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29]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 빌립보서 2:19~3: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5-28 22:05
조회
1226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5월 28일 / 최형묵 목사


제29강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 빌립보서 2:19~3:1


1. 디모데를 보내고 싶지만 - 2:19~24


현재의 빌립보서를 구성하고 있는 첫 번째 편지의 말미에 이르러 바울은 사적인 성격과 함께 내밀한 성격을 띤 내용으로 이야기한다. 먼저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서신의 공동발신자로 처음에 언급하였던 디모데를 위한 일종의 추천서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내용은 지금 사도 바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암시가 가득하지만 확실한 추론을 할 만큼 분명하지는 않다. 명백히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정도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데, 주 안에서 그 계획을 생각중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것은 바울의 일관된 관점으로 자신이 계획하고 행하는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려고 희망한 것은 빌립보교회의 안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빌립보교회를 방문할 사람으로서 디모데가 그 누구보다 적임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빌립보교회의 형편을 염려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바울은 이와 매우 대비되는 비판적 논조로 불특정한 사람들을 언급한다. 모두 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 문맥은 다들 그런 반면 오직 디모데만이 믿을 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아마도 그들은 바울의 주변에 있는 일부 동역자들일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로 배척하지 않고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동기의 순수성을 신뢰할 수 없다. 반면에 디모데 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디모데의 인품은 빌립보교회 교우들도 잘 안다. 그는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바울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적이다. 바울이 배척하지는 않지만 신뢰하지 못하는 부류들과 전적으로 신뢰하는 디모데의 태도의 대비는 바울이 무엇보다도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의 동기의 순수성을 높이 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도로서, 혹은 목회자로서 어려움과 현명함을 동시에 엿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울은 그렇게 자신이 신뢰하는 데모데를 당장 보내고 싶지만, 지금 유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일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곧 재판의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석방될지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 불투명한 상황 때문에 바울은 가장 신뢰할 만한 측근인 디모데를 보낼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를 보낼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그 희망을 피력하는 가운데 바울은 스스로의 석방에 대해서도 확신한다.


2. 에바브로디도를 보냄 - 2:25~30


바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낼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에바브로디도는 지금 보내야만 한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 교우로서 바울과 동행하여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도록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언급에서 그의 역할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의 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요 여러분의 사신이요 내가 쓸 것을 공급한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옥에 갇힌 자를 위해 모은 성금을 전하고(4:18) 그 가까이서 머물며 돌보도록 파송되었다. 로마 시대의 감옥은 종종 아사자가 나올 만큼 열악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바울에게 교회의 헌금으로 물질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곁에서 필요한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파송되었다. 바울은 그를 형제요, 동역자로 여겼고, 복음의 전파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 함께 하는 전우로 여겼다. 에비브로디도의 존재는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각별한 유대관계의 확실한 증거이다.

그런데 사실은 유감스럽게도 지금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빌립보 교우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죽음에 이를 만큼 심각한 병을 앓고 난 직후였다. 말하자면 향수와 질병이 문제였다. 사도를 돕도록 파송된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으니, 사실상 그의 역할은 부분적으로만 수행되었을 뿐 실패한 셈이었다. 오히려 사도를 돕도록 파송된 이가 오히려 사도의 짐이 되는 상황이었다. 만일 그가 죽음에 이르기라도 했다면 바울에게는 더욱 큰 근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 않았고 회복되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빌립보 교우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라 당부한다. 여기서 바울은 매우 강력한 어조로 당부한다. 비록 봉사를 온전히 하지는 못하였지만 죽을 뻔 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봉사한 그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몫을 담당한 이들을 존경하라고 강조한다.

빌립보서의 첫 번째 부분을 특징짓는 고상하고 절제된 언어로 기술된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의 현명함을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자기 몫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로 되돌아갔을 때 비난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바울은 그와 같은 상황의 가능성을 유념하며 에바브로디도를 전적으로 변호하며, 전적으로 자신의 주권에 따라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낸다. 그의 문제였던 향수와 질병은, 바울의 입을 통하여 모두에 대한 그리움과 교회에 대한 염려로 설정된다. 뿐만 아니라 설령 기대되었던 봉사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죽음에 이를 뻔한 상황에 처해서도 봉사를 하고자 하였던 에바브로디도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디모데를 추천하면서 그의 행동의 동기를 강조했던 것과 동일한 입장이다. 어쨌든 이러한 변론으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의 명예를 온전히 지켜주며, 공동체가 온전히 화합할 수 있도록 바울은 권면한다. 동일한 어떤 사태를 두고 공동체의 지도자, 혹은 목회자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언어를 취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만드는 대목이다.                    


3.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 3:1


현명한 사도는 일관되게 기쁨의 동기로 첫 번째 서신을 종결하고 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전체 3
  • 2014-05-27 22:43
    이렇게 생생한 중계... 즐거운 일인 거지요?^^ 다시 곱씹는 즐거움!
    rn신발이 '존재'를 의미한다는 건, 심리학적이라기보다는 신화적 상징론이라고 할까요, 그런 차원입니다.

  • 2014-05-30 08:48
    '심리학적으로'를 '신화적 상징으로'로 바꾸어 파일을 다시 올렸습니다.
    rn예~~ 아직은 즐겁게 하고 있습니당~~

  • 2014-06-02 22:12
    파일 이름이 27일로 되어있어서 21일로 바꾸어 다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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