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내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 에베소서 1:8~11[김현경 교우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0-01-19 14:54
조회
28115
2020년 1월 1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여신도주일
제목 : 내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본문 : 에베소서 1:8~11
김현경 교우



2020년, 올해는 저에게 조금은 특별할 수 있는 해입니다. 제 만 나이로 60이 되어 회갑이고,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살림교회 개척 후 20년이 되어 온전한 안식년을 보낼 수 있게 된 해입니다.
제가 안식년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런 무거운 말씀 나누기의 과제를 받았네요. 제가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내 머릿속에 들락날락하는 생각거리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매일 사는 게 힘들다고 말 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나?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정말 먹고살기 위해서일까? 물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표현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겠지요. 그럼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의 모습을 말하는 걸까? 언제부터 인간답게 살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내 집을 마련하고 통장에 여유 돈이 좀 모여지면 그때 가능할까? 우리가 뭔가에 속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답게 사는 삶에 대해 사회적이나 학문적으로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기준은 추상적이지만 ‘조건에 매여 있는 나로부터 되고 싶은 나로 가는 과정에서 수고하는 애쓰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하루종일 바쁘게 살고는 있는데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만족감이 있고 기쁨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꿈이 있기는 한가?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고 나를 스스로 어떻게 대접하고 살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늘 뭘 입고 나가나? 저녁을 또 뭘 먹어야하나? 정도~ 몸이 힘들다고 하는데도 쉬어주질 않고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도 많고 스스로에게 몰인정한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또 하나 제 안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권리를 지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물음입니다.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자기 의지와 아무상관 없이 삶의 조건이 열악한 사람들, ‘인간답게 산다’는 그 말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열심히 살다보면 복을 받겠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 하느님이 책임져 주시는가? 저는 그 믿음도 없어요. 그래서 화가 나요. 시시때때로 하느님께 질문을 하는데 아직 답을 못 알아들었어요. 평소에는 나 살기 바빠서 무심하게 살다가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보면 또 며칠동안 가슴앓이를 합니다. 자기 안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있는 것들이라면 성장통을 겪으면서 해결되어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들, 복합적인 어려움에 싸여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나? 또 세월호사건, 강원도 산불, 포항지진, 그 밖의 자연재해를 당해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자식을 생매장시키고 삶이 뒤틀려버린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런데 이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너의 궁금증이 그 분들께 뭔 유익이 있겠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렇구나! 싶어집니다. 그 물음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독서모임에서 이번에 선정한 책 <아무건도 아닌 것들의 기쁨>을 읽고 있는데 궁금증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무거워 졌네요. 천안살림교회 20년 동안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런저런 사석에서 이야기 했던 것들도 많이 있기는 한데요. 남편이 개척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게 물었고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하느님의 음성으로 들렸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입에서 불쑥 나간 말은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해! 내 몫은 내가 감당할 테니까’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불쑥 나간 말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 말을 곱씹어봅니다. 내가 생각 없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였는지 아님, 하느님의 작전이었는지. 아마 후자일 것 같기는 합니다. 내가 어떤 기도를 했는데 언제가 그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생각해보면 내가 기도를 해서 들어주신 것이라기보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 내 마음에 슬쩍 하느님의 계획을 집어넣으신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게 되거든요. 암튼, 그 즈음 남편은 자신의 진로를 놓고 고민이 많았고 저는 결혼 후 정말 오랜만에 기도원을 다녀온 직후였습니다. 남편이 너무 답답해하고 있었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기도해보겠다고 기도원을 갔다 왔는데 결국 답이 ‘교회개척’이었던 거죠. 말은 쉽게 했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은 없었습니다.
남편의 기를 꺾을 수 없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예배드리다가 문득문득 우리가 이런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런 훌륭한 예배당을 꿈꿔본 적도, 기도한 적도 없는데 그리고 교회 식구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하는 것도 주저했습니다. 천안살림교회에 식구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하는 내 속마음은 무엇일까? 교회식구들이 늘어나야 교회살림이 안정되고 내 생활도 안정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와서입니다. 지금은 천안살림교회를 찾는 사람들을 인도해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 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새신자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자고 하고 있고요. 우리가 살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났을 때 적응하는 과정이 있듯이 교회생활도 또 하나의 사회생활이니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많이 하는 말이 “이거 뭐야?” 하고 처음 보는 것마다 물어보듯 궁금한 것들은 물어야겠지요.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어떤 의미인가 궁금증을 가지고 묻는 물음이 곧 기도이겠지요. 각자마다 다 다른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누구에게는 엄마이고 친구이고 직장동료인 것처럼 엄마 아빠도 똑같은 엄마 아빠가 아니지요. 시내가 생각하는 엄마 아빠와 솔이가 생각하는 엄마 아빠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의 하느님이 다르다고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하느님은, 내가 알지 못하지만 태초에 어떤 생명의 근원이 있었고 그 생명이 우주로 뻗어 나갔고 지금도 나가고 있고 그 생명들 사이에는 어떤 작용들이 있고 질서가 있는데 그것들을 주관하는 어떤 힘, 기운, 존재 그것을 나는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생명이 이어져서 나에게로까지 왔고 그래서 내 생명의 근원은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고 신비함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우리 부모의 몸을 빌러 이 땅에 태어났고 일정기간 부모님들의 수고로 자라났고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고 살고 있고 그 인연이 내게 소중하고 살아 있는 동안 평생을 함께할 운명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서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본래의 ‘나’를 새롭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거듭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듭남은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계속되어지는 변화의 과정이겠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아직은 어려운데요. 암튼 저는 ‘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누구의 엄마도, 마누라도, 뭣도 아닌 본래의 ‘나’로서 하느님과 독대하고 싶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가운데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육신을 가지고 일정한 삶의 조건 안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 내셨고 그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신앙의 초점이 예수님으로 바뀌면서 내 구체적인 내 삶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살고 하느님께 보고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었다면 내 일상이 내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살아야 하는 놀라운 변화가 되어야 하는 삶이지요.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인데 근래 최형묵 목사의 설교 말씀이 제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애쓰는 것 그러면 된다’ 라는 말씀이 계속되어지고 있어서요. 역시 제게 좋은 목자입니다.

