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종교개혁과 교회세습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06-01 00:47
조회
723
* <진보평론> 75(2018년/봄) 게재

종교개혁과 교회세습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1. 종교개혁 500주년, 그 개혁의 정신을 무색하게 한 한국교회

20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로마 교황청이 면죄부를 대대적으로 판매했을 때 1517년 루터가 그 부당성을 알리는 95개조 반박문을 공표한 데서 종교개혁은 촉발되었다. 면죄부의 판매는 유럽 전역에서 이뤄졌지만, 독일에서 더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결국 그에 대한 반발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것은 그 만한 사정이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독일의 알브레히트 주교가 교황청과 결탁하여 독일에서 면죄부를 남발하여 그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그 탐욕을 경계하는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어 유럽사회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그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2017년 한국교회 안에서는 각별히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하나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명성교회 세습의 완료였다. 이미 한참 전부터 세습의 의혹을 받아 왔던 터였는데, 결국 그 의혹이 빗나가지 않고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세습을 완료한 일련의 교회법적 절차가 진행된 것이 종교개혁 기념일에 해당하는 10월 마지막 일요일 전후였으니 500년 전 종교개혁의 의미와 그 사태는 더욱 선명하게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촛불항쟁으로 한국사회에 지난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있던 까닭에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교회의 퇴행적 행위는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에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사회적 공신력은 현저히 하락되어 왔다. 그것은 한국의 개신교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권력집단화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다수의 교회들은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화된 교회들의 행태가 곧바로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탓이다. 여기에 교회세습은 부와 권력을 집중한 교회가 사회적 공공성과 윤리적 감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드러내 주는 중대한 사태로 인식되어 교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더욱 집중시키게 되었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교회가 교회 자신과 사회를 개혁시키기보다는 거꾸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집중하고자 하는 욕망을 거침없이 확인시켜주었으니 세간의 지탄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교회세습’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이미지가 ‘북한’, ‘대기업’, ‘대형교회’라고 하니, 부와 권력의 집중을 뜻하는 세습의 실체와 그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리처드 핼버슨)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김재환) JTBC 앵커브리핑의 손석희가 이를 인용했을 때 그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2. 종교개혁, 교회의 권력포기

