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코로나19에 대처하는 K방역의 명암(明暗)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9-30 10:15
조회
757
日本 『キリスト教文化』(『그리스도교문화』) 원고 / 2020년 겨울


코로나19에 대처하는 K방역의 명암(明暗)


崔亨黙(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


1. 시작하는 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낯선 경험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사실 이에 대한 대처는 국제적 연대를 절실히 요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공식적으로 발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제적 연대보다는 각국별 대처 양상이 두드러진다. 그 까닭에 어떤 나라가 방역에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하는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2020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는 발원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현상이었다. 처음 우한(武漢)에서 시작하여 무섭게 번져나가던 사태를 중국이 어느 정도 통제할 즈음 그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한국에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감염자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 순위는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뒤바뀌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로 급속히 확산되고, 이어 미국에도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결국 팬데믹에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오히려 방역에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고, ‘K방역’이라는 이름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결코 예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그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따지는 논란이 세계적 차원에서 펼쳐졌다. 그 논란의 과정은 미묘했다. 처음 동아시아의 현상으로 머물러 있던 국면에서 서구 언론은 대체로 중국보다는 한국의 방역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권위주의보다는 민주주의가 낫다는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내 서구 국가들에 급속히 확산되어 가는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진정되는 국면에 이르자 한국 역시 동아시아 공통의 권위주의 유형의 하나로 간주하는 평가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해 있다고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역에 성공하지 못한 서구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을 민주주의 유형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K방역으로 일컬어지는 한국형 코로나19 방역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으며, 성공적으로 평가되는 그 방역의 이면에 어떤 문제는 없는 것일까? 이 글은 한국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체험한 그 실상을 살펴보면서 그 의의를 평가하고,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려 한다.


