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촛불혁명과 한국사회 -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는 주권자 혁명과 기본권의 확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7-11-24 21:40
조회
772
2017年度 基督敎共助會 京阪神 修養會 講演 1
主題: 真理は隣人によって証される
2017年 11月 22日(水) 午後 6:00-8:30 / 京都 北白川敎會


촛불혁명과 한국사회
-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는 주권자 혁명과 기본권의 확대


崔亨黙


1. 서론

(* 애초 강연제목에 ‘촛불혁명’으로 명기하였으나 강연을 준비하면서 ‘촛불항쟁’으로 바꿨다. 그 의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항쟁이 장차 명실상부하게 어떤 체제의 변화로 귀결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말을 절제하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2016년 10월 시작되어 올해 2017년초까지 지속된 촛불항쟁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과정 가운데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현재 문재인 정부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90%가 넘는 지지율이 몇 달이 지난 지금 70%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사실은 현재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강연을 준비할 즈음인 지난 10월 22일 일본에서는 총선이 있었고, 그 결과는 아베 수상이 이끄는 자민당의 압도적 승리였다. 이제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헌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미 전에도 개헌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반대하는 국민여론과 현재 아베 내각에 대한 낮은 지지율 탓에 개헌을 할 수 없었던 사정을 생각하면, 이번 총선 결과가 꼭 개헌으로 귀결되리라 예견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엇갈리는 양국 사이의 현상을 보면, 동북아시아의 역학구도 가운데 나타나는 한일간의 비대칭적 관계가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비대칭적 관계란,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은 냉전의 최전방으로서 군사독재가 자리한 반면 일본은 평화주의를 구가하였는데, 냉전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었을 때 일본이 군사주의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냉전체제가 해체되었다고 하지만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고, 특별히 최근 북핵을 둘러싼 긴장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 정부가 평화적 접근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그 긴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비대칭적 관계가 재현되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강연은 그 현상을 본격적 주제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각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각 나라의 고유한 동인에 의해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차원에서 모종의 국제적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만을 확인하며, 평화적 질서를 위한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서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환기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강연의 주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무적인 현상에 대해 한국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그 의의를 생각함으로써, 한일 양국 시민사회와 그리스도인들간의 대화와 협력의 접점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2. 한국사회에서 촛불항쟁의 의의