구원에 대한 열망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부를 축적한 교회의 타락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을 계기로 탄생한 교회가 그로부터 500년 후 다시 그 이전의 교회와 다르지 않은 타락상을 재현하고 있는 현실에서 종교개혁의 의의를 재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애초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렇게 부패한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촉발되었지만, 그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개혁 과정에서 교회 자체와 당시 유럽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는 중요한 신학적 입장들이 확립되었다. 교회에 의한 세속사회의 지배로 특징지어진 중세 유럽사회에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루터의 신학적 동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자 하는 관심사였다. 루터에게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요체는 교회가 세속적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방식은 그간 교회가 장악하고 있던 세속사회에 대한 사법권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신을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종종 곡해되고 있듯이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속사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터는 이른바 ‘두 왕국론’ 내지는 ‘두 정부론’을 통해 신의 두 가지 통치방식을 역설했다. 한편으로는 교회를 통해 복음과 사랑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를 통해 법과 이성으로 통치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의 작동원리와 세속사회의 작동원리를 구분하여, 각기 그에 적합한 존재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양자는 그렇게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이었다. 이로부터 신자로서 교회 안에서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시민으로서 세속사회 안에서 역할을 맡는 기독교인의 책임을 루터는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사회적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교회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을 내려놓고 ‘복음’과 ‘사랑’을 온전히 구현하는 방식을 따를 때 교회는 교회다워지며 세속사회에 대한 올바른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말한 셈이다. 루터가 그렇게 교회로 하여금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하자 세속사회가 해방되었고, 그로부터 유럽사회 안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루터가 교회를 교회답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 데는 온전히 신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해방을 초래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전의 교회는 신과 인간 사이에 수없이 많은 장치들을 설치해뒀다. 하나의 기관으로서 교회, 교회의 전통, 성사, 사제 등등을 매개해야만 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루터가 신에 대한 직접적인 순종을 강조하였을 때 그 모든 것은 상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오늘날 개신교 신학의 상식이 되어 있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이르는 구원의 원리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일체의 업적에 따른 보상의 논리를 무너뜨린 것으로서, 교회의 위계적 질서 안에서의 어떤 직위나 역할, 그 참여 정도와 무관하게 전적으로 각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신앙의 수용과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근대적 의미의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을 예비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존재가 비로소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탐욕스러운 교회의 불의에 항거하여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자 한 종교개혁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근대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오늘 한국교회, 특별히 한국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된 교회라는 자각을 지니고 있고, 마땅히 그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그 의의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3.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한국교회와 세습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해 많은 교회들은 그 역사적 사건을 어떤 형태로든 기념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과연 그 진정한 의미를 새기고 그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자각이 얼마만큼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스스로를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의 큰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오늘 한국교회 현실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오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가 수적으로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세습교회 역시 전체 교회에서 그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2017년 11월 현재 143개 교회가 혈통적 세습을 한 교회로, <감리교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7년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감리교 내에서만 194개가 세습교회로, 그리고 <뉴스앤조이>가 이 두 단체의 자료에 더하여 별도로 제보받은 것에 의하면 2018년 1월 현재 350개 교회가 세습교회로 파악되고 있다. 그 수치가 전체 교회 안에서 어느 만큼의 비율인지 알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 수를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자료는 없고 다만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 교회의 수는 77,966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습교회가 정확히 파악된 것도 아니고 동일 시점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자료도 없어 엄밀하게 비교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현재 파악된 것만 놓고 단순 비교하자면 세습교회 비율은 0.5% 쯤 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교회세습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반화된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 현상이 거리낌 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한국교회의 어떤 병폐를 함축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교회세습은 대체로 집중된 부와 권력을 용이하게 통제하기 쉬운 권위주의적 구조를 갖추고 있는 교회가 그 구조를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방편으로 단행되고 있다.
하나하나의 사례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 교회세습이 행해지고 있는 교회들은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두드러진 경우가 다수를 이룬다. 부연하면 최근 교회세습은 교회 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던 이른바 자수성가형 목회지도력 1세대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점과 맞물려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 세습은 말 그대로 직계 부자세습이 가장 전형적이지만,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이 꼽고 있는 방식을 보면 사위세습, 교차세습, 지교회세습, 징검다리세습 등 매우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어쨌든 가장 가까운 가족집단 범위 내에서 세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세습이 이뤄지는 경우 목회지도력의 안정적 계승이라는 점이 대개 그 이유로 꼽히고 있다. 목회지도력의 안정적 계승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전임자의 성향과 그 전임자를 정점으로 하는 교회구조를 그대로 존속시키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한 경우를 들어 일반화하면 억울해하는 당사자들도 없지 않겠지만, 지금 세간의 최대 관심대상이 되고 있는 명성교회의 경우를 통해 그 속내를 살짝 엿볼 수 있다. 그 교회는 규모면에서 방대할 뿐 아니라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두드러지고, 또한 교인구성이 다수의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사들로 이루어진 점 등 이른바 전형적인 대형교회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그 교회 재정담당 장로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 법원에서도 인정된 바와 같이 수백 억에 이르는 비자금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교회세습에는 해당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교회에 의해 설립되어 변형된 형태로 세습이 이뤄진 언론사의 대표가 회사자금 유용과 관련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볼 때, 이른바 지도력의 안정적인 계승으로서 세습이 집중된 부와 자원에 대한 배타적 권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안정적 계승을 하고자 하는 그 의도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일찍이 교회세습이 이뤄지고 사실상 그 선구 격에 해당하는 충현교회(그 교회는 김영삼 장로가 다녔던 유명한 교회이기도 하다)의 경우 심각한 분란을 겪은 바 있다. 지금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여러 교회들의 경우 세습체제가 안착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만큼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심각한 문제는, 실제 세습을 단행한 교회는 전체 교회에 비해 소수에 해당하지만 많은 교회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지향성과 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교회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 기회를 통해 그렇게 체질화된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최형묵,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이야기쟁이낙타, 2009 등 참조),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주류 한국교회는 그 어떤 사회세력보다 돌진적인 근대화의 속성을 체질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성공한 교회는 국면에 따라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한국적 근대화 과정에서 그 전도사로서 충실한 역할을 담당한 주류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그 논리를 체질화하고 전파하는 역할 또한 충실히 감당하였고, 여러 정치적 국면에서도 보수정치세력을 선도하는가 하면 동조하는 가운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주류 한국교회는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진 바 없고 여전히 스스로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하고자 하는 욕망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교회세습은 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 주는 하나의 시금석과도 같다.

4.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교회세습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한국교회의 공공성 결여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 의미에서 보나 사회적 통념으로 보나 교회가 배타적 독점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굳이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위하여 덧붙인다면 ‘교회’의 본래적 의미를 환기해볼 수 있다. 본래 ‘교회’라는 말의 기원은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cclesia)’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민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자신들의 회중을 그 개념으로 불렀을 때 그것은 의도적 이었고, 대안적 공동체로서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그 교회를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였다.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어찌 특정 개인이나 배타적 세력에 의해 독점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신학적 개념을 공유하는 것과 별개로 세간의 시선 또한 교회가 지니는 공공재적 성격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남의 집의 일이라 생각하면 교회가 세습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결국 교회는 스스로 따르고 있는 신학적 근거에서 보나 세속사회의 공공성 내지는 공정성의 기준에서 보나 높은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기대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유수한 개신교 교단들이 서둘러 교회세습을 방지하는 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세습방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들조차도 법을 피하는 우회적 방법이나 편법으로 세습을 단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법적으로 심판하는 교회내의 사법적 절차가 있지만, 세습을 단행한 교회의 영향력 탓에 그 법적 심판마저도 신뢰할 수 없는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국가사회의 법으로 교회의 세습을 금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기에 해법이 되기 어렵다. 다른 교회들과 사회의 비판적 평가들을 의식한 교회의 자정노력 또한 세습을 행한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나 그 성향이 변화되지 않는 한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비판적 여론을 환기함으로써 문제의 교회 신도들로 하여금 충성을 철회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와는 다른 대안적 모형을 추구하는 교회들의 노력일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스스로 보유한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윤리의식을 갖춘 대안적 교회들은 실제로 다수 존재하고 있고, 그나마 한국교회 전반이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교회들이 누룩과 같은 존재로서 몫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다른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세습을 단행한 교회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가능성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존재의 후광과 영향력이 존재하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시한은 그리 길지 않다. 세습세대가 독자적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할 텐데, 그 난관은 교회 내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감각과 높은 윤리의식은 세습지도자들이 뛰어넘어야 할 최대의 난관이 될 수 있다. 교회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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