2. K방역과 ‘민주적 시민성’

한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할 즈음 나는 휴가차 일본 교토에 머물고 있었다. 2월초 떠날 즈음에는 중국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20여명 수준의 감염자가 있었을 뿐 대체로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회와 민간 차원에서 중국에 마스크 보내기 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정부에서는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교포들을 이송한 그 즈음이었다. 한편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이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한국정부는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개방하는 대신 철저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이른바 ‘K방역’이라 불린 방역조치가 이미 이때부터 취해지고 있었다. “개방성, 투명성, 민주적 절차”라는 대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방역 조치로 “검사ㆍ확진, 역학ㆍ추적, 격리ㆍ치료(3T: Test-Trace-Treat)”가 시행되고 있었다. 일본도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크게 염려하지 않고 휴가 길에 올랐다.
이미 공항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중국발 승객들이 별도의 검역절차를 거치는 동안 그 밖의 승객들은 오히려 통관 시간이 단축되었다. 교토에 머무는 동안 외출시 늘 마스크를 착용하기는 하였으나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1주간 남짓 지나니 한국으로부터 종종 염려하는 연락이 왔다. 일본이 심상치 않으니 주의하라는 이야기였다. 2주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입국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서둘러 귀국하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2월말 일본 지인들의 걱정을 받으며 귀국하였다. 공항 풍경은 또 달라져 있었다. 아예 한산했고, 목적지를 향한 리무진 버스에는 나 혼자만 탑승했다. 비로소 코로나19 위기를 실감하는 오싹한 순간이었다.
대구(大邱) 신천지(新天地)교회에서 31번째 감염자가 나타나면서 급속히 확산되어 연일 수백 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1만 명에 이르는 것을 보았을 때는 공포감이 느껴졌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매일 언론을 통해 현황을 브리핑하였고, 각 개인들에게 몇 차례씩 재난 메시지를 보내며 방역상 필요한 확진자의 동선을 알려주었다.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라는 권고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다. 잠시 마스크 소동이 있었지만, 곧 수습되어 누구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외출시 특히 대중교통 이용시 착용이 필수화되었다. 직장별로 가능한 한 재택근무가 권장되었고, 학교 역시 개학을 미루다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였고 개학을 하였을 때도 출석인원이 제한되었다. 교회의 예배도 가능한 한 비대면 예배로 전환할 것을 권고 받았고,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서 행정명령으로 대면예배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각종 집회와 회의 등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이동과 대면이 최소화되는 그야말로 낯선 경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국은 앞서 말한 대로 “개방성, 투명성, 민주적 절차”라는 대원칙에 따라 “검사ㆍ확진, 역학ㆍ추적, 격리ㆍ치료(3T: Test-Trace-Treat)” 절차대로 방역에 만전을 기했다.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에 따라 검사는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 모두에게 무료로 이뤄졌고, 확진될 경우 치료 역시 무료였다. 검사는 드라이브 스루(DT: Drive Through) 및 워크 스루(WT: Walk Through) 방식의 도입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다. 역학조사와 추적은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가능한 한 사생활침해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자가격리 및 집단격리 대상자들에게는 지속적인 확인 절차와 더불어 2주간의 격리 기간중 필요한 건강체크 도구와 식료 및 생필품 등이 역시 무료로 제공되었다. 감염자가 폭증할 때 치료시설과 치료인력은 큰 문제였다. 전문치료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도 부족하고, 특히 대구에서 집중 발생했을 때는 치료 인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민관은 상호협력을 통해 가능한 시설을 경증 환자 치료시설로 전환하여 부족분을 보충하고, 전국 각지에서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인력 공백을 메우며 대처하였다. 덕분에 감염이 확산되는 국면에서도 낮은 사망률(9월 현재 1.65%)을 기록하는 가운데 치료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선거가 연기되는 와중에서도 4월 15일 총선거가 감염 확산 없는 가운데 치러졌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듯싶었는데 이내 정리되었고, 디지털 행정을 기반으로 하여 전 국민 모두에게 신속히 지급되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대다수 시민들은 정부의 조치에 협조적이었다. 4ㆍ15 총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귀결된 것도 정부의 방역대책에 대한 신뢰의 한 표현이었다. 정부의 방역대책을 그저 수동적으로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대구지역에서 감염이 급증하였을 때는 타 지역 의료진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지원하였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설을 숙소로 내주기도 하였다. 치료병상에 여유가 있는 광주(光州)지역에서는 환자들을 받아들이는 지역연대도 이뤄졌다. 마스크 보내기와 지원 모금활동도 활발히 펼쳐졌다. 정부의 강도 높은 방역조치도 시민들의 협력이 없었으면 실효성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K방역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은 가장 두드러진 양상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그 배경에는 2014년 세월호(世越號) 사건과 2015년 메르스(MERS-CoV) 사태의 교훈이 있었다. 4월 16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 있다”며, “누구도 속절없이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4월 13일 강경화(康京和) 외교부장관은 프랑스 공영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하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대응이 부적절한 탓에 304명이 숨졌다. (참사는) 한국인 전체에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초기 정부 대응이 불투명하고 (심각성을) 무시하는 듯해 강하게 비판을 받았다. 현 정부는 재난 상황에 대비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재난을 예방하기는 어렵지만 철저하게 대비해서 사람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정부 관료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이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것은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에 걸친 촛불항쟁을 통해 외쳤던 요구에 대한 정부의 책임있는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 촛불시민의 그 외침은 단지 박근혜(朴槿惠) 정권의 국정농단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안전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도 안일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부터 촛불항쟁은 시작되었다. 그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정부로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는 정부의 태도에 시민들은 지지를 보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된 것이다. K방역 성공의 저변에는 ‘민주적 시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이끌어낸 원천적 힘이었고, 또한 동시에 자발적 협력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 동인이었다.
물론 한국정부가 효과적인 방역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제도적 조건 및 기술적 조건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는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없이 진단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였다. 일시적으로 마스크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의료보험 시스템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 기본적 조건 위에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도록 보장한 법적 제도가 갖춰져 있었다. 이는 특히 메르스 사태 이후 방역관련 법률들을 정비한 덕분이었다. 최근 9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한 질병관리본부의 역할 강화도 한 몫 하였다. 또한 높은 수준의 디지털 기술 활용과 스마트폰의 활용이라는 기술적 조건이 방역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신속하고 투명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촛불항쟁 이후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때로는 소모적 논쟁을 야기할 만큼 지나친 언론보도가 없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언론의 보도는 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데 일조하였다.
K방역이 성공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공공의료 시설과 의료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은 전체 의료기관 병상 수에서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2018년 기준 10%밖에 되지 않는다(OECD 가입국 중 영국 100%, 호주 69.5%, 프랑스 62.5%, 독일 40.6%, 일본 26.4%, 미국 24.9%). 또한 의사인력 면에서도 2018년 기준으로 인구 천명당 한국은 2.4명으로 OECD 평균 3.5명에 미치지 못한다(멕시코 2.4명, 일본 2.5명, 미국 2.6명, 프랑스 3.2명, 독일 3.5명). 다만 인구 천명당 병상 수에서만큼은 12.4개로 OECD 평균 4.5개를 훨씬 웃돌아 일본과 함께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일본 13.0개, 독일 8.0개, 프랑스 5.9개, 미국 2.9개, 멕시코 1.0개).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공 병상 수가 턱없이 낮은 것을 감안하면 민간의료기관의 협력 없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어려운 형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사실 자체가 반증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확산국면 가운데서도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 차원의 적극적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결여되어 있는 조건마저 뛰어넘어 성공적 방역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적 시민의식에 기초한 민관의 협력 덕분이었다. 감염병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취해진 정부의 조치들을 단순히 감시와 통제라는 통상적 패러다임으로 즉시 환원할 수 없는(Slavoj Žižek, Pandemic! COVID-19 Shakes the World, 한국어판『팬데믹 패닉』, 99)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라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밝혀주고 있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기사 가운데 ‘의외의 응답편’(『시사IN』663[2020.6.2.])은 한국의 방역 성공이 집단주의나 순응성으로 설명되는가라는 물음을 포함한 대규모 사회조사의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 결과를 따르면, “한국의 방역을 성공시킨 힘”은 “권위주의, 순응 성향, 집단주의”가 아니며 “민주적 시민성이 높은 사람들, 수평적 개인주의자들”이야말로 “방역 성공의 주역”이다. 이 기사는 설문조사에 기초해 ‘민주적 시민성’을 “개인이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좋은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래서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黃靜雅,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모델’”, 『창작과비평』189[2020/가을], 27). 이 분석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방역성공은 오랜 문화적 전통보다는 오히려 최근에 고양된 민주주의의 경험에 그 요인이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비교해 아주 가까운 예로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3. K방역의 그림자와 쟁점들

