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4/26 온라인 가정예배] 교회 공동체성의 위기와 새로운 기회 - 베드로전서 2:1~10 [동영상]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4-25 19:47
조회
35155
2020년 4월 26일 부활절 셋째 주일 온라인 가정예배

시작 오전 11:00
인도 담임목사 / 피아노 백수현 / 장구 정문자 / 찬양 김광식 서윤아 이정림 정문자 / 음향 이장희 / 촬영 최시내

* 오늘 예배를 위하여 수고하여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 주일 11시 시작을 기준으로 하지만, 형편에 따라 정한 시간에 예배에 임합니다.

예배에의 부름 / 인도자


입례송 / “가서 외치라”(살림의 노래 5) / 다같이


함께 드리는 기도 / / 다같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지게 하여 주시는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단하며 헌신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세움으로써 그 뜻을 펼치며
나아가 세상 한 가운데
저마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그 뜻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광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새찬송 382 / 통일찬송 432)/ 다같이


묵상과 성찰/ “The Living Light”(Hildegard von Bingen) / 다같이


평화의 선언/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롬5:13) / 인도자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회중기도 / 선재원 교우


찬양으로 드리는 주의 기도 / “주기도문”(살림의 노래 190) / 다같이


성경말씀 봉독/ 베드로전서 2:1~10 / 고용준 교우


말씀나누기/ 교회 공동체성의 위기와 새로운 기회 / 최형묵 목사


2020년 4월 2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교회 공동체성의 위기와 새로운 기회
본문: 베드로전서 2:1~10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됨의 의미,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교회됨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이른바 박해서신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책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로마사회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그리스도교의 근본 도리가 무엇이며 그 근본도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 주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바울서신과도 상당 부분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초기교회의 지도자로서 베드로와 바울이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성서의 여러 책들의 비중을 구별했던 루터에게도 특별히 주목되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루터는 이 책을 두고 “우리가 마땅히 으뜸가는 책으로 간주해야 할 책들 가운데서도 진정한 핵심이요 정수가 되는 책”이라고 극찬해 마지않았습니다.
초기교회에서 베드로와 바울은 처음에 선교 문제 특히 이방인의 선교 문제를 두고 견해 차이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베드로가 작성한 편지가 아니라 이후에 기록된 책으로 보이는 이 책은 기록 당시 교회의 정황이 공통되었기에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전반의 내용,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은 어찌 보면 매우 평범한 윤리적 교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압도적인 로마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아주 절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은 먼저 모든 패덕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버려야 할 패덕은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비방입니다. 그 패덕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사랑이 없는 삶, 책임감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의 지배적인 원리가 압도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4~8절)은 살아 있는 돌로서, 집짓는 사람들에게 버려졌으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그리스도, 그리고 나아가 그와 같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여 말하고 있는 이 내용은 시종일관 돌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버린 돌’, ‘산 돌’, ‘모퉁이돌’은 각각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할 때 자주 활용되는 상징어들입니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구약성서에서 그 의미는 각각의 의미를 지녔음에 틀림없는데, 이 본문 안에서는 하나의 일관된 의미체계 안에서 어떤 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짓는 사람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돌을 선택하여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돌이야말로 죽은 돌이 아니라 ‘산 돌’이라는 뜻입니다. 돌은 본래 죽은 것을 뜻하는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의 주춧돌이 됨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 돌은, 먼저 그리스도를 뜻하며, 나아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지어진 집은 물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비방을 일삼는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할 정도로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셨고, 그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산 돌’의 비유는 바로 그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바로 그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 돌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집을 떠받치는 주춧돌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걸리는 돌이요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말씀은 그 뜻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의 질서를 떠받치는 것과는 다른 기초에 의해 떠받쳐지는 질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기초는 집을 떠받치는 주춧돌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기초 위에 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택함을 받은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시민,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 집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의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튼튼한 집, 물론 그렇게 튼튼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물리적 대상물로서 집, 곧 건축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말씀이 말하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로서 교회는 세상의 버린 돌이었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기초가 된 돌을 그대로 닮았다는 것이, 본문말씀의 요체입니다.
