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심는 사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고린도전서 3:6~9 [최시내 교우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3-03-12 17:19
조회
1262
2023년 3월 12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청년주일 예배
제목: 심는 사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고린도전서 3:6~9
최시내 교우



제가 말씀나누기를 마음먹게 된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청년주일이고, 청년회 안에서 제가 해봐도 좋겠다는 얘기를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번 하고 나면 그다음 교회 생활이 조금은 편할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이번에 하고나면 앞으로 10년은 부담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신도주관예배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입장으로서, 제가 하고 나면 다른 교우분들의 부담도 줄여 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저는 다른 교우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저는 평생을 교회에서 살았지만 그냥 다녔던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서야 제입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 교회에 왔어요. 아마 저를 교회 안에서 오래 봐오신 분들은 제가 저의 불만을 어떻게 표출했었는지 기억하실거에요. 그래서 아마도 그부분이 제일 궁금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최시내가 교회를 어떻게 열심히 다니게 됐을까?

저는 올해로 24년째 천안살림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천안교회라는 곳을 다녔었구요. 그리고 제가 뱃속에 있을때도 아마 엄마, 아빠는 교회를 다니고 계셨을 거에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인생에서 교회는 큰 부분이었어요.

천안교회를 다닐때까지는 별 생각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교회에 또래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일요일 아침에 TV에서 하는 만화를 중간에 끊고 나와야 한다는 것과 교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문을 잠그고 가야한다는 것. 정도가 불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빠가 교회를 새로 만든다고 했을 때, 뭣 모르고 좋아했어요. 아빠가 담임목사님이 되면 나도 집에 빨리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현실은 여전히 가장 마지막에 나왔지만요. 그럼에도 괜찮은 시절이었어요. 문제는 사춘기가 찾아오면서부터 였는데. 저도 안가고 싶다고 고집도 부려보고, 시험공부 핑계도 대봤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화도 내지 않고, ‘시내야. 엄마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교회에서 지내온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걸 너한테도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는거야.’ 라면서 조곤조곤 설득했어요. 차라리 화를 냈으면 제가 더 반항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튼 엄마가 그렇게 설득하면 저는 씩씩거리면서 따라갔어요. 그럴 때 아빠는 대문밖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렇게 교회에 가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라왔으니,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 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어요.그런데 교회에 신학생들이 있었어요. 또 선생님들은 우리를 데리고 뭔가를 해야하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귀찮고. 그래서 정말 지독하게 못되게 굴었어요. 준비해오신 프로그램들을 매번 무시하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엄마 아빠가 강지호 목사님께 미안한 마음이 크세요. 저도 다 커서 한번 강지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갔었는데, 무안하고 죄송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교회학교 아이들 보면 정말 착하다고 생각해요. 민서도 뚱한 얼굴을 하고서도 질문에 대답도 다 해주고, 뭘 하자고 하면 또 다 해주거든요.

그렇게 중학교 시기를 보내고, 고등학교는 전남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에 갔어요. 여러 좋은 이유가 있어서 선택한 학교지만. 그때 저에겐 두발자유와 사복이라는 점이 제일 매력적이었어요. 1학년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재미있게 다녔어요. 교회에는 한달에 한번이나 두달에 한번정도 왔어요. 그리고 한번은 제가 교회에 꼬마들하고 놀아줬거든요. 애들이 막 저한테 까불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마 박영옥 집사님이 셨던 것 같은데..깜짝 놀라서는 ‘시내언니한테 그러면 안돼!’ 하고 애들을 말리시더라구요. 제가 엄청 까칠한 걸 봐오셨으니까.

중학생때 보다는 괜찮아졌지만, 저는 여전히 교회가 재미 없었어요. 사람들이 일주일의 한번씩. 그러니까 인생의 1/7의 시간을 여기서 보낸다는게 미스테리 했어요. 그리고 제가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겠다는건, 어렵고 힘든일을 자처해서 가겠다는 거 잖아요. 저는 그부분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는 편하고 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요일엔 만화보고 늦잠 자면서요.