앞서 말했듯이 K방역이 전적으로 성공할 만한 요인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빈약한 공공 병상과 역시 상대적으로 부족한 의사인력의 문제는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한계 요인이다. 2-3월 한국에서 코로나19 급증 현상이 대구라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또한 자발적 협력과 지원이 있었기에 그나마 그 한계를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지, 만일 전국적 현상이었다면 의료체계의 한계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지금 공공의료 체계를 확충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는데, 그 내용은 의대 정원의 확대와 공공의대 설치 및 지역의사 제도 등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그것이 의료의 질을 떨어트린다며 의사들이 집단휴진으로 맞서는 바람에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는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의사 증원이 경쟁자의 확대로만 여겨지는 풍토에서 빚어진 사태이다. 일단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들어간 이후 다시 원점에서 재론한다는 합의로 의사들의 휴진 사태가 중지되기는 하였으나, 향후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로서 코로나19로 인한 위험부담과 고통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가중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계급과 계층, 성별과 출신을 가리지 않지만, 이를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심각한 고통을 낳는다. 한국에서 코로나19는 그 재난 불평등의 상황을 확연하게 드러내주었다. 예컨대 감염병에 취약한 노약자, 감염병이 번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혹독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 사회적 거리두기로 폐업해야 하는 자영업자들과 일자리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초기에 노인요양병원과 폐쇄적인 정신병원 등의 감염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감염병에 취약한 계층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특수고용노동자들(사업자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사실상 노동자에 해당하는 사람들, 예컨대 배달업자 등),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부담과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 자체를 자제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하여야 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물류배달업체에서의 감염 확산과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염 확산은 그 실례였다. 또한 정부가 실업으로 인한 생계에 대한 대책으로 업체들에 지급한 고용유지 지원금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 역시 방역취약 조건에 놓여 있다. 다행히 싱가포르에서처럼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감염확산이 일어난 양상은 없었지만, 마스크 보급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급대상에서 배제되었는가 하면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제외되었다. 일부 지방정부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한적이었다. 또 다른 한편 코로나19 위기는 심각한 성별격차를 드러내주기도 하였다. 여성 대부분이 먼저 일자리를 잃고 생계의 위협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필수노동으로서 돌봄노동(간호, 요양보호, 간병 등) 역시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만큼 노동의 피로와 감염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한국사회(2018년 기준 25.1%)에서 이들의 상황 또한 심각하여 자영업 상당수가 폐업의 위기를 맞았다. 2차 재난지원금이 지급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향후 산업구조 재편을 통해 고용안정을 꾀하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는 형편이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 위기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상황을 노정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위기와 같은 양상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또한 다른 종류의 감염병 위기가 닥칠 가능성 또한 높은 현실에서 산업구조 자체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변화가 예견되는 만큼 불평등을 해소하고 안전한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공통 과제라 할 것이다.
이상의 문제가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재난상황에 더 취약해진 집단의 문제라 한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적극적 행위를 통한 사회구성원의 인권 침해 문제도 논란거리이다. 이른바 ‘방역국가’의 적극적 행위로 인한 인권침해의 가능성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일단 한국의 경우 ‘민주적 시민성’을 기초로 한 국가의 방역조치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한 행정명령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이에 따른 격리대상자 선정의 적절성, 역학조사를 위한 동선파악에서 사생활침해 요인, 집회의 제한 및 금지의 적절성 등이 그 쟁점이다. 이 쟁점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검토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긴급한 위기시 국가의 방역조치들을 단순히 감시와 통제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민주적 규율과 사회적 합의 기반이 취약해질 때 국가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로 귀착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려는 것도 사실이다. 그 동기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통제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는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해 한편으로 저널 등을 통한 조용한 비판적 성찰의 목소리가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광장에서의 집회 및 유튜브를 통한 극우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더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실제 방역조치들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부를 반대하는 주장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Hate Speech)이 난무한 8ㆍ15 광화문(光化門) 집회는 그 단적인 예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보수세력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전광훈(全光焄) 목사가 주도한 이 집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중대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신도들 가운데 1,000여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는가 하면 8ㆍ15 광화문 집회 참석자 가운데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로 인해 한국사회는 재확산의 위기로 내몰렸고, 정부는 다시 강도 높은 방역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회에 동조하는 이들의 주장은 집회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어 언뜻 보기에 중요한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민사회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사회적 편향으로 지탄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유지가 강도 높게 시행되는 동안 노동자들의 집회가 금지되거나 집회 허락의 경우에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조건이 동반되었는데, 그 경우와 비교할 때 그 집회 자체가 허락된 것이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체의 방역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방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그들이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었다.
지난 2-3월 한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이 교회를 매개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8월의 재확산 또한 교회를 매개로 하였다. 물론 문제가 된 두 교회는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다. 2-3월 확산의 주요 매개가 된 신천지는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되는 교회이고, 8ㆍ15 집회를 주도한 사랑제일교회 역시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그와는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 경계가 꼭 그렇게 분명한 것도 아니다. 대다수 교회들이 정부의 방역대응에 협조적이고 교회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에도 상당수 교회들은 집회 제한 또는 금지를 종교의 자유 탄압이라며 비대면 예배 대신에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그 교회들 가운데 일부 교회가 감염의 지역 확산에 중요한 매개가 되는 사례들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교회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나, 한국교회 안에서는 비단 신천지나 전광훈류의 극단적 경우를 예외로 하더라도 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컨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로 대표되는 진보적 교회들과 다수의 교회들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방역조치들에 협력적 태도를 취하는 반면 새롭게 구성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UCCK)으로 대표되는 한편의 교회들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도 내내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계지도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자리에서 한교총의 대표는 사업장 또는 영업장과는 다른 교회의 예외성을 강조하여 시민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비단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상 가운데 현존하는 교회의 근본적 역할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 맺는 말

