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목사야 제 흥에 겨워 산다지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2:03
조회
291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스물두번째 원고입니다(050721)


목사야 제 흥에 겨워 산다지만...


달거리 때마다 유난히 심한 두통을 겪는 집사람이 병원에 다녀와 이야기를 한다. 의사 가 심한 스트레스에 우울증 징후까지 있다고 했단다. 그놈의 두통 때문에 수시로 병원을 드낙거려도 신통한 처방을 얻지 못한 터인데, 이번에는 제법 깊은 상담을 한 모양이다. 의사가 집요하게 물었단다. 특히 가족관계에 혐의를 두고 다그쳐 물었던 모양이다. 그건 아니라고 답하다가 결국 노인들을 돌보는 일터에서 일하고, 또 교회 목사의 '사모'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랬더니 의사가 그 정황을 이해하더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터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거기서 겪는 스트레스가 어떤 것인지 나도 대충 알고 있고, 또 가족으로서 남편으로서 스트레스 원인제공 혐의를 일정 정도 면책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찌 내가 그로부터 완전히 면책될 수 있겠는가? 일터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문제이지만, 항상 붙어 다니는 딱지가 '사모' 아닌가? 그러니 '나는 죄가 없소이다'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워낙 활달한 성격에다, 또 자유로운 신앙의 기풍을 가지고 있으니 집사람은 '사모'라는 사실을 의식하기보다는 그저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서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처신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심심치않게 '신실한' 신앙을 가진 주변 사람들은 '사모'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을 '경고'하고는 한단다. 그때마다 움찔하고, 그때마다 풀어지려던 스트레스는 강도를 더해가고 그렇게 플러스 알파는 누적되리라.

그 뿐인가? 교회에서도 목사는 어찌되었든 항상 드러나는 존재이지만, '사모'(이거 자꾸 따옴표 치자니 거추장스러운 노릇이지만, 원래 목사가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리하는 노릇이니 양해 바란다.)는 사실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되어 있다. 교회가 잘 되면 목사의 영광이요, 잘 안되면 사모의 부덕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흔하지 않은가! 그러니 '사모'들끼리 모이면 이런 말을 하기까지 한다. '전생에 죄 많은 여자가 사모가 된'다고.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했다가는 또 부지불식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그런 처지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 해주지 못하는 목사의 무력감이란? 교회의 문화와 일반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사모'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강단에서 역설한다면 어찌 될까? 그렇다면 틀림없이 '사모'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것이다. '사모'에게 뭔 문제가 있나보다 할 테니까. 목사로서 문제를 제공해놓고도 별 수 없이 남편으로서 더 깊은 배려와 어떤 몫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 한들, 맨날 쌀 안 나오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분주한 사람을 성원해주고 지지해주는 그 고마움을 어찌 갚을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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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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