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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삶의 기쁨을 향유 하는 신앙을 위해(조현우)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3-06-10 09:30
조회
2200
지금 여기에서 삶의 기쁨을 향유 하는 신앙을 위해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 최형묵 저)


1.  여는 글 (냉소에서 벗어나 실천의 장 한 복판으로)


근래 한국 사회에서 냉소(冷笑)의 대상으로 주로 회자 되는 영역들이 있다. 그 하나는"정치"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이다. 두 영역 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비 상식적 이고, 자기 기만적이며, 그로 인해 발생 하는 폐해가 너무도 빈번히 나타나기에 어떠한 "기대"와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더불어 사람들이 이 두 영역에 대해 냉소적으로 대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것"들이 자신들의 삶에 그다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영역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직접적이며, 이미 광범위하게 한국사회 제 영역에 침투 해 있다는 점이다.

정치 분야는 차치 하더라도 "기독교"는 날로 보수화 경향이 확장되고 있는 한국사회에 이념적, 실체적 자양분으로 자리 매김 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본인은 "냉소"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냉소는 뭔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보존의 욕망 때문에 "그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이며, 그 차가운 웃음은 실은 현실에 순응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 일 때가 많다. 본인 역시 어느 순간부터 "냉소적"이었으며 "역사의 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비평가"가 된 것이 아쉽지만 사실 이다.

현실과 궁극의 괴리 속에서 혼란스러울 즈음에 최형묵 목사께서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라는 노작을 세상에 내 놓았다.  민중 신학과 한국 기독교 변혁에 천착 해온 저자는 비평가가 아닌 "애정이 넘치는 내부자의 눈"으로 한국 기독교의 실체를 살피고, 그것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 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냉소자로, 방관자로 뒤로 한발 물러 서 있던 본인의 입장에서 이 책은 반갑기도 했지만, 뼈아프기도 했다.

성장의 논리, 물질적 현세주의와 배타적 자기중심주의로 자기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주류 한국 기독교의 실체를 고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 하는 "저자"의 땀의 결과는 새로운 길에 동참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 "살림 공동체"에 귀한 선물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취지나 내용은 "저자"의 몫으로 맡기고 본인은 이 책을 읽으면서 깊게 각인 된 두 가지 내용(개방성과 교회 구조의 재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논하고, 이어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2. 교회 구조의 재구성(적응의 길에서 대응의 길로)


사실 한국 기독교는 교파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의 구조와 성격상의 차이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보수든 진보든 개별적 교회 및 교인들의 수준에서는 상당 부분 신앙의 성격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뜻 한다. 동일한 교회의 구조를 통해 공유 되고 있는 신앙은 보수주의적 성격이 압도적이며, 그 것이 보수 기독교의 자기중심적, 정치적 행동을 강화시켜 주고 있음은 물론 진보 기독교 내부의 불일치 및 급진적 실천 세력의 소수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교회 구조"의 재편에 현실적 전략으로 제시되는 2가지 입장이 있는데,  "교회 해체 전략"과 "교회 재구성 전략"이 그 것이다.

"교회 해체 전략"은 보다 근본적인 처방책으로 볼 수 는 있으나, 본인의 판단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보여지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교회 재구성 전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교회 재구성 전략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5가지 안( 회중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교회 정치 구조, 공평한 은사의 배분으로서의 교회 직제, 공동체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 소통을 지향하는 교 회 공간, 능동적 주체로서의 평신도의 자각)은 저자의 목회 방향과 살림 공동체의 실천적 노력으로 낯설지 않으며 상당 부분 실행되고 있어, 5번째안 "능동적 주체로서의 평신도의 자각"에 대해 간단히 의견을 내 놓고자 한다.

저자가 교회 안에서 위계적인 신앙문화 형성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요인이 무엇보다 일반 평신도의 비주체성이라고 지적한다.  여는 글에서 자기 고백을 했지만, "주체"의 능동적인 실행 없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 사실 많은 부분(진보든, 보수건 간에)을 목회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교회 평신도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주체"로서의 자각과 목회자와 동역자 로서의 자리 매김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예컨데 향린교회의 경우 평신도를 "생활 목회자"로 칭함) 예수께서 제자들과 민중들을 동역자로 삼았듯이 한국교회 평신도들도 목회자와 파트너십을 통한 교회의 갱신에 주체로 서야 할 것 이다.


3. 개방성(세상과 소통하는 개방적 신앙을 향해)


" 구원이 교회 밖에서 존재 할수있는가 ? " 문득 1992년 "종교 다원주의 신학"으로 감리교에서 퇴출된 변선환, 홍정수 목사가 떠오른다. 개방된 자세로 타 종교와의 소통을 주장하던 두 신학자의 퇴출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씁쓸하게 한다.

사실 한국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속성은 종교 간의 영역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주 5일 근무제, 양심적 병역거부, 출판물과 영화등 예술작품 문제, 사립학교법, 최근에 입법화 과정에서 무산된 차별금지법까지 주류 한국 기독교는 사회 전반에서 자기 이해와 배치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였고, 실력 저지도 불사 했다. 특히 세계적 차원에서도 논란되었던 폭력적인 해외 선교 문제는 자기중심적 자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자신의 믿음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야기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파괴력을 지니기도 하는 현실은 어떤 근거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본령을 "타자를 향한" 개방성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 대한 열린자세와 섬김의 자세가 기독인의 근본자세임을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여는 전제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4. 함께 이야기 나눕시다.


1) 저자에 대한 질문

: 요즈음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데, 왠지 "선한 교회"에서 느끼는 한계와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저자의 의견은 ?


2) 함께 나누는 이야기


① 대안적 교회 공동체로 자리 매김 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부분은 무엇이며, 어떻게 현실화 시킬 수 있을까 ?

② 사회 선교 사업의 진행에 있어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 이며, 그것을 어떻게 구현 해 나갈 것인가 ?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7-0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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