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3] 빌립보교회에 대한 감사와 격려 - 빌립보서 4:10~23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7-02 22:44
조회
1477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7월 2일 / 최형묵 목사


제33강 빌립보교회에 대한 감사와 격려 - 빌립보서 4:10~23


1. 지원에 대한 감사 - 4:10~19


이 부분은 독립적인 내용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신A(감사의 서신)와 어울린다. 주 내용은 빌립보교회의 재정적 지원에 대한 감사이다. 이 내용은 아주 구체적인 재정적 지원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 용어조차 아마도 빌립보교회 구성원들에게 익숙한 상업적 개념들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세속사의 일로 간주하지 않고 신앙적 의미를 강조하는 사도적 엄정성이 두드러진다.

사도 바울은 먼저 빌립보교회의 지원에 대한 큰 기쁨을 표한다. 이 기쁨은 기본적으로 빌립보교회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것이지만, 문맥으로 볼 때 한 동안 지원이 끊겼다가 다시 이뤄진 시점에 표명된 것으로 보인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일어난 것”이라는 말은 그 사정을 시사한다. 빌립보교회가 사도 일행을 한 동안 지원할 수 없었던 것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들의 형편 때문이었을 것이다(참조. 고후 8:1~2). “그것을 표시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그 사정을 말해준다. 빌립보교회가 이제 다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바울은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혹시라도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가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 기쁨의 표현은 결코 사도의 궁핍함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자족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가운데 자신의 몫을 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자족은 스토아철학에서도 중요하게 간주되는 덕목이지만, 바울에게서 그 근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운문조로 더 분명하게 말한다(12~13절). 이 운문에서는 비천함과 풍족함, 배부름과 굶주림, 풍족과 궁핍이 대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단지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적 형편과 관련된 것이다. 이 말은 사도의 독자성이 양 측면으로부터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울은 궁핍함과 배고픔으로 인한 위협을 겪었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지만(고전 4:11, 고후 11:9, 16~23 등), 다른 한편으로 그 반대의 상황 또한 있었음을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바울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사도로서 자신의 독자성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분, 곧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바울은 자신은 어떤 조건에서든 흔들림 없지만, 빌립보교회가 자신의 어려움을 알고 지원해 준 데 대해서는 기꺼이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

바울은 그 감사의 마음을, 빌립보교회가 처음부터 자신을 지원해 준 사실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더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지원해준 교회는 빌립보교회밖에 없었다는 사실, 데살로니카교회에 있을 때에도 여러 차례 지원해 준 사실, 그리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지원받은 사실을 하나하나 환기하고 있다. 빌립보교회가 그렇게 지원해 준 것은, 아름다운 향기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운 행위를 칭송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사도 자신의 몫의 신실함을 나타낸다. 그 지원이 복음을 펼치는 사도 일행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그 감사의 마음을 표함과 동시에 장중한 기도로 빌립보교회를 축복한다. 그렇게 선의를 베푼 빌립보교회에 풍요로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시기를 기원한다. 이 기원이 비단 영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실제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충족방식이 상거래에서 이뤄지는 맞교환 방식이거나 투자에 따른 이윤을 얻는 방식과는 물론 다르다. “여러분에게 이롭게 될 풍성한 열매”(17절), “아름다운 향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18절) 등의 표현은 세속적인 상거래에서 이뤄지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보상을 함축한다. 스스로도 어려움을 갖고 있는 조건에서 나누는 삶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그 충족의 방식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 인사와 축도 - 4:20~23


바울은 이제 마지막으로 빌립보교회 교우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함으로써 서신을 마무리한다. 빌립보교회에 안부를 전하는 사람은 바울뿐이 아니다. 형제들, 곧 다른 동역자들, 그리고 지금 바울이 감옥에 갇힌 지역의 교우들도 있다. 교회의 연대성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가이사의 집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은 말 그대로 보자면 황제의 가족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는 황제의 친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통치체제하에 그 행정을 맡은 고위관료에서부터 최하급 노예에 이르기까지 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뜻한다. 바울이 이들을 언급했을 때, 이들은 아마도 노예이거나 해방 노예들에 해당하는 말단의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들 가운데 바울에게 감화를 받은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이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언급은 그런 만큼 사도 자신이 지금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머지 않아 벗어나리라는 기대 또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 문안인사 다음에 바울은 축복기도로 서신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있다. * 빌립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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