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

한국사회의 욥, 파인텍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9-01-09 15:46
조회
188
[한국민중신학회 파인텍 노동자 연대지지 성명]
“한국사회의 욥, 파인텍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


“억울하다고 소리쳐도 아무 대답이 없고 호소해 보아도 시비를 가릴 법이 없네.” - 욥기 19장 7절

무고하게 고통을 겪은 욥의 탄식이 21세기의 오늘 한국 땅에서도 생생하게 들립니다. 높은 곳, 75미터 굴뚝 꼭대기에서는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노동자가 42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지난 1월 6일부터는 음식마저 끊은 채 벼랑 끝에서 노동자의 억울함을 침묵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낮은 곳, 스타플렉스 앞 거리에서는 같은 파인텍 차광호 노동자가 단식농성 30일을 넘기며 시비를 가려달라고 사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들 세 노동자는 우리 시대의 욥입니다. 또한 유창한 언변으로 욥의 고난은 욥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비난하던 성서 속 욥의 친구들과 달리, 오늘날 욥의 친구들인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운동가,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이 23일째 함께 단식하며 “21세기 한국의 욥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욥기의 결론은 고통의 종식과 일상의 회복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우리 정부와 사회가 이 시대의 욥기를 불의와 비극으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한국민중신학회(이하 ‘우리’)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호소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의를 세우는 정의로운 투쟁이라고 이해하며 지지합니다. 이 투쟁의 본질은, 온갖 협박을 통해 기업주의 견실한 기업활동을 막고 생계를 책임지라고 생떼를 쓰는 일부 노동자들의 게으르고 비윤리적인 추태가 아닙니다. 반대로, 80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던 회사의 파산을 틈타 이 회사를 헐값에 매입한 후, 분할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부도덕하고 비정한 장사꾼의 전형적인 ‘먹튀’에 대한 저항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천명하는 외침입니다.

사건의 경과와 현재

스타플렉스의 김세권 사장은 8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한국합섬이 2007년 초 파산한 후, 3년여가 지난 2010년 당시 시세 가치 870억 원에 달하는 회사를 반값도 안 되는 399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한국합섬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3,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인수자가 승계하지 않도록 조치했기에 인수자인 김세권 사장이 경영 의지가 분명했다면, 한국 원사업계를 이끌던 회사를 충분히 정상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채권단(산업은행과 삼성)과 법원은 한국합섬 노동조합의 줄기찬 노력으로 자금능력과 경영능력에 더해 근로자 고용의지와 공장 정상화를 인수자의 요건으로 제시했고,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고용보장(노조 인정과 단체협약 체결 포함)과 공장 정상화(공장부지 전환 금지, 설비폐기 금지 포함)를 인수협약 절차 속에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이라는 자회사로 법인을 바꾸어 공장을 재가동하는 변칙적 편법을 사용했고, 가동한 지 일 년 반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노동조합과 사전합의를 해야 하는 법적 절차를 무시한 처사입니다. 결국, 현 파인텍 노조 지회장 차광호 씨가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으로 기록된 408일간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김세권 사장은 2015년 7월에 고용승계, 노조승계, 단체협약 승계라는 세 가지 사항을 다시 약속하며 노조와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이행하는 행태는 기만적이었습니다. 고용승계라며 충남 아산에 세운 파인텍 공장은 스스로 나가떨어질 때까지 구미가 고향인 노동자들을 고문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할 정도로 반인권적이었습니다. 허허벌판에 세운 공장 기숙사에는 이불조차 없었으며, 식사는 하루 한 끼만 제공되었고, 수당과 상여금이라고는 없는 노동의 열 달 임금은 천만 원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승계 보장 합의문을 준수하지 않았고, 열여덟 번에 걸친 노조의 단체협약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파인텍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김세권 사장의 스타플렉스가 본래부터 ‘먹튀’ 의도를 갖고 한국합섬을 인수했으며, 구미공장의 분할매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파인텍이라는 법인을 기만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을 파기한 회사에 대해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행하는 사이, 스타플렉스 측은 기계를 모두 반출하고 공장건물에 다른 회사를 입주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2017년 11월 12일 두 노동자로 하여금 다시 굴뚝에 오르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렇게 투쟁한 지 두 해가 넘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제 424일, 차광호 지회장이 세웠던 고공농성 408일의 기록이 매일 새롭게 경신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는 세월은 노동과 인권이 장사꾼의 이익에 놀아나는 것을 용인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세월입니다. 이 세월의 연장을 막고자 하는 한국 종교계(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천주교, 불교 조계종 등)의 중재로 연말과 연초 4차례에 걸친 노사협상이 이뤄졌지만, 타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75미터의 굴뚝에서 두 해의 겨울을 맞이한 두 노동자는 지난 6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타결책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종교시민사회의 동조 단식 또한 속절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지난 8일 이뤄진 스타플렉스의 기자회견은, 그간의 협상에서 스타플렉스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었습니다. 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 기자회견은, 문제해결을 위한 일말의 뜻도 없이 그저 사회적 여론을 의식하여 협상테이블에 앉은 모양새만 갖추었던 것임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노동자들을 정당한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 스타플렉스 측의 적나라한 민낯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더 무서워하는 비정한 한국 기업의 얼굴을 봅니다.

