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나의 믿음 - 히브리서 11:13~16; 39~40[이지수 교우/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8-01-21 16:29
조회
9107
2018년 1월 21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나의 믿음
본문:  히브리서 11:13~16; 39~40
이지수 교우



매해 여신도 주일이 오면,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제가 작년 여신도 주일에 사회를 맡으면서 세월이 빠르다고 여신도들에게 말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저는 천안살림교회에는 2010년 8월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벌써 7년반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이십니다.그래서 교회는 저에게 ‘조심해야 하는 곳’‘아버지 직장’같은 곳이었어요. 다행히도 중,고등학생때는 아버지가 집에서 먼 지방에서 시무를 하셔서 방학때만 그러면 되고 나머지 기간에는 집이 서울이니 서울에 있는 교회를 나갔습니다.그 때 교회를 정하는 기준은 최대한 큰 교회, 그래서 익명성이 보장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것도 엄마가 교회 안나가면 벌 받는다고 해서...보험 차원에서 교회를 나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작은 교회인 천안살림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부산에서 동네 사람들과 재밌게 지내던 제가 천안에 이사와서 외로울까봐 언니가 선재원집사님이 다니시는 이 교회를 소개해 준게 인연이 되었습니다.당시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교회에서 제 상식이나 양심에 거슬리지 않는 설교 듣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횡재한 기분이랄까...그랬습니다.
어쩌다 나와 코 꿰었다고 말은 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를 좋아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뻔한 질문도 진지하게 받아주고 구박하지 않아서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일 뻔한 질문은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느냐?’는 것 같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제 인생을 통틀어 그 어느때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지금, 가장 열심히 그 질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에게 이 질문을 물으면 가장 많은 분이 ‘예수믿고 구원받으려고’라고 할 것 같습니다.제가 교회를 나가면서도 교회를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예수믿고 구원받는다’는 그 말을 싫어해서였던 것 같습니다.예수의 뭘 믿으라는 건지?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건지?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녀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나누기의 제목을 ‘나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믿음이랄것도 없어서 참 민망한 제목입니다만, 제가 천안살림교회를 다니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왔던게 ‘뭘 믿으라는 건가?’이고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그걸 물어보면 사도신경을 믿으라고 하더라구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와서 우리 죄를 위해 죽었고, 부활했고, 다시 올거다.
근데 전 그걸 믿는게 저랑 무슨 상관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걸 내가 믿던 말던 무슨 변화가 있지 ?
그래서 얻는 구원이 뭐냐고 물으면 죽으면 천당가는게 구원이라는데 죽어서 천당 가자고 살아 있는 동안 이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 해야 하나?게다가 믿는다는 건 마음의 상태인데 책상에 앉아서 구원이라는 댓가를 얻기 위해 그래,믿어보지 뭐. 이렇게 생각하면 바로 천당간다는건데 그렇다면 죽기 직전에 믿는게 요새말로 가성비가 제일 좋은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그렇게 날로 먹는다는게 양심에 찔리지도 않나 그런 생각에 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라는 사람은 천당엔 못가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어쩌고 하는데 예수를 믿는게 뭐 그렇게 고난의 길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제가 생각하기로는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수요성경공부에 나가면서 믿음’이란 거,특히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에게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믿는다’는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처음엔 예수를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로 해석을 했었는데요.전 솔직히 예수처럼 살지는 못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또 왜 굳이 ‘믿는다’고 했을까?‘따라 산다’라고 하지 않고..뭘 믿으라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그러다가 오늘의 이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재작년 6월에 정용택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읽게 된 말씀입니다.
그 때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참 어두운 시기였는데 그래서 이 말씀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말씀을 보는 순간,저에게 말씀나누기의 기회가 오면 이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하지만 게을러서 깊이 묵상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 말씀 나누기를 해야 하는 지난주가 되어서야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이 와 닿았던 것은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씀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3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는데,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고,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그리고 39절에는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정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 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나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그들이 믿은 건 무엇이고, 우리가 하는 완성은 무엇인가? 어려웠습니다.그러다가 메시지 성경을 보게 되었는데요.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우리가 참여한 이 경주를 시작하고 완주하신 분입니다.그분이 어떻게 하셨는지 배우십시오.(메시지 성경 12장) 그리고 또 ‘죄와 맞서 싸우는 이 전면전에서 여러분보다 훨씬 심한 고난을 겪은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피 흘리시기까지 겪으신 그 모든 고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메시지 성경 12장4절)
여기서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예수가 시작하고 완주한 경주, 죄와 맞서 싸우는 전면전을 너희도 해라.그리고, 지금 보답받지는 않겠지만 언젠간 이길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라. 그런데 또 하나 의문이 들어요. 맞서 싸워야 할 죄는 또 무엇인가?
저에게 있어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것,두 번째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며 로마에 세금 내는 문제에 대답 하신거,그리고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 또 하나는 창녀를 단죄하지 않고, 죄 없는자 돌 던져라 하셨던 것.입니다.
드라마 소개 페이지를 보면, 인물소개란게 있는데요. 아마 제가 예수님의 인물소개를 쓴다면 이렇게 쓸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화를 내지 않는다.어지간한 공격이나 개인의 일탈에도 시니컬하고 재치있는 대답으로 정곡을 찌르긴 해도 화를 내지 않지만 제도적 불의에는 앞뒤 안가리고,화를 냄. 그로인해 미움을 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평가가 있음.식민지인 유대의 국민이지만, 로마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지 않음. 심지어 당시 2중과세 논란에 애국심의 핫 이슈였던 로마에의 세금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그를 반체제세력으로 판단하고 자기편으로 영입하기 위해 관찰하고 있던 세력에게 미움을 삼,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음.제자들에게는 무소유를 주장하며 가족을 버릴 것을 권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관대하여 비판을 받음. 세리인 삭개오의 경우에도 재산을 절반을 내놓는 것으로 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들었고 음행을 저지른 여인을 심판하지 않고 ‘죄 없는 자 돌로 쳐라’라는 유명한 말을 하여 윤리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음.‘
저는 지금의 우리의 의식에 비춰봐도 예수님은 너무 혁명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으로, 남성으로, 노예가 아닌 자유인 농민인 예수님은 자기 집단의 이익이나 고정관념에 따르지 않았습니다.당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일면 합법적이던 성전에서의 장사 행위에 대해서는 격노하며 폭력을 휘둘렀지만,당시 사람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음행이나 경멸했던 부정축재에는 회개하면 된다는 너그러운 입장이셨습니다.이방인과 여성, 심지어 창녀나 세리와도 친구가 되셨고
로마에게 세금을 내던지 말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종합해서 제가 파악한 예수님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게 하는 대의라는 포장과 과감히 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의가 국가나, 제도나, 법률, 재산, 그 무엇이라도 그게 사람, 인간의 존엄성과 위배될 때 예수님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러셨던 것 같아요.