이른바 K방역이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모형으로 남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여전히 팬데믹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니고 세계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북반구에는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다. 모든 삶의 조건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한 나라가 극단적인 폐쇄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한 나라의 방역 성공이 그 자체만으로는 보장될 수 없다. 더욱이 K방역은 그 주요 원칙 가운데 하나로 ‘개방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가능한 한 왕래를 자유롭게 하는 가운데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는 원칙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그 어떤 변수에 따라 사태가 급반전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 글이 발표될 즈음 어떤 양상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한국의 국내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몇 차례의 방역 위기가 있었다. 지난 2-3월 대구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1차 확산, 그리고 이어 수도권에서 콜센터와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확산, 이태원(梨泰院)발 확산 등의 위기가 있었고, 최근 8월에는 8ㆍ15 광화문집회를 계기로 수도권 및 전국 단위로 광범위하게 재차 확산되는 위기를 겪어왔다. 그리고 교회 와 종교집회, 특정 업종을 매개로 하는 지역 확산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그때마다 적절한 대처로 지금까지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봄 1차 대규모 확산 때 1만 5천여 명에 달했던 감염자 수는 8월 중순 이후 확산으로 2만여 명에 달하게 되었지만 9월말 현재 그 증가 추세는 줄어들고 있다. 여전히 “개방성, 투명성, 민주적 절차”라는 원칙에 따른 “검사ㆍ확진, 역학ㆍ추적, 격리ㆍ치료”의 절차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쟁점들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해법 또한 찾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불안한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어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성공적인 방역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K방역의 성공적 요인이 시민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바탕으로 모든 나라가 서로 협력하는 국제적 연대 가운데 코로나19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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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