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

인터내셔널 3- 거리두기

작성자
박영기
작성일
2013-06-11 09:15
조회
1490
재미있고, 자극이 많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특히, 발제자님의 산뜻한 요약과 중요한 문제제기들, 전홍진 장로님의 '헌신'에 대한 말씀은 요즘 제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자극제였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저자의 책 속에서도, 토론 내용속에서도 빠진 '진보적 기독교' 내부의 자기반성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가 문제제기 했듯이, '선한교회'라는 문제? 목사님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말씀하셨던 '목적과 수단의 일치의 문제'.... 여러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얽킨 상황들이지만....


제가 요즘 고민하는 주제(정치적 전환과 관련해서)와 관련해서 한 마디 거들고 싶은 것은 바로,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대안의 전환입니다.


부정과 긍정이라는 범주에 의존해 간단히 문제제기를 해보자면, 과거 '진보적 기독교'는 '부정적 대안'을 주로 추구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부정(파괴) 없이는 그 어떤 긍정적인 것이 탄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서 강조하고픈 말은 '파괴적 부정'의 부분이 아니라, '반대라는 형식만을 갖는 부정'입니다. '독재 반대', '이명박 반대'....아마도 대표적 교회가 향린교회가 아닐까 합니다.  


이제 그런 형식의 대안은 끝났다는 생각입니다. 부정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긍정의 형식'에 대한 창조적 사유-실천이 간절합니다. 그런 창조적 사유-실천에 기반한다면, 교회도 주체도 그리고 '헌신'도 마땅히 기존의 것과는 형식과 내용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 개념을 '거리두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보편성)의 조건이죠.


억압적인 국가(기구)와 이데올르기적 국가 기구들(가족, 학교,교단..)과의 거리두기


거리두기는 거부가 아닙니다. 거부가 반대의 투쟁형식을 취했다면, 거리두기는 앞서 말한 부정의 긍정적 형태를 창조하는 투쟁형식을 갖습니다. 물론 거리두기는 억압의 소멸을 지향하지만 이는 거부보다도 더 더딘 작업일 것 입니다.


현 기독교적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제도(기장교단)나, 인물(수없이 많은 진보적 목사들)들로부터 거리두기


더 자세한 내용은 7월에 나올 제 번역서를 참조하세용^^
한 창조적 사유-실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7-04 16:09)
전체 1
  • 2013-06-14 20:11
    번역서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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