사실 이 말씀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더욱 생동감 있게 이해하려면 역시 본문말씀이 내세우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가 함축하는 뜻을 새겨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돌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으로 주춧돌이 된 돌, 그 돌 위에 세워진 신령한 집으로서 교회 공동체의 이미지입니다. 그 집은, 여전히 버려졌지만 선택받은 돌과 같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상징적 이미지 안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강력한 자의식,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공동체에 대한 아주 뚜렷한 자기이해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대 세계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배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대의 전통적인 선민의식과 그에 기초한 일체의 제의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는 의식이 배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하나님께서 특별한 선민과 함께 하신다는 관념, 그것도 특정한 장소에 임재하신다는 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 가치관에 비춰보면 버림받은 존재,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새롭게 신령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이 새로운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기존의 선민의 논리,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제의를 거부하고, 세상사람들이 버리고, 지배적인 가치관과 질서가 배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씀이 박해의 상황 가운데 주어졌다는 것은, 어떤 가시적인 안전망과 경계 안에 있어야만 안위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조건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 없다, 성전이 없고, 회당이 없다고 두려워할 것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신령한 집이라는 것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지금 오늘은 얼굴을 마주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기대하였지만, 여전히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새롭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기존의 교회 공동체성의 위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성의 확장과 심화 기회라는 양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존의 공동체성은 직접적인 대면관계 안에 형성되는 친밀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측면에서 공동체성은 확실히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직접적인 대면관계가 제약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이 위기의 상황에서 누구나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성의 범위를 고통의 체감 범위와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 전 세계가 이렇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껏 우리가 경험한 공동체성을 넘어선 공동체성을 구현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인간문명의 행보 또한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현대 선교론에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본질은 ‘모이는 교회’보다는 ‘흩어지는 교회’, 곧 세상 가운데 현존하며 복음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알고 마음과 지혜를 모은다면, 교회의 그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제한되어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 몸과 몸이 마주하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마음을 나누고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기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능하다면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것 또한 마땅합니다. 어쩌면 그 직접적인 대면관계 안에서 맺어지는 친밀한 관계로서 공동체성은 끊임없이 공동체성을 확장하는 기본적인 원동력일 것입니다. 그 체험이 있기에 그 체험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성,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고 그 기대가 현실성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새로운 경험의 끊임없는 원동력이 되는 점에서 그 원초적 경험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의 조건 안에서 그 경험이 주는 긍정적인 핵심을 어떻게 지속하고 펼쳐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옛 상태로 단순한 원상복귀만을 기대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미처 익숙하지 않지만 갑작스럽게 주어진 새로운 조건 안에서 공동체성을 확장할 뿐 아니라 이전의 친밀한 공동체 경험의 원동력을 살려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입니다.
엊그제 제가 언론의 물음에 대비하기 위하여 교우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내일 모레 또다시 본격적인 물음에 답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만, 몇 분이 주신 의견을 접하면서 역시 성숙한 신앙의 체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 안도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저렇게 소통을 하고자 시도하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그 체험을 일상화할 뿐 아니라 안팎으로 더욱 촘촘히 하는 마음과 지혜가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우리가 안에서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하여 서로 마음을 쓰고 돕는 노력, 그리고 모처럼 새삼 겪고 있는 밖을 향한 연대의 노력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당장은 낯설게 느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구현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전망에 빛 한 줄기를 더하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각기 가정에서 형편대로 정성을 모읍니다.

봉헌송/ “나란히 가지 않아도”(살림의 노래 41) / 다같이


봉헌기도 / 인도자


* 봉헌기도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 하늘의 뜻을 이루고자 결단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결단송 / “산 밑으로 내려가자”(살림의 노래 112) / 다같이


축복기도 / 담임 목사


알림 /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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