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45] 지혜롭기 위해서는 어리석어야 - 고린도전서 3:18~23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2-10 21:50
조회
875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고린도전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12월 10일 / 최형묵 목사


제45강 지혜롭기 위해서는 어리석어야 - 고린도전서 3:18~23



1. 지혜롭기 위해서는 어리석어야  - 3:18~20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함으로써 그 온전성을 강조한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처음의 주제(1:18~2:16)를 다시 환기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다시 대비한다. 먼저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말 것을 말한다. 스스로에게 기만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한다. 세상의 지혜는, 진정한 지혜로서 하나님의 지혜에서 볼 때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혜에서 볼 때 어리석어져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욥기와 시편의 구절을 들어 이를 재삼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우리는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구별되고 대비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바울이 주장한 내용을 따라 볼 때, 하나님의 지혜는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것’(2:7)으로, ‘영으로 분별되는 것’(2:14)이다. 이 진술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가 십자가의 도로 대변되는 것(1:18, 23)으로 말하고 있어, 그 진술을 통해 그 실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술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바울은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도록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 세상의 지혜와 대비된다면, 당연히 세상의 지혜를 말할 때 언급한 그 속성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유대사람이 추구하는 표적과도 다르고 그리스 사람이 추구하는 지혜와도 다르다(2:22). 또한 육신의 기준으로 볼 때 지혜로운 것, 권력 있는 것, 가문이 훌륭한 것과도 다르다(2:26). 더더욱 분명한 것은 멸망할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와도 다르다(2:6)는 것이다. 유대인이 추구하는 표적은 스스로의 삶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여 신의 능력에 기대는 태도를 말하며, 그리스인이 추구하는 지혜는 진정한 삶의 변화와는 무관한 도구화된 지식을 뜻하는 것이다. 육신의 기준으로 볼 때 지혜로운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통달한 것을 뜻하며, 그것은 권력에 의해서, 그리고 출신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멸망할 자들인 세상의 통치자들의 지혜이다.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란 곧 자기과시적인 지배의 법칙을 뜻한다.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의 도는 그것과 대극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대비함으로써 세상의 지혜와는 전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2. 그리스도인의 주권과 그 근거 - 3:21~23


그러므로 바울은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를 대변하는 태도일 뿐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라는 말은, 그 누구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 실존을 말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 누구의 종이 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공동체 내의 지도자라 해서 그들이 공동체 구성원의 주권을 대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도자들 역시 공동체의 일부일 뿐이다. 그들은 동역자일 뿐이다(고후 1:24). 나아가 삶과 죽음,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 모두가 자신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삶의 주권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역설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어떤 지도자에게 매여 무슨무슨 파니 하면서 자신의 삶을 예속당하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바울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전적인 자유와 주권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지혜, 바로 그 지혜를 통해 진정한 자유인이 되며 주권자가 된다. 바울의 이 주장은 9:19에서 더욱 구체화되며 심화된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루터의 유명한 명제가 제시된다.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바울은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의 도에 그 역설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털끝만큼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그 역설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철저한 자기비움 가운데서 깨닫고 경험하는 어떤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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