우리의 요구

우리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슴 깊이 지지하며 한국사회, 국회와 정부, 김세권 대표와 스타플렉스에 다음을 요구합니다.

첫째, 한국사회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적 상황이 사적인 욕망을 손쉽게 채우려는 무능력한 노동자들의 일탈 행위나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강성노조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부도덕한 이윤추구 앞에서 노동자의 생존과 인권이 합법적으로 무시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12년의 세월 동안 800여 명의 노동자가 모두 흩어지고 5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를 합법적으로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남은 노동자들이 강성노조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파인텍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문제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서 해결되는 것은 한국사회 노동상황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파인텍 노동자들의 문제는 한국사회 모든 노동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국회와 정부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용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국회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습니까? 김세권 대표의 스타플렉스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하고 이를 통해 불의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실효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이 사태를 중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몇 푼의 벌금으로 대처하는 현재의 법은 실효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국회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에 호소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을 입법하고 제정해야 합니다. 또한, 스타플렉스의 불법적 기업 행위를 판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파인텍 노동자의 고단하고 긴 투쟁의 세월에 책임을 다하는 중재자와 조력자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힘을 가진 여론에 호도되는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일궈낸 낮은 자들의 진리에 충실하여, ‘공’권력의 역할을 다하기 바랍니다.

셋째, 김세권 대표와 스타플렉스에게 요구합니다. 기만적인 논리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비열하게 무시하고, 유리한 입장을 빌미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할 뿐 아니라, 협상의 자리에 진정성을 가지고 나와서 직접고용을 즉각 이행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작은 마을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되새깁니다. 또한,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복음 4:18)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예수의 복음은 낮은 곳의 사람들, 사건의 계기마다 출현하는 민중으로부터 시작되는 희망입니다.
높은 곳, 75미터 높이의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은 아무리 억울함을 외쳐도 책임 있는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고 법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만한 법이 없는 이 땅에서 낮은 곳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무엇인지를 밝히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해 낮은 곳의 사람으로서 골고다 언덕 높은 곳에서 높은 자들의 죽임 앞에 죽음으로 맞섰습니다. 헤아리는 세월 속에서 곡기를 끊고 생명마저 내놓은 저 굴뚝, 저 75미터 높이 골고다의 언덕 위 두 노동자에게서 우리는 예수이신 민중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그 민중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차광호 지회장의 말, “한국사회가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불의보다 정의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라는 결의가 우리의 가슴에 사무칩니다. 그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국교회와 종교, 온 사회가 ‘정의의 계단’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그 계단을 밟고 ‘우리 시대의 욥이며 예수’인 파인텍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두 발로 굴뚝을 걸어 내려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연대합니다.

2019년 1월 9일
한국민중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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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