촛불항쟁은 그에 참여한 시민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격화되었고 마침내 합법적인 민주적 절차를 통해 기존의 권력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권력을 등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항쟁은 세계의 여러 언론들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2017년 3월 10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사설은 이렇게 평하였다: “지난해 말 한국의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헌재 결정은) 대중의 정서를 수용하고 정당한 절차와 법에 근거해 한국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번창하는 나라라는 신뢰를 강화했으며, 세계에서 위협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줬다.” 2017년 5월 10일 대통령선거 결과를 두고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이렇게 평하였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세계에 보여줬다.” “서구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해로운 민족주의의 부흥으로 절망에 휩싸여 있을 때, 한국은 민중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방금 전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다. 특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독재정권을 갓 80년대말에 민주주의로 교체한 나라란 점에서 그렇다.” 또한 2017년 10월 15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Friedrich Ebert) 재단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국의 천만 시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촛불항쟁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부터 촉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한 통치자의 무능과 비리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사회에 누적되어 온 전반적인 적폐와 관련되어 있다.
첫째, 촛불항쟁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87년 체제는 그간 누적되어 온 민주화운동의 성취이지만 동시에 명백히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의 실현과 일정한 권력견제 장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개념의 도입 등을 포함하는 헌법 개정과 함께 시작된 87년 체제는,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와 결별하고 민주적 절차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이지만,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기 어려운 정치구조를 온존시켰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녔다. 그것은 6월 시민항쟁과 7~8월의 노동자항쟁이 명백히 분리된 조건에서, 그것도 제도정치권에 개혁적 조치가 위임된 조건에서 이뤄진 결과였다. 단적으로 말해 87년 체제는 형식적ㆍ절차적 민주주의에서 큰 진전을 이뤘지만, 내용적ㆍ실질적 민주주의에서 한계를 지녔다. 촛불항쟁은 그 절반의 실패를 극복하려 한 것이다.
둘째, 촛불항쟁은 박정희 시대를 마감하고 그 신화를 무너뜨렸다.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은 반공주의ㆍ성장주의ㆍ지역주의ㆍ권위주의 등으로 집약되거니와, 그것이 신화가 된 것은 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모든 가치판단을 중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10년의 민주정부 시절에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장주의는 결코 포기된 적이 없으며, 더욱이 보수정권의 재등장은 그 신화에 대한 믿음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 신화에 힘입은 바 컸다. 다만 차별화된 전략이 있었다면 시대적 요구로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그 공약이 진정성이 있었고 그렇게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면 박정희 신화가 더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패한 지금 박정희 신화 역시 파탄에 이르렀다. 그 실패로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었지만, 그 신화의 미망에서 깨어나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적 폐해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 중대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셋째, 촛불항쟁은 분단 이래 지속되어 온 친미 반공주의의 청산을 의미한다. 분단 이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한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폐해 또한 컸다. 분단체제하에서 반공주의는 국가안보를 내세운 권위주의 통치의 구실이 되었고, 그 가운데서 양심과 사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다. 일방적 친미 지향은 국가주권의 존재 자체를 의심케 만들기도 하였으며, 남북관계와 동북아시아 질서 안에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저해하였다. 촛불항쟁은 강고한 분단체제의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확인해주었다.
거시적 맥락에서 보자면,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면서 누적되어 온 한국사회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촛불항쟁은 제기하였다. 다시 말해 촛불항쟁은 한국사에서 1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국권 및 민권의 쟁취의 도저한 물결을 이은 것이다. 1862년 임술년 농민봉기(진주민란), 1894년 동학농민혁명, 1898년 만민공동회, 1910년 한일강제병합전후의 의병봉기, 1919년 3.1운동(민족ㆍ민주혁명 / 민권에 기초한 국권 회복 운동), 이어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임시정부와 독립전쟁, 1960년 4.19혁명,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 1970년대 민주화운동,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항쟁을 잇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촛불항쟁은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 도저한 대열의 의미를 한마디로 집약하면 민중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주권과 인권, 그리고 그 신학적 의의

