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23] 빌립보 교우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 - 빌립보서 1:1~1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4-16 22:47
조회
836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4월 16일 / 최형묵 목사


제23강 빌립보 교우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 - 빌립보서 1:1~11


1. 인사 - 1:1~2


편지의 서두는 당시의 일반적 형식에 충실하다. 곧 발신인, 수신인, 그리고 인사의 순으로서 구성되는 것이 당시 서신 서두의 일반적 형식이다. 하지만 바울의 서신은 여기서 일반적 형식을 그대로 취하는 것만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 보완하고 있는데, 맨 마지막 인사는 단순히 사적인 인사가 아니라 공적인 축복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적이기보다는 셈족문화권의 형식에 가깝다. 그 공적인 성격은 또 한편으로 이 편지가 공동체를 향하여 전달되었고, 공동체에 전달되었을 때 예배중 낭독된 정황을 반영해주고 있다.

여기서 발신인을 디모데와 공동으로 한 것은, 그가 빌립보 교회에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좋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와 동격으로 하여 스스로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지칭하고 있다. ‘종’이라는 칭호는 거의 명예칭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약시대 하나님이나 왕의 특별한 사명을 위임받은 경우에 붙이던 칭호이다. 바울은 사도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보조자에 해당하는 디모데를 자신과 동격으로 표현한 것은 빌립보 교회와의 친밀한 관계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수신인은 기본적으로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다. 성도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된 사람들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바울의 친서 가운데서 유일하게 감독과 집사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교회 내 직분은 바울 이후에 확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 직분은 대개 감독-장로-집사로 확립되고 그 관계는 역할상의 차이를 기본으로 하지만 조직화된 교회 안에서 점차 서열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감독들과 집사들이 후대의 직분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빌립보서 이전의 서신인 갈라디아서에도 모종의 직분이 형성된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6:6 ‘가르치는 사람들’). 빌립보교회에서는 특별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감독들과 집사들로 불리게 된 정황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역할상의 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해서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그 용어를 통해 대략 추정해볼 수 있다. ‘감독’은 그리스어 의미로 행정상 책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로서 오늘의 목회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집사’는 그리스어에서 청지기나 식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경우로 사용되었으나 바울 서신에서 등장하는 의미로 볼 것 같으면 복음 선포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교회가 제도화된 이후, 또한 오늘날 교회의 상황에서처럼 그 직분이 명확하게 경계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빌립보교회가 이러한 호칭으로 직분을 구별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축복기도 형식의 말미는 유대인들이 통상적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것에 더하여, 그 평화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로 언급하고 있고 그분으로 비롯되는 은혜를 덧붙이고 있다.


2. 빌립보 교우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 - 1:3~11


서신의 서두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빌립보 교회 교우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바울은 먼저 빌립보 교회의 상황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한다. 이 점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말할 때 ‘놀라움’을 표했던 것(1:6)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다른 서신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신뢰의 표현이다. 그 감사의 마음은 빌립보 교회를 두고 기도할 때도 변함없다. 그것은 일종의 중보기도로서, 특별히 빌립보교회에 대한 염려해서 한 것은 아니다. 빌립보교회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지극한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감사한 것은 빌립보 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흐트러짐 없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감사의 마음은 빌립보교회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빌립보교회의 선한 일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완성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바울의 종말론적 기대를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는 최후의 심판과 같은 부정적 표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 곧 선한 일을 지속할 때 그것은 마침내 완성의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확고하게 표현할 뿐이다.  

빌립보 교회를 두고 기도한다고 말했던 바울은 이제 직접 그 교우들을 향해 말한다(7~8절). 자신이 빌립보 교회 교우들을 그렇게 각별히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재삼 확인한다. 바울은 그 교우들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할 만큼 바울과 빌립보교회 교우들과의 관계는 각별하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정황을 드러낸다. 자신이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할 때나 빌립보 교회 교우들은 자신과 함께 은혜에 동참했다. 이 상황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또한 법정에서 복음의 정당성을 역설해야 했던 고난의 상황을 말한다. 바울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돌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 교우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흔들림없었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 주고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 교우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강조되는 마음은 외모와 구별되는 인간의 내적 자아를 말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진심어린 태도를 말한다. 바울은 감격해서 그 진실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한다.

그렇게 진실한 마음을 표한 후 바울은 다시 중보기도 형식으로 편지를 이어간다(9~11). 그 첫 기원은 풍성한 사랑이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에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욱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빌립보 교회는 이미 복음을 전하는 일, 선한 일, 곧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충실해 왔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날에, 곧 종국적으로 의의 열매를 맺기를 기원한다. 물론 여기서 의의 열매는 앞선 서신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했던 영의 열매와 같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궁극적인 목적을 향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기원한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전체 2
  • 2014-04-14 15:06
    사과를 해야 할 만한 사태라? 뭔 이야기가 오고갔길래?^^
    rn역시 그 많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정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rn'기독교 부활운동'은 '기독교 부흥운동'으로 정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2014-04-16 11:35
    수정해 올렸습니다. 사과의 사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성경공부 시간에 하겠습니다.
    rn^^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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