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5] 도망 노예 오네시모의 선처를 부탁함 - 빌레몬서 1:8~2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9-03 22:18
조회
1390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9월 3일 / 최형묵 목사


제35강 도망 노예 오네시모의 선처를 부탁함 - 빌레몬서 1:8~25


1. 사도의 권위를 포기하며 청원함 - 1:8~9


이 서신의 의도는 분명하다.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해 온 노예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선처를 부탁하는 것이다. 인사말에 이어 서신의 본론에 들어가면서 바울은 부탁하는 자신의 태도를 밝힌다. 바울은 사도로서 일종의 명령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보다는 간청을 한다고 밝힌다. 이 이야기는,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사도의 권위가 확립되어 있어서(꼭 제도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명령까지도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권위에 의존하기보다는 상대인 빌레몬을 동등한 관계 안에서 대하며 간청하고자 한다. 바울은 일단 자신이 하고자 하는 간청의 진정성을 그렇게 밝힌 후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갇힌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서신이 기록된 시점이 53~55년 사이라면 바울의 나이 또한 대략 그쯤이었을 텐데, 나이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빌레몬에 대해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감옥에 갇힌 상황에 대한 언급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말한다.      


2. 오네시모의 선처를 부탁함 - 1:10~22


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도망한 노예 오네시모의 선처를 부탁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이 갇혀 있는 동안 얻은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찾아온 오네시모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것을 밝힌다. 오네시모는 바울이나 빌레몬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욱이 바울에게는 자신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에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된 오네시모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그리고 그 주인 빌레몬에게 본격적으로 청원하는데, 13절 이하에 이어지는 그 내용은 빌레몬서의 핵심에 해당한다. 절절한 마음으로 청원하는 그 내용은 간추리면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아예 오네시모에게 자유를 주어 자신의 일을 돕게 해주는 것이며(13절, 21절), 두 번째 가능성은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여 빌레몬의 곁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다(15절).

바울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한 문제들을 심사숙고하고 있다. 우선은 어떤 가능성이든 기존하는 관계 안에서 주권을 가진 사람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어떤 제안을 따르든, 본래 주인인 빌레몬의 자발적 의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하는 관계 안에서의 주권자에 대한 인정은 기존의 법적 관계 안에서의 문제들에 대한 고려까지 포함한다. 만약 오네시모가 그 주인에게 어떤 손해를 끼쳤다면 그것은 배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8절). 오네시모가 손해를 끼쳤다는 암시는 도망한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되는 모종의 손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바울은 그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다(19절). “내가 그것을 갚아주겠습니다.” 그러니 오네시모에게는 무조건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바울은 매우 의미심장한 수사학을 동원한다. “그대가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면서 이미 말해버린 의도, 그것은 당신도 나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피차간에 상쇄되었으므로 더 이상 서로 책임을 물을 일도 없다는 뜻이다. 바울은 무조건 호의를 베풀어 받아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선택은 빌레몬에게 맡겨져 있지만, 바울의 마음은 오네시모가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은 갇혀 있지만 장차 찾아가서 오네시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22절).

도망한 한 노예의 해방을 바라면서도 기존의 법적 관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주인의 선택을 바라는 바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중요한 논점을 함축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기존의 체제에 대한 승인과 순종을 말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의 전반적인 논지를 살펴볼 때, 그 승인과 순종이 기존체제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배제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 서신에서, 오네시모가 다시 빌레몬의 집에 머물게 된다 하더라도 “노예로서가 아니라, 노예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서” 머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16절). 그것은 단지 영적인 차원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은 그 의미를 일방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정리하자면 노예제도가 현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제도의 구속을 벗어나 형제애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도 자체를 철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존하는 조건들을 철폐하는 것에 앞서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내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 현실의 조건과 제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오네시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골로새서의 증언에 의하면(4:7), 오네시모는 빌레몬으로부터 해방을 받아 바울의 사역을 돕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빌레몬은 바울이 기대한 바와 같이 자신이 말한 것 이상을 행한 셈이다.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에페소의 감독 오네시모를 이 서신의 주인공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3. 작별인사와 축복 - 1:23~25


바울은 절절한 언어로 간청을 한 다음 동역자들과 더불어 작별인사를 하고 축복한다. 이 사실은, 서두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 서신이 단순한 사적 서신이 아니라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를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골 1:7; 4:12), 마가는 한 때 바울과 동행하며 베드로와 중재 역할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행 12: 12,25; 골 4:10; 딤후 4:11; 베전 5:13),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중요한 동역자였고(행 20:4; 27:2), 데마는 바울과 동역자였다가 나중에 떠났고(골 4:14; 딤후 4:11), 누가는 중요한 동역자로서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골 4:14; 딤후 4:11). 바울의 주변에는 여러 동역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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