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회적 합의와 선택의 중요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1-10 11:19
조회
1671
* <주간기독교> 다림줄 52번째 원고입니다(141110).


사회적 합의와 선택의 중요성


모처럼만에 짧은 필리핀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내가 소속한 노회가 파송하고 지원한 선교사의 선교센터 헌당예배에 참석하는 한편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필리핀 현지교회(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와의 교류협력발전을 위한 실무협의를 위해서였다.


어디이든 항상 여행 중에는 새삼스럽게 보이고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들이 많다. 이번에도 필리핀의 교회 상황과 사회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한 직접 눈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비교하는 관점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필리핀 사회의 어수선한 상황과 극심한 빈부격차의 현실을 보면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고통을 겪는 한국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충체육관까지 지어준 나라였는데, 상황이 역전된 것을 보면 여러 착잡한 생각이 든다. 한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그토록 풍요로운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절대다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기까지 한다.  


발전한 나라 한국에 대한 우월감 같은 데서 비롯된 생각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우월감 같은 것을 내세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삶의 조건 또한 삶의 질을 향상하는 하나의 조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두 나라 사이의 현재 격차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문제가 토지개혁이다. 필리핀은 아직도 대지주 가문이 모든 정사를 주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몇 개의 가문이 거의 전 국토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사회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지개혁이었다는 사실은 곧잘 간과된다. 그저 위대한 영도자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이었던 것으로 오인된다. 아니다. 일제치하에서 민족독립운동을 하였던 모든 정파 사이에서 합의된 것 가운데 하나가 토지개혁이었다. 그것은 근대화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신속하게 토지개혁을 마쳤다. 남한에서 사회적 안정을 위한 급선무가 토지개혁이라는 사실은 미군정도 간파했다. 북한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농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개혁이 착수되었고,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 덕분에 전근대 세력의 저항을 배제하고 전국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경제발전의 객관적 조건으로서만 의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배타적인 소유권의 관철이 민중의 생존 및 생활의 권리를 제약할 때 어떤 사회적 합의와 선택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다. 오늘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보다는 기업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극심한 격차의 현실을 생각할 때, 다시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자 동시에 윤리적 자산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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