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1] 목표를 향한 달음질 - 빌립보서 3:12~2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6-18 21:49
조회
1451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6월 18일 / 최형묵 목사


제31강 목표를 향한 달음질 - 빌립보서 3:12~21


1. 목표를 향한 달음질 - 3:12~16


바울이 ‘개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어댈 만큼 바울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로서 율법에 매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바울이 보기에 악한 일꾼들이었다(3:2 참조). 여기서 드러나는 이들의 입장은 스스로 완전한 목표에 도달하였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 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들이 율법에 매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앞의 진술을 전제하면 율법에 의한 성취를 강조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보더라도 미묘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할례 받은 것을 완전한 구원의 징표로 삼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율법에 대한 충실성과 동시에 그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인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자신은 다만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그와는 상반된 것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바울은 예수께 사로잡힌 바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한 목표에 도달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각하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최종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바울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그 목표에 도달한 듯 허세를 떨고 있다.

15절은 다소 미묘하다. 여기서 ‘성숙한 사람’ 또는 ‘온전히 이룬 자’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만일 그렇다면 이들은 빌립보 교인들이 될 것), 아니면 바울이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들을 비꼬는 말인지 분명치 않다. 뒤에 이어지는 말도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말, 곧 “여러분이 무엇인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라는 말은 이들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바울은 비꼬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물론 그들은 스스로 허세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국 들춰내실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울은 ‘같은 길’을 강조함으로써 이 대목을 마무리짓는다. ‘같은 길’은 바울과 같은 생각으로 나아가자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 마치 스스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과신과 오만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독단이거나 그저 한갓 특정집단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강변하는 데서 우리는 그 태도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2. 만물의 복종과 몸의 변화 - 3:17~21


잘못된 독단에 빠진 이들을 공격한 바울은 이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아니라 자신을 모범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면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바울이 공격대상으로 삼는 이들에 대한 질책은 계속된다. 바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그들의 태도에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모범으로 제시하는 자신들의 태도와 거부해야 할 사람들의 태도에 명백한 하나의 분기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해에 있다. 바울은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죽으심을 본받음으로써 부활을 능력을 깨닫는다고 말했거니와(3:10~11), 여기서 그 초점을 다시 강조하고 있고 지금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원수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덧붙인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되, 십자가 사건의 의미는 꺼림칙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되 십자가를 거부했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를 일종의 훌륭한 교사요 도덕주의자로 한정해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스스로 그러한 모범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 대해 바울이 격분한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율법의 성취론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보기에 십자가 사건은 율법에 의해 형성된 체제, 곧 모든 인간적 성취와 업적에 근거한 체제가 전적으로 무용하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 체제의 사악함을 일깨운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육적인 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의 성취를 완전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배’를 자기네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것은 육의 현실, 곧 현존하는 체제 자체에 매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표현은 로마의 주요 식민도시로 빌립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시민권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을 강조한 것은, 현실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이를 종말론적 기대 가운데 표현한다. 그러니까 하늘의 시민권을 보장받았으되 아직 전적으로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마침내 명실상부하게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게 될 현실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으로 우리의 몸 또한 변화될 것이라 말한다. 만물을 그리스도의 뜻 아래 두고 그 가운데서 우리의 몸이 변화되리라 기대한 것은, 구원에 관한 매우 의미심장한 표상이다. 만물 세계로부터의 이탈 또는 몸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는 만물 안에서 인간의 실존적 삶의 현실이 변화된다는 기대이다. 바울에게서 십자가 사건은 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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