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제주의 난민, 무엇이 문제인가?”: 난민에 대한 성서적 접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07-10 19:28
조회
801
NCC 인권센터 긴급간담회: “제주의 난민, 무엇이 문제인가?”
2018년 7월 10일(화) 오후 2시 / 한국기독교회관 701호


난민에 대한 성서적 접근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1. 제주도의 난민

1-1. 제주에 예멘 난민이 대거 들어옴으로써 난민 문제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1-2. 한국은 국제연합(UN)이 제정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1992년에 가입하였을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드물게 2012년 <난민법>을 제정하여 그 이듬해부터 시행중에 있다. 예멘 난민들이 한꺼번에 제주도에 들어오게 된 것도, 제주도가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조건도 있었지만 한국이 난민을 보호하는 법을 갖고 있고 국제 규범을 지키고 있다는 것 또한 한 요인이었다.
1-3. 한편의 사람들은 난민들을 맞아들여 보호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이들을 보호하는 데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반면에 또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난민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역시 이를 위한 정부의 대책을 요청하고 있다.
1-4. 한국사회에서 난민문제가 갑작스럽게 부상한 까닭에 이에 대한 대비책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그에 대한 성서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난민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넘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과 인도주의적 규범의 차원에서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난민

2-1.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의하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로 정의된다.
2-2. ‘난민’에 대해 성서적으로 접근할 때 위의 정의에 부합하는 경우로 한정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접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위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현대적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서에 등장하는 ‘난민’이 현대적 의미와 딱 부합하는지는 검토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난민’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거류민(居留民)’을 주목하는 것이 성서적 접근에서는 더 적절하다.


3. 다양한 형태의 거류민(居留民)들

3. ‘거류민(居留民)’은 사전적 의미로 ‘남의 나라 영토에 머무는 사람’을 뜻한다. 오늘날 거류민은 좁은 의미에서 그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3-1. 2016년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만 2천명에 달하고 그 가운데 91일 이상 장기 체류자는 148만 2천명에 달한다. 한편 2017년 3월말 기준 비전문 취업 및 방문 취업 외국인은 약 51만 명에 달하고, 여기에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 이주자까지 합하면 이주노동자는 70~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이주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은 물론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3-2. 전 세계적으로 ‘한인/코리안 디아스포라’는 600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민족 단위로 디아스포라 인구 비율을 볼 때 매우 높은 수준에 해당하며,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난민의 역사를 반영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가운데 특별히 그 역사적 사연으로 ‘조선족’, ‘자이니치(在日) 코리안’, ‘고려인(카레이스키)’은 매우 착잡한 문제의 상황 가운데 있다.
3-3-1. 국제연합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7년 전쟁, 폭력, 박해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수가 6,850만 명에 이르렀다. 이 중 1,620만 명이 지난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들 중 전쟁과 박해로 인해 국경을 넘어 자국을 떠난 난민의 수는 2,540만 명이었다. 이는 지난 2016년보다 290만 명 증가한 수치이며, UNHCR이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난민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난민신청자의 수도 2017년말 현재 310만 명에 달했다.
3-3-2. 우리나라는 2017년 한 해 동안 총 9,942건의 난민 신청이 전국에서 접수, 2017년 한 해 동안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총 121명, 2017년 재정착난민을 제외한 심사종료자 6,015명 중 단 91명만이 난민지위를 인정(1.51%), 2017년 12월 31일 기준 국내 인도적체류자는 총 1,474명,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접수된 누적 난민 신청은 총 32,733건, 1994년부터 2017년까지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총 792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2018년 예멘 난민 등이 추가된 상황을 고려하면 대략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3-4. 지금까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가 약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4. 성서적 접근

4. 성서는 기본적으로 ‘거류민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서가 증언하는 구원의 파노라마에서 인간은 도상에 존재하는 ‘나그네’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은 성서의 신앙 세계를 형성한 주체들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4-1-1. 성서가 증언하는 이스라엘 역사시대의 첫 조상 아브라함부터 태어나 자란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창세 12:1이하). 이후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조상들의 이야기 또한 끊임없는 나그네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다(脫/向).
4-1-2. 성서의 신앙 세계를 형성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인 출애굽 사건은 떠도는 나그네로서 히브리인의 억압과 그로부터의 해방의 경험을 응축하고 있다(출애굽기). 이집트에서의 경험은 떠돌이 히브리인으로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이며, 그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또한 나그네로서의 삶의 여정이다.
4-1-3. 신명기의 ‘역사신조’(신명 26:5~10)는 그 여정의 의미를 신조의 차원으로 승화하여 기억한 신앙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약속의 땅에 이르러 첫 열매를 거둘 때 그 신조를 고백함과 아울러 함께 사는 외국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라고 한 것(신명 26:11)은, 나그네로서의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확인해준다.

