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종교의 역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6-04-30 00:55
조회
1129




원불교100주년ㆍ원광대학교개교7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종교ㆍ문명의 대전환과 큰 적공

Session 2 정치의 대전환 토론문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 제3회의실(3층)

2016년 4월 29일(금) 13:00~14:00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종교의 역할

- 윤법달, “한반도 평화통일 구축과 원불교 통일방안”을 읽고



최형묵(한신대학교 초빙교수 / 기독교윤리학)



윤법달 교수의 “한반도 평화통일 구축과 원불교 통일방안”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I부 “한반도 평화통일 구축” 부분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과 조건, 그리고 그 당위에 관한 전반적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제II부 “종교계 통일 환경 변화” 부분은 통일을 위한 종교계의 준비와 그 현황을 소략하게 다루고, 마지막 제III부 “원불교 통일방안”은 원불교의 북한교화의 역사를 돌아보고 나아가 미래 전망의 차원에서 원불교의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의 영역과 과제를 매우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주고 있어 함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기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논평자는 이 글이 제시하고 있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 가며 더 생각하고 토론하고픈 몇 가지 논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제I부 한반도 평화통일 구축 부분은, 한반도 평화통일과 관련된 국제적 환경변화와 북한의 변화, 남북관계의 변화와 남한 현 정부의 통일정책을 균형 있게 다룬 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 전반의 내용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의 영역과 현황에 대한 서술에서 나아가 각각의 문제 영역에서의 변화양상이 한반도 통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 상호관계를 규명하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적 환경 변화, 그리고 북한 체제의 변화 및 남한 정부의 정책 등이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 그 상호작용이 통일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지 아니면 불리한 조건을 형성하는지 그 동학에 대한 규명이 이뤄진다면 통일에 대한 전망 또한 더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화의 방안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글은 그 제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남북관계를 수시로 위기에 빠트리는 근본적 구조적 원인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주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현실적인 제도화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만 강조한다면 현실적 해결책 없는 환원론에 빠질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그 위험성을 넘어설 수 있는 제도화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제도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제도화는 어떤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하는지 보다 본격적인 탐색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 사족에 지나지 않은 의문일지 모르지만, 이 글은 남한의 현재 박근혜 정부의 집권 기간 내에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는데,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만약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것은 남북의 평화적 관계와 통일을 위해 긍정적으로 역할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충분히 해볼 수 있는데, 상호간 적대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현재의 추세 가운데서 그 반전이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네 번째, 남북 화해의 본질이 평화이어야 하고, 그 평화가 ‘평화 유지’에서 나아가 ‘평화 만들기’로, 그리고 마침내 ‘평화 구조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을 확인하는 것은 이 글의 근본적 취지를 확인해 주는 것으로서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것을 실현할 조건과 절차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앞서 제기한 제도화의 과제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남북간의 신뢰 형성과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현실적 검토가 진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II부 종교계의 통일 환경변화 부분의 소략한 논의에 대해서는 보충하는 의미에서 논평자의 간략한 의견을 덧붙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글이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시피 1980년대 이후 남북간 종교 교류는 꾸준히 확대되어 민간 차원 교류의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정부간 차원의 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경험에 비추어 살펴보면, 1984년 남북 기독교인의 만남이 이뤄진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숙한 1980년대 통일운동의 역량 또한 강화되었지만,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남북간 직접적인 교류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 가운데 1984년 남북 기독교인은 직접 만남을 성사시켰고, 남북관계와 관련한 한국 개신교의 최대 성과로서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에 관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후에도 상호간 적대를 해소하고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만남 및 인도적 지원 등의 형태로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당국의 허가 없이 남북간 기독교인이 만났다고 하여 남한 정부에 의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당사자들에게 과태료가 부과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남북 기독교인 내지는 종교인의 교류는 꾸준히 확대되어 왔고, 그것은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종교간 교류에서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큰 원칙은, 이 글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종교의 선교 내지는 포교를 통해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차원을 넘어 “평화ㆍ경제ㆍ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종교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종교의 자기 확장으로서의 선교적 내지는 포교적 목적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고, 특히 그것이 인도적 지원의 배후 동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적 관계의 형성은 상호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야 하고, 그 신뢰는 일방적 목적의 강요나 지원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의 성취로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1988년 선언의 의의는 여러 차원에서 조명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한국 기독교의 반공주의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철폐 선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적대적 인식의 철폐를 뜻하는 것으로, 신뢰와 평화 관계 형성의 첫 걸음에 해당한다.


제III부 원불교의 북한교화 역사와 통일방안을 다루는 논의에 대해서는, 이웃 종교 일원으로서 논평자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경청하고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이 논의를 보면서,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원불교의 활동 또한 상당히 깊은 역사와 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논의와 관련하여 재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남북간 교류에서 종교의 기본적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각 종교의 선교적 내지는 포교적 목적이 단지 종교세력의 확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종교의 가르침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보편적 가치의 구현이어야 할 것이다. 정의와 평화의 구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발표자가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듯이 북측과의 교류로서 종교인들에게 가장 선호되고 있는 인도적 지원의 경우에도 그것이 지원하는 측의 자기 목적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늘 경계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월한 입장을 전제로 하는 ‘지원’에는 항상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면 지원 활동이 신뢰를 형성하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발표자는 이러한 위험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에 공감하는 뜻에서 논평자 역시 그 입장을 재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발표자는 북한사회 변화의 가속화에 따른 북한 주민의 급격한 의식의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과제는 사실상 남한 체제하에 종교의 과제로서 그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 과제와 관련해서는,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정당성을 갖고 있는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와 역시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이해를 남한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종교가 적극적 역할을 하여야 하는 측면이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귀한 논의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드리며, 이웃 종교의 일원으로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 인류사회 안에 보편적인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논평의 소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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