1) 주권과 인권, 그 보편적 의의
한국사회에서 촛불항쟁은 명실상부한 국민주권 시대를 열었다. 국민주권의 실현은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일상적 삶 가운데서 그 평범한 사람들이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선 그 보편적 의의를 확인하고자 한다.
주권과 인권에서 공통되는 권리(權利, Right)는 ‘사람들이 적절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 마땅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권리를 보유하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정당한 자격 또는 청구(請求)’를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주권(主權, Sovereign)이란 ‘특정지역을 지배하는 최고권력’(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권력)이다. 대외적으로 다른 주권국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특정 지역내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power)을 갖고 있는 최고의 권위(Authority)를 말한다. 인권(人權)은 인간이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지는 권리를 뜻한다. 이는 인간이라면 출신이나 지위 또는 배경에 상관없이 갖는 동등한 권리를 말한다. 인권은 그 의미상 특정한 정치공동체/국가에 귀속된 구성원으로서 국민 또는 시민의 권리(국민의 기본권 또는 시민권)와는 구별된다. 인권은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 의미상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권리로서 주권에 앞서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로서 인권이 우선한다는 것은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주권의 등장이 인권의 등장에 앞선다. 주권은 먼저 중세 유럽의 단일한 기독교 신정체제(Christendom)로부터 국가의 독립이 이뤄지면서 등장한다. 그 결정적 계기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었다. 특히 종교개혁이후 오랜 전쟁을 겪은 후 유럽사회는 베스트팔렌조약을 체결함으로써(1648년)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평화체제를 확립하였는데, 이 조약에서 종교의 자유를 각 국가에 맡긴 것이 이른바 주권국가의 원리가 되었다(베스트팔렌체제의 탄생과 지속).
이후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서의 근대 정치혁명을 통해 주권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로 전화된다. 예컨대 미국의 독립혁명(1776년)은 애초 주권의 문제로 촉발되었으나 이로부터 만인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었고, 그 정신은 <버지니아종교자유법>(1786년), <미국권리장전>(1791년) 등에 명문화되었다. 또한 유럽의 계몽사상, 미국의 독립혁명 등의 직접적 영향에서 시작된 프랑스대혁명(1789년)과 이 때 등장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인권의 가치 확립에 이정표가 되었다. 주권국가의 등장에 이어 인권의 가치가 확립되면서, 주권국가의 임무는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사회계약의 성립). 현재까지 주권국가는 인권의 보장에 가장 효율적인 체제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자체가 인권을 보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근본적 문제, 그리고 주권국가 내 인권 보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특정 국가 내에서 보장되는 인권은 사실상 국민의 권리로 한정되는 문제(‘비국민’ 또는 ‘비시민’ 배제)로 오늘날 주권과 인권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권을 위한 국제적 체제 형성(국제연합, 국제형사재판소)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단일한 중세 질서의 균열과 함께 등장한 주권체(Sovereignity)/주권국가는 역사적 국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 발전하였다. 예컨대 왕족 주권체, 제국 주권체, 대중 주권체 등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주권재민의 이념을 구현한 대중 주권체가 가장 일반화된 주권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 주권체라 하더라도 그 구체적 양상은 상당히 다양하다. 의회 주권체, 민주주의적 주권체(대의 민주주의 또는 직접 민주주의), 전체주의적 주권체 등 다양한 양태를 갖고 있다.
인권은 철학적 이념에서 정치적 이념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적 요구로 제시되는 단계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인권 형성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그 요체를 훨씬 파악하기 쉽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권의 발전 과정은 대략 삼 세대로 집약할 수 있다.
제1세대 인권(자유권)에 해당하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은 서구 계몽주의의 유산으로서, 봉건적 체제에 대항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한다. 개인의 생명권, 종교와 의사표현의 자유, 그리고 재산권 등이 그 구체적 내용에 해당한다.
제2세대 인권(사회권)에 해당하는 경제적ㆍ사회적 권리로서의 인권의 확장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노동운동의 성장으로 이뤄졌다. 계몽주의 이래 자유주의적 인권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무산계급, 곧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없이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다. 이로부터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ㆍ물질적 조건의 보장을 요구하는 경제적ㆍ사회적 권리 의식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사회적 삶을 평균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생존과 생활 수단을 확보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경제적 평등, 제반 노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어린이 및 청소년 복지, 기타 사회복지 권리 등이 그 구체적 내용에 해당한다.
제3세대 인권(연대권)은 문화적 및 연대의 권리로서, 그것은 애초 소수민족의 자결권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보다 광범위한 소수집단들, 예컨대 소수인종,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요구들을 함축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소수집단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에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한편으로 오늘의 인권의식의 확장과정에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문화적 상대주의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쟁점을 안고 있다.

