 주일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소를 나누던 교우들이 열띤 성토 끝에 발칙한 상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세월이 20년 거슬러 올라갔다면 우리들 모두 20년 젊어진 것 아닌가!” 발칙한 상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들 엷은 미소를 지으며 20년 전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20년 전이라면 아직 결혼도 안 했고... 그렇다면....???”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얼굴이 제법 발그스레해졌다. 다들 그렇게 발그스레해지는 분위기 한 가운데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튀어왔다. “아니, 20년 전이라면 첫째 녀석이 태어날 쯤 아니야?” 누군가가 응수한다. “그 댁은 그냥 그렇게 사셔유!” 다들 박장대소다.


세월이 거꾸로 돌아간 만큼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렇게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세월의 역류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꿈과 희망으로 그 험한 시절 견디어내며 젊음을 만끽하지 않았던가! 발칙한 상상으로나마 울화통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월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청춘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거꾸로 되돌려진 세월이나 바로 잡아다오. 최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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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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