아마 20대 중반까지도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교회가 아닌 일상에서도 재미없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1년을 다니고나서 환경을 바꿔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안에 고여있는 것도 답답했고, 주변에 또래가 없는 것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없는것도 괴로웠거든요. 그래서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어요. 절박함이 통했는지 신청서를 넣자 바로 통과가 되고 비자가 나왔어요. 비자를 받고나서도 여러 현실적 요건이나 고민때문에,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 되기 직전에 출국을 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반대를 하셨었어요. 저는 다 준비하고 있고 한달 뒤면 나갈건데. 아빠는 그때도 ‘정말로 가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긴 했지만 정말로 엄마 아빠가 반대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대체로 많은 선택을 존중해주셨기 때문이기도 한데. 아무튼 아빠가 반대하니까. ‘이거다!’ 싶었어요. 이건 꼭 가야하는거구나. 내가 이번엔 정말 선택을 잘 했구나. 하고요. 왜냐하면 아빠가 설교시간에 자주 인용하시던 거창고등학교 10계명이 있거든요. 그중 하나가 ‘부모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는 곳이다. 의심치말고 가라.’ 라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일본에 도착했어요. 앞으로 살 동네를 훑어보려고 산책을 하는데, 여행으로 왔을때와는 너무 다른 거에요. 왠지 사람들이 제가 ‘외국인’ 이라는걸 다 아는 것 같았어요. 왜 저 외국인이 여기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기분을 느끼고 나니까, 빨리 여기에 스며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외국인인지 모르게요. 그러기엔 이 동네는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그게 굉장히 저를 불안하게 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난게 교회에요. 처음부터 교회에 갈 생각은 정말 없었어요. 그런데 마침 사는 곳과 가까이에 교회가 있었고, 저희교회에 자주 오시는 이상경 목사님도 알고 계신 목사님이 계신 곳이었어요. 교회에 처음 나간날. 목사님하고 사모님이 저를 집에 데려가시더라구요. 제가 일본어가 짧아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는데, 그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금세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이 동네에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라는 것만으로도요.

그러고나서 문제는 일을 구해야 하는 거였는데, 저는 생각보다 일본어를 못하는 거에요. 알아듣는게 겨우고 문장으로 말하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차츰 불안해져서 그제서야 아빠한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교토에 있는 라쿠난 교회의 어린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말을 배웠고, 뭐든지 서툰 저를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정말 환대 받았다고 느꼈어요.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툼을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편하게 오고갈 공간을 내어준 곳도 있었고. 그렇게 보냈던 1년이 저에게는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삶의 방향을 내 의지대로 한번 바꿔봤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받았던 여러 환대들이 저를 많이 채워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천안에 돌아왔어요. 교회에도 다시 왔는데, 몇 명 없었지만 청년회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에 오면 이야기 나눌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어요. 예전부터 있었던 분들도 분명히 있는데, 그 전에는 제 시야에 잘 안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새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신기한 것은 계속 새로운 청년들이 조금씩 나타났어요.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하다 보니 조금씩 친해지고, 친해지니까 교회 가는게 부담스럽지 않고, 심지어 어느날은 너무 재밌고, 재밌으니까 계속 재밌고 싶은거에요. 내가 재밌는걸 같이 재밌게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다보니까 수련회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그냥 모여서 얘기도 하고.

신기한 것은 이거 할까? 하고 얘기가 시작되면 어느새 옆에서 살을 붙이고, 필요한 부분을 살피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러면 혼자 생각했을때는 너무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어느새 착착 진행이 되는 거에요. 19년도에 처음 수련회를 준비하면서도 느꼈었지만, 작년 여름에 수련회를 경험하면서도 깜짝 놀란 장면들이 있었어요. 사실 저는 요리에 정말 소질이 없어서, 식사준비를 하자! 라고 생각해놓고도 자신이 없었어요. 메뉴는 어떻게 고르고 장은 어떻게 보고. 그런데 제가 걱정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주방에서 각자 일을 나누고 진행되는 과정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든든하고 신기했어요. 누군가 일을 벌리면 옆에서 다같이 달려들어서 착착 일을 진행시키는 거에요.

강화도에 가서도 야식은 저희가 만들기로 했어요. 그게 결정되자마자 다같이 주방에 들어가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고단했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또 다음엔 무슨 일을 벌려보면 좋을지 궁리하는 거에요. 그게 신기해요. 다 같이 재밌을 수 있다는게. 분명 고단하고, 짜증나는 일도 있고, 부담스러운 일도 있었을건데, 계속해서 다음 궁리를 한다는게.