2) 주권과 인권, 그 신학적 의의
근대 유럽 역사에서 주권과 인권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것은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요, 따라서 반기독교적인 현상으로 간주되기까지 하였다. 그 까닭에 이 문제는 신학적 주제가 아닌 것처럼 인식되었다. 적어도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참담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이전까지는 그러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국제연합을 통해 세계적 인권체제의 형성이 이뤄지면서부터 기독교 신학에서도 이 문제들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인권침해의 보편성으로부터 인권보장의 보편성을 새삼 자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애초 주권과 인권의 문제가 신앙의 자유 문제와 깊은 관련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유럽의 역사에서 등장한 주권과 인권은 신학적 제외의 대상이 아니라 신학적 재해석의 대상이다. 또 다른 한편 근대 유럽 세계에서 주권과 인권을 옹호한 계몽주의 정신이 전적으로 세속적 기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가치들이 세속화된 형태를 취한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목적론적 역사관, 자연권과 천부인권, 삼권분립, ‘오이코노미아’, 주권재민과 ‘일반의지’ 등등은 기독교의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현대의 중요한 정치 개념에 해당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가치들과 신앙에 따른 가치를 별개로 보는 관점을 지양하고 함께 아울러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신앙의 언어는 보편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실질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근대적 의미의 주권과 인권 개념으로 곧바로 환원할 수 없지만, 성서는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통찰의 근거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고대 근동에서 신의 주권은 지상의 왕권을 정당화는 근거가 되었으나 성서에서 하느님의 주권은 왕권을 제한하고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왕이 되기를 거부한 기드온의 이야기(사사기 8:22~23)나 왕권을 거부한 사무엘의 이야기(사무엘상 8장)는 그 전형적 범례이다.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주권이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거 또한 매우 풍부하다. 예컨대 창조 이야기에서의 하느님의 형상(창세기 1:27), 자기 백성과의 계약과 해방(출애굽기), 성육신(요한복음), 사도 바울의 인의론(로마서) 등은 그 전형적 범례이다.


4. 민중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

주권과 인권의 보편적 의의와 신학적 의의를 살펴본 것은, 한국사회에서 촛불항쟁이 제기한 과제들이 갖는 보편적 의의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에서 촛불항쟁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인권을 기본 가치로 하는 국가를 표방하며 여러 개혁 정책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 국정교과서 폐지, 검찰개혁, 재벌개혁과 공정거래 정책, 주변국가(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와의 조율, 전시작전권 회수 계획, 남북관계 조정, 4대강 수문개방,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원전제로 정책(최근 시민공론화위원회 결과 건설중인 원전은 계속하지만, 신규 원전은 폐지한다는 결론에 이름), 전향적인 인사정책, 탈권위적 회의와 소통 등등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근래 북핵 문제와 사드배치 문제로 극도의 긴장이 조성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국제적 역학관계 안에서 새 정부의 역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적 접근의 기조, 그리고 국내적 차원에서의 개혁적 정책의 기조가 변경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중재자로서 역할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한 국민의 기본권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기대의 실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기 위하여 한국사회에서는 여러 법제를 만드는 것을 포함하여 헌법 개정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헌법 개정을 저지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기본권의 확대를 위하여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헌법 개정은 그 전문의 내용 가운데 이미 명기되어 있는 1919년 3.1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불의에 항거한 1961년 4.19민주이념 계승에 더하여 1980년 광중항쟁의 정신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논란, 그리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할 것인지 ‘사람’으로 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논란이 동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어쨌든 여러 쟁점들이 부상하겠지만, ‘민주공화국’의 정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요구와 더불어 헌법 개정 및 법제의 보완과 관련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사안들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명실상부한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통치구조와 관련해서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 가능한 한 직접 민주제의 반영(공론화위원회, 시민의회 등), 국민 대표권의 왜곡을 방지하는 선거제도(비례대표제의 강화) 등의 쟁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강화되어야 할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완전한 보장, 참정권의 확대(예, 선거연령 하향), 국민소환, 사법영역에 대한 국민 참여와 견제, 노동권의 실질적 보장과 강화, 경제민주화 실현,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국민청구, 차별금지, 헌법 파괴자에 대한 처벌과 권리 제한 등의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5. 결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과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촛불항쟁은 최고 권력자의 무능과 비리를 겨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한국사회에 누적되어 온 적폐를 청산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지 위임된 통치자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 사회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비상한 정치적 국면에서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부조리한 현상에 저항하고 그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요구하는 과제들을 스스로 선취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적 차원에서 끊임없는 신학적 계몽과 교회생활의 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특별히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요체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그 교회의 정체성을 재정립한 시도는 국가사회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은 당시 유럽사회의 그것과 다르고, 또한 한일 양국간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또 각기 그 처한 상황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현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그리스도인이든 동일한 입장에 있다. 그 근거 위에서 한일 양국의 그리스도인이 각기 사회 안에서, 그리고 나아가 국제적 관계 안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