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낮은 자리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절기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2-08 10:57
조회
1476
* <주간기독교> 다림줄 53번째 원고입니다(141208).


낮은 자리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절기에...


대림절 첫 주일 교회에서는 특별한 증언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영국인으로서 일본 교토 세이카(精華)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민주화 지원활동을 펼쳤던 데이비드 보겟(David Boggett) 선생의 증언이었다.


수 년 전 교토에서 지인의 소개로 이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깜짝 놀랐다. 영국인으로서 일본의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교수생활을 한 것도 이채로웠지만, 정작 놀란 것은 이분이 일본에서 그와 같이 생활하게 된 사연이 한국에서의 한 사건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1969년에 일어난 이른바 ‘국회간첩단 사건’이었다. 이분은 그 당사자들의 이름을 따라 ‘박노수ㆍ김규남 사건’이라고만 말했다. 분단시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숱한 간첩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그 대부분은 일일이 그 전모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대략 기억에 남아 있건만 낯설게 느껴진 그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은 이른바 삼선개헌이 이뤄질 즈음 그에 반대한 여권 내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김규남은 당시 민주공화당 현역 국회의원이었고, 박노수는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국제법학을 전공하고 청와대 비서관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삼선개헌안을 반대했던 김규남 의원, 그리고 그와 일본 도쿄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박노수는 간첩단의 수괴로 지명되어 체포되었다. 보겟 선생은 당시 캠브리지대학 학생회장 자격으로 동문 박노수 구명을 위하여 한국에 달려 왔고, 진상을 규명하는 한편 관계요로에 구명을 청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2년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처형되었다. 이후 보겟 선생은 일본에 눌러앉아 교수생활을 하면서 <로닌>(Ronin; 浪人)이라는 영문소식지를 만들어 한국 민주화운동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이 사건은 2006년 광주MBC에 의해 방영된 ‘국회간첩단 사건의 진실과 코펜하겐의 홀로 아리랑’을 통해 세간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그 사건의 당사자들은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고등법원에 이르기까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광주MBC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보겟 선생은 40여 년 전 어린아이였던 박노수의 따님을 만나 아버지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어찌 그분이 사과할 일일까?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며, 그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다시는 그와 같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을 터이다.


보겟 선생의 증언과 함께 우리는 그 날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함께 나눴다. “너희는 내가 ...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오신 아기 예수를 맞이하는 이 절기에 그 말씀의 의미를 새삼 새기는 계기였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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