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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도 다녀왔지요

작성자
박은경
작성일
2011-08-14 16:29
조회
1299




체코에서 세 밤을 자고 구분 없는 국경을 넘어 드디어 폴란드 입국. 그런데 이 네비게이션이 어찌 된 일인지 아예 폴란드에 대한 안내를 거부 합니다(네비게이션도 유럽연합국을 구분합니다). 할 수 없이 지도만 들고 전진.

다행히 해지기 전에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인적이 많지 않은 거리에 불빛도 없어 살아 있는 호텔인지 의심과 긴장이 앞섰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천정으로 창을 낸 예쁜다락방. 침대 네 개 나란히 놓인 것이 일곱 난장이들의 침대 같았습니다. 한편 긴장감으로 한편 호기심으로 숙소를 찾아 들어가며 매일 새로운 서프라이즈게임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도착 전까지는 늘 오늘 혹시 차에서 자야하나 한편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구요.

특히나 동구권에서는 더더욱.

길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국도는 너무도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그저 광활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더없이 아름다운 벌판과 목장과 언덕들. 실은 우리가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갔지만, 산들이 그리 높지 않은 구릉지였고 길도 워낙 좋아 그 산길을 평균 시속 80km 정도로 달려 갈 수 있었지요.

차도 별로 없는 산 속에서 어둠을 맞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되, 그저 차 안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을 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아 있는 그 곳.

울창한 나무숲 끝에는 바다처럼 펼져지던 푸른 구릉과 벌판들. 또다시 검푸른 숲이 이어지다가 평화로운 목장들이 반복되던 그 길. 다시 한번 지나가 보고 싶을 만큼 300km 가까운 그런 길을 그렇게 행복해 하며 달렸지요.

폴란드는 체코에 비해,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도시 분위기도 밝고, 거리의 차들 모양새도 우리와 별반 차이 없어 마음이 놓였지요. 20년 정도 앞선(체코보다) 개방화의 결과가 확연히 눈에 보이는 듯 했지요.  


인류 역사 속에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할 곳 ‘아우슈비츠 수용소‘

두 아이와 함께 그곳을 가 보았습니다.

동물 우리 같은 숙소, 오픈 된 화장실, 그리고는 결국 가스실로 이어졌던 그 안에서의 그들 삶의 행로. 한 방 가득 산더미 같이 쌓아 놓은 희생자들의 신발, 소지품,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으로 짠 카펫트. 또 한 방은 희생된 아이들의 신발로만 가득 차 있고. 지하의 감옥방들. 하루 종일 고된 노동 후에도 서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서있는 감옥‘ 그리고는 결국 이어지는 가스실과 화장터.  [죽음으로 가는 길] 이라는 제목의 큰 사진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

그저 ‘그런 일이 어찌 가능 했을까?’ ‘왜 그들은 그런 일을 당해야 했나’ 그런 의문뿐.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가이더의 담담한 설명 뿐.

(방문자 전부가 그룹으로 나뉘어져 가이더의 인솔하에 이동 합니다. 전부를 돌아

보는데 3시간 정도 걸릴만큼 큰 규모네요.)

아우슈비츠수용소가 베이스켐프같은 가장 큰 수용소로 일단 그곳으로 모두가 이송된 후 온 유럽 각지 몇 십개의 다른 수용소들로 분류되여 보내졌다 합니다. 유태인만이 아니고 비유태인, 전쟁포로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 수용소 안에서도 유태인은 더 차별을 받았다 하구요.

상업화 되고, 관광산업이 되어 바깥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가 없네요. 엄청난 규모의 유료주차장과 이어지는 단체 관광객들, 스넥코너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어린 연령층으로 보일만큼, 아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충격이 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료집 등에서 볼 수 있는 더한 참상의 증거들은 그 곳에는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말을 걸어 올 듯한 총총한 눈빛의 사진들 뿐.

그리고 그저 남아있는 그들의 빈 자리, 그 어두운 흔적들 뿐 이었습니다.

* 살림교회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8-2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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