새로운 청년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또 기뻤던 것은. 우리 교회에 저 말고도 그저 고여있는 아이들이 몇 있었거든요. 준후와 진원이 진건이에요. 어려서부터 교회에 같이 있었지만, 애기때 조금씩 놀아줬던거 말고는 각자의 방법으로 질풍노도를 거쳤어요. 조금씩 시기가 달랐고 다시 애기때처럼 같이 놀거나 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늘 동료애 같은게 있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서로 가족의 평화를 위해 교회에 나와서 버티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동료애는 있지만 사실 다시 섞일 접점이 없어서 우리끼리 있을땐 오히려 어색했는데. 새로운 사람들이 섞이니까. 그 친구들하고도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진원이나 진건이가 교회가 재밌다고 얘기할 때 깜짝 깜짝 놀라요. 나도 그런데, 너희에게도 그렇구나 싶어서요. 같이 청년회로 묶인다는게 조금 머쓱하기도 한데, 저는 지금 같이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어요. 교회가 재미있어지리라곤. 그런데 걱정은 했어요. 제 주체성 때문에요. 제가 교회에 꾸역꾸역 출석하는 이유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늘 부대끼는 마음이 있었지요. 내가 어른이 돼서도 내 의지 없이 교회에 끌려다니면 어떡하나. 언제까지 엄마아빠의 핑계를 대며 얼굴을 구긴채로 앉아있어야 할까. 하고요. 어떤 계기를 만나야 내가 교회를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 있을까를 좀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교회를 다니면서는 일단 재미있어요. 가끔 피곤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가 재밌게 보내는 시간들이 차곡히 쌓이고 있다는 감각이 좋아요. 아마 조금 더 나이를 먹더라도 이 기억들은 오래오래 저의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의 청년회를 보면, 단순히 재미만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에요. 역할을 나눠갖고, 책임을 나누고 있어요. 누구하나에게 무게가 쏠리지 않게 조금씩 살피면서요. 그런것들을 조금씩 계속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일과 감당할 수 없는일. 그리고 주변사람을 살피는 일을요. 여전히 목사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공부도 게으르지만. 저는 교회에 나와서 여기에 묻어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묻어있는 것만으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어느날엔 엄마랑 같이 차타고 가던 길이었는데. 제가 물어봤어요. ‘엄마는 내가 교회를 이렇게 다닐 것을 기대했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기다렸다.’ 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무언의 강요도 강요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말로 다그치기보단 늘 데리고 다니면서 삶에 스며드는 것이 있기를 기다려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엄마만 기다려준 건 아닌것 같아요. 아빠도 가만히 기다렸을거고. 무엇보다 우리교회 교우분들이 기다려줬다고 생각해요. 교회 안에서 늘 그런 다정한 눈빛이나 손길들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가 무언가 하고 싶어졌을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할 때, 냉큼 손잡아 주실 분들이 계시다는 안정감이 있어서, 교회안에서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자꾸 기대하는 일들이 생겨나는데, 그것들을 가만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충분히 기다렸다가 누군가 꿈틀 거릴 때 알아차리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교회안에서 편안해지고 재밌어지고, 이런일들이 엄마 아빠가 계획한대로 이뤄진 것 같아서 가끔은 배가 아파요. 너무 반항없이 고분고분 커온 것처럼 보일까봐요. 목사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교회안에서 지내는게 당연하게 여겨질까봐요. 봐오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왠지 당연하게 교회안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엄마 아빠의 계획이었다기 보단, 하나님의 계획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목사님이 봉헌기도 하실 때 꼭 해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본인이 알거나 모르거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리라는 말씀이요. 저는 그 존재에 대해서 모르거나, 외면하면서 살아왔는데 사실은 그 자리에 쭉 계시면서 지켜봐주신 것 같아요. 언젠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리고 얼마전에 가와사키 교회에 갔을 때, 이상경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평신도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본인은 목사가 아니었다면 일요일에 교회를 못 갔을 거라고. 그래서 목사가 된거라고. 우스게 소리로 하셨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 생각도 했어요. 어쩌면 나도 스스로 교회를 찾을 인물은 못되어서 교회 가까이에 심어두셨나보다 하고요. 어렸을땐 그게 원망스럽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게 그냥 나의 환경이 되어주었구나 싶어요.

그래서 제 신앙생활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 같아요. 그렇게 옆에 붙여 두셨으니 이제 조금 궁금해지고,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하려는데, 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늘 안전하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계시고. 같이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청년들도 있고, 또 제가 괴로워했던 10대를 다른 모습으로 통과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안에서 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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