얼마전, 영화 1987을 봤습니다.나오는 등장인물 중 거창한 결심을 하는 영웅은 나오지 않습니다.
화염병 만든 대학생을 때리던 공안 검사는 검찰조직을 위해 참으라는 말을 안듣고 자신의 상식에 맞춰, 검시를 결정합니다.죽여버리겠다는 위협에 입을 다물려던 의사도 거창한 기자회견이 아닌,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소심하게 기자에게 진실을 말합니다.영웅이 아닌 소심한 사람들이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움직일 때 역사는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에 일본의 개헌에 반대하는 대학생 단체의 대표가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요.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어떻게든, 정치가 선생님들도 개인이 되어 주십시오. 정치가이기 이전에, 파벌에 속하기 이전에, 그룹에 속하기 전에, 오직 한사람의 개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가 믿는 바른 방향을 향해, 용기를 내어 고독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때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가족의 이익을 위해,국가의 이익을 위해 여전히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경제를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권리는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사회 화합을 위해 적폐 청산은 참아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최저임금이 좋은건 알지만 경제를 위해 일부는 희생해야 한다고 하고
북한의 위협이 있으니 정의구현 따위는 미루자고 하고,동성애자의 권리는 알지만 그러다보면 에이즈며 모두의 안전에 문제가 되니 차별하자고 말합니다.
작게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 엄마나 아빠의 자아실현이나 휴식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와 존엄을 이야기하다 모두 망하는거 아닌가 ?혹시 잘못되면 나 때문이라고 그러면 어쩌지?
그래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의 자유의 존엄을 희생시켜야 겨우 지켜질 나라라면, 경제라면, 조직이라면 망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부모의 자아실현으로 깨질 가족의 평화라면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두렵고 헷갈리는 우리들에게 2천년 전의 예수님은 온몸으로 길을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합니다.그래도 된다고, 그게 옳다고,그렇게 살아도 별 일 없다고 말이지요. 나의 대에서는 희망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믿고 계속 나아가면 언젠가 그런 나라가 이땅에 올 것이라고..저는 그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고 알게되면,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그게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의 미숙하고 어설픈 설명보다 우리교회의 2006년 수련회에서 목사님께서 하신 설교를 찾아보시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읽어드리면서 오늘의 말씀 나누기를 마치려고 합니다.http://www.salrim.net/bbs/view.php?id=salrimsermon&page=3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02

이렇게 살 수 있도록 ,
선택의 순간마다 헷갈리지 않도록 천안살림교회와 여러분들이 매주일, 저의 인생을 잡아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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