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6] 고린도전서 읽기를 시작하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9-17 22:26
조회
895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9월 17일 / 최형묵 목사


제36강 고린도전서 읽기를 시작하며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53년말 또는 54년초 에베소에서 작성하여 고린도교회로 보낸 편지로, 매우 첨예한 쟁점들을 담고 있는 서신 가운데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적어도 네 통의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 두 번째와 네 번째 편지가 남아 오늘의 고린도전ㆍ후서가 되었다.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이 그렇듯 고린도서 역시 하나의 교의적 체계를 설파한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대처 차원에서 기록된 것이다. 물론 사도 바울이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으면서 그 나름의 신학적 입장을 취했다. 사도 바울의 그 신학적 입장은 문제의 상황을 접하기 이전부터 이미 확립된 것도 있으나 많은 부분 문제의 상황에 대처하면서 첨예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린도서가 매우 첨예한 쟁점을 담게 된 것은 고린도교회 상황의 복잡성과 관련되어 있다. 고린도교회는 크게 세 가지 문제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첫 번째는 분파간의 갈등이었다(1:12). 그것은 특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교회공동체서 구성원들이 나눠지고 갈등을 겪은 상황을 말한다. 두 번째는 기존의 성적 역할의 혼란 상황이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는데, 이들은 예언이나 방언 등 특별한 은사를 받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가족적 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세 번째는 주인과 노예,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이 밖에도 보다 더 세부적인 갈등의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고린도교회의 이와 같은 상황은, 고린도라는 도시의 성격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고린도는 남북으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아가야 지역을 연결하는 육상교통로의 중심이었고, 동시에 동서로는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의 중심지였다. 그 입지조건으로 이 도시는 교역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조건은 매우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얽혀 사는 도시로서 성격을 갖게 하였다. 고린도는 기원전 2세기 중반 로마에 대항한 그리스세력의 저항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로마에 의해 잔혹하게 파괴되었고 거의 한 세기 가까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리스세력의 무역거점을 완전히 파괴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44년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패권이 확고해진 시점에 중요한 교역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했다. 재건된 고린도는 전적으로 로마식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전통적 질서가 완전히 해체된 고린도는 뿌리 뽑힌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기에 더욱 적합한 도시가 되었다. 퇴역군인, 상인, 도망노예 및 해방노예(법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으나 소유주가 없는 노예 등을 다수 포함) 등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것은 이 도시가 평화스러운 코스모폴리탄의 도시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외적으로 번성하고 화려할지 모르지만, 부유한 이들이 상업적 이익에 몰두할 때 그들을 떠받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대개 그와 같은 도시의 성격과 직결되어 있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고린도라는 도시의 문제를 축약해놓은 것과 같았고, 어쩌면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는 불가피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과도 같았다.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름의 적절한 대안을 추구하였다. 사도 바울이 그 해법으로 제시한 원칙은 전적으로 ‘타자되기’였다(9:16~27). 역지사지의 원칙이다. 그것은 자기를 완전히 버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모든 사안에 대해 그 원칙을 철저히 지켰는가 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본문을 따라가며 살펴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급진적인 원칙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해 고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빌레몬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현실로 존재하는 노예제 자체를 타파하지 못했다든지,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여성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든지 하는 점이 그 예이다. 철저한 원칙을 현실에서 온전하게 구현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한계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그 한계에 대한 성찰은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대한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계 때문에 사도 바울의 노력을 일거에 부정하기보다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견지하고자 했던 급진적 원칙이 일깨워주는 의미를, 고린도전서 본문을 따라 읽어가면서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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