저는 매일 기도합니다. 수시로 기도합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 있어서요. 참고가 될까 해서 제 방식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일정한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대개는 아침 6시 전후가 됩니다.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고 따뜻한 차 한잔을 준비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수첩을 펼쳐서 어제의 하루를 짧은 문장으로 메모합니다. 아침묵상, 말씀과 기도, 독서, 엄마한테 들러서 출근, ---
그러면서 어제의 하루를 짧게 돌아봅니다. 그 가운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호흡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말씀을 봅니다. 대개 시편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하기도 하고, 천천히 하느님을 불러보기도 하고 그때그때의 나의 상태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합니다.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쌓이고 훈련이 되면 자기도 생각하지 못했던 성령과 소통되는 경험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비밀이 내 안에 쌓이면 보물이 됩니다.
그리고 수시로 기도하는데 주로 운전을 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전에 익숙해지다 보면 운전하면서 머리속에서는 별의별 생각들이 들락날락하지 않나요. 저는 그때 주로 방언기도를 많이 합니다. 방언기도는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기도의 요청이라고 여기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느닷없이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두드림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우리가족이나, 교회식구로부터 언제가 TV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의 어린소녀의 기도도 합니다. 기도 속에서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기도할 때 정말 조심해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사람의 주인이 된 것처럼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필요와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들이 많지요 특히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자식의 모습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험을 보면 최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최 목사를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사람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더라구요. 물론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대로 다 하시지는 않겠지만요~

그리고 일 년에 두 차례 정도는 목표에 있는 디아코니아 기도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3박4일, 침묵기도수련입니다. 일상과 단절된 기도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간 동안은 저를 돌아보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도 자기를 돌아보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기도를 통해서 합니다.

천안살림교회 사모로 사는 20년 동안 찐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이제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교우들이 나무라지 않고 지켜봐주신 덕이라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제가 잘 하는 말은 내 걸음걸이로, 되어지는 대로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내가 사는 동안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더 자라나기를 바라고 나의 삶의 수고와 애씀이 기쁨으로 되어지기를 내가 생각하는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서 선한 기운이 흘러 나와 누군가에게 그 기운이 누군가에게 흘러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제 교회생활에도 마음이 편해진 것 같은데 그래도 안식년이 왜 이리 좋은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룰루랄라하다가 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 듯 스쳐가기도 합니다. 천안살림교회라는 울타리 없이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를 시험보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그래도 지금은 좋습니다. 일년 동안 천안살림교회가 그리워도 꾹 참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도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알고 믿음이 자라나서 이제는 우리가 하느님의 듬직한 자녀요, 하느님이 쓰실만한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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