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7] 고린도교회를 향한 인사 - 고린도전서 1:1~9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9-24 21:57
조회
854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9월 24일 / 최형묵 목사


제37강 고린도교회를 향한 인사 - 고린도전서 1:1~9



1. 인사 - 1:1~3


편지 서두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다마스커스에서의 전향)보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일련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사도적 지위에 있는 여러 지도자들이 고린도교회에 관여한 만큼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편지를 보내는 바울은 혼자 있지 않고 소스테네와 동행하고 있다. 소스테네는 유대교 회당장 출신으로(사도행전 18:17) 바울과 함께 매를 맞았다. 사도행전에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분명한 언급이 없으나 여기서 바울과 계속 동행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편지의 수신인을 매우 강화된 어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고린도교회가 그 수신인이지만, 그저 교회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이라고 중첩하여 말한다. 이것은 수신인들에게 자신들의 지위와 몫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또한 바울은 그 수신인으로 각처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을 언급한다. 이 언급은 후대에 추가된 것일 수도 있으나, 바울이 직접 썼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 기반을 분명히 한 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이며, 우리의 주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분파 문제가 심각해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기초를 확인하고자 했을 수 있다.

서두 인사말의 말미에 바울은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다. 그리스인이라면 그저 문안인사를 하고, 유대인이라면 평강(샬롬)을 기원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은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가 평화를 누린다는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표현한다.


2. 감사 - 1:4~9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고린도교회 교우들은 모든 면에서 풍요롭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에서 풍요롭게 되었다. 이것이 특수한 의미에 해당한다면 방언과 예언의 능력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것 같으면 말 잘하고 아는 것이 많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이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바울은 분명히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한다. 바울은 매우 긍정적인 언어로 그 사실을 재삼 확인한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한 것이 여러분에게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사도 바울만의 가르침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관여하였던 고린도교회의 사정을 감안할 때, 유력한 여러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만큼 고린도교회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바울의 이 이야기는 고린도교회의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인 동시에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의중을 암시한다. 고린도교회는 많이 알고 그것을 잘 말해서 문제를 안게 된 것은 아니다. 지식과 언변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더욱 명료화하고 확고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고린도교회는 그것을 그렇게 선용하기보다는 분파주의에 빠지는 방식으로 오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 본격적인 질책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정중한 인사 말 가운데 드러난 이 이야기는,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계속해서 긍정적인 언어로 고린도교회를 격려한다. 고린도교회는 받은 은혜를 풍족히 누리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바울의 믿음이자 동시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기대하는 믿음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 믿음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라 말한다. 물론 이것은 은혜의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바울의 신학적 사고 특유의 긴장이 있다. 인간 스스로의 성취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인간의 책임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진실을 믿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 믿음의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능하게 해 준 하나님의 신실함을 말한다. 여기서 친교는 공동체로서 교회 현실을 유념한 매우 실감나는 표현으로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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