4-2-1. 그 정신은 구약성서의 여러 법전들, 곧 계약법전(출애 20:22~23:33),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 성결법전(레위 17~26장) 가운데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4-2-2. 계약법전의 약자보호법(출애 22:21~27) 나그네와 과부, 고아를 돌보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신명기 법전은 이자놀이와 관련하여 외국인에 대해서는 유보적(신명 23:20~21)인 측면을 보이기는 하나 외국인에 대한 공정한 재판(신명 24:17)을 규정하고 있고, 성결법전은 기본적으로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이민자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5:23)는 정신에 근거하여 종들과 나그네들도 더불어 그 소출을 누리는 안식년(레위 25:6)과 모든 거민을 해방하는 희년(레위 25:8 이하)을 규정하고 있다.

4-3-1. 출애굽 사건이 성서의 신앙 세계를 형성한 원점이라면 바빌론 포로의 경험은 이스라엘 민족의 본격적인 디아스포라의 삶이 시작되는 계기이자 동시에 문서로서 성서를 형성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가적, 제의적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말씀/율법을 통한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의 핵심에 성서의 편찬 작업이 있었다. 이 점에서 성서는 그 자체로 난민과 유민, 이민 사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4-3-2. 포로기의 경험은 이스라엘 신앙의 세계를 민족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시킨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4-4-1.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의의는 재삼 그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가 이방인과 만난 일을 전하는 에피소드는 유대의 역사적 지평 안에 있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의미를 재삼 생각하게 해 주며, 삶의 뿌리를 떠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일관된다.
4-4-2. 시돈 여인과의 만남(마태 15:21~28; 마가 7:24~30),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 4:1~42)는 유대 정통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적 구원의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4-4-3.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을 선포한 말씀(마태 11:28)은 마태복음이 기록된 맥락에 비춰 볼 때 전쟁의 참화 가운데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4-4. 최후의 심판 이야기(마태 25:31~46)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 가운데 ‘나그네’ 역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있다.

4-5. 바울의 인의론(認義論)은 권리가 없는 이방인을 옹호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인의론은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 그리고 일체의 기득권에 의한 경계를 넘어 구원의 보편적 성격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일체의 자격과 업적의 논리를 배격하며, 따라서 그 누구라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형성하도록 요구하는 신학적 대장전이다.

4-6.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아예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비유하고 있다(1:17; 2:11). 스스로를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여긴다면 저마다의 일상적 삶의 현실에서 만나는 나그네와 거류민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그네와 거류민을 대하는 성서적 교훈의 에토스를, 베드로전서는 그렇게 단적으로 꼬집어 말해 주고 있다.

4-7. 물론 성서는 ‘난민’으로 특정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다. 특별히 이들은 긴급히 구원의 손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성서는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영재, “평화는 ‘난민’의 ‘구원’을 위한 조건이다 - 성서로 보는 예멘 난민의 쟁점”,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82, <에큐메니안> 2018.6.23. 참조).

4-8-1. 재차 확인하면, 성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삶의 근거지를 벗어나 떠돌던 ‘거류민’과 ‘나그네’의 의식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는 은유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성서의 신앙세계를 형성한 사람들의 실제 삶의 정황을 반영한 것이다.
4-8-2. 사실을 오도해가며 국민을 위한다는 듯 난민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펼치는 것도 위험하지만, 신앙을 명분으로 또는 성서를 근거로 하여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국제적 인권체제의 강화와 그리스도교의 역할

5-1. 앞서 말한 여러 형태의 거류민에 대한 차별 현상은 국민국가/주권국가 질서의 한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범위 안에서 주권은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시민권이 없는 거류민들에게 주권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주권의 야만’이 운위되는 지점이다.
5-2. 오늘날 지구화된 경제질서 가운데서 사회적 박탈계층을 양산하는 양극화와 위계적으로 등급지어진 질서를 유지시키는 불평등은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을 낳는 기본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5-3. 국민국가를 기본 단위로 하는 오늘의 세계질서 현실에서 잠정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국제적 인권체제를 강화하는 길이다. 한 국가의 문명의 수준은 자국민에 한정되는 인권존중이 아니라 자국민이 아닌 이들에게까지 인권존중의 척도를 얼마만큼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5-4.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통과 그 유산은 국제적 인권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비시민권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정한 복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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