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20] 서로 짐을 져 줍시다 - 갈라디아서 6:1~10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3-26 21:55
조회
784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3월 26일 / 최형묵 목사


제20강 서로 짐을 져 줍시다 - 갈라디아서 6:1~10


1. 서로 짐을 져 줍시다 - 6:1~6


앞에서의 권면이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이 대목의 권면은 갈라디아 공동체가 처해 있는 모종의 특수한 상황을 유념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이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게 되는 상황을 전제한 것은 일반적 상황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갈라디아 공동체 안에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자유가 방종에 빠질 가능성, 육의 행실의 문제점을 힘주어 역설한 것은 결국 갈라디아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 상황은 갈라디아 공동체가 율법을 따르는 길에 빠져 든 정황을 말해 주기도 한다. 바울이 그 상황을 전제하면서 말하는 ‘죄’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법률적 의미를 지닌 ‘범죄’와 같은 개념이고, 그것은 5장에서 말한 육의 행실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악덕이다.

그런데 바울은 죄를 범한 사람을 문제시하기보다는 그를 다루는 사람의 태도를 오히려 문제시한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이 권면의 내용은 그리스 철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자기성찰을 강조한 것이다. 델피의 신전에 기록된 유명한 경구이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강조된 “너 자신을 알라.” 하는 격언과 통하는 권면이다.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이야기는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거나 그렇게 함으로써 육의 행실에 빠질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범죄자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독선적인 태도가 범죄자의 범죄보다 더 큰 손상을 공동체에 입힐 가능성을 간파하고 있다.

이어 서로 남의 짐을 져주라는 권면 역시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하여 널리 유포된 격언이다. “사람은 친구들이 진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소크라테스). 여기서 짐은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실수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이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서 짐이 되었을 때 그것을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 의미는 실수를 바로 잡을 뿐 아니라 다른 동료가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 격언에 덧붙여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일반적 격언의 의미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연결시키고 있는 셈인데,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은 바울에게서 여기서만 단 한번 사용된 것으로 매우 생경하다. 바울이 그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앞에서 율법의 성취로서 사랑을 말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율법에 매인 사람들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며, 또 한편으로 자신이 결코 무법자가 아니라는 것을 변호하고자 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뭔가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경계한 것 역시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과 뜻을 같이한다. 남과 비교해서 자기가 뭔가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라는 격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형태로 변형된 격언을 계속 되풀이함으로써 바울은 일관되게 자기성찰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다만 철학자들이 성찰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고 있다면 바울은 은혜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자기의 짐을 지라는 이야기 역시 크게 보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을 분명히 알라는 이야기이다. 이 격언이 서로 남의 짐을 져 주라는 격언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몫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남의 짐을 져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격언은 다시 좋은 것을 함께 나누라는 것이다. 이 격언 역시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서 스승과 학생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정신을 환기할 뿐 아니라, 심지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구절 곧 “나에게 이 기술을 가르쳐 주신 자를 나의 부모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삶을 그와 협력하여 사는 것, 그리고 그가 필요로 한다면 그에게 나의 몫을 주는 것...”이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바울은 여기서 말씀을 매개로 그 나눔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 안의 가르치는 사람들의 몫을 시사한다. 배우는 사람들이 그들과 협력하여 공동체를 완성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2.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 6:7~10


같은 뜻을 지닌 격언을 누차 반복한 바울은 마지막으로 역시 동일한 뜻을 지닌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격언으로 정리하며 이를 종말론적 차원으로 연결시킨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격언에 곧바로 연결되는 하나님은 조롱을 당하는 분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자기를 속일지언정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을 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종말론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바울은 앞에서 말했던 육과 영의 이원론으로, 그 열매를 양극으로 갈라 말한다. 육이 바라는 것을 따라 심는 사람은 썩을 것을 거두고 영이 바라는 것을 따라 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거두리라고 한다. 통상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바울은 자기 책임의 문제를 등한시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5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지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스스로의 선택의 차원과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극명한 대비에 이어 긍정적인 언어로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지쳐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선포를 한다. 이것은 5장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를 말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낙심하지 않고 지쳐 넘어지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보편적인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지탱시켜준다. 마지막 결구는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더욱 그렇게 할 것을 말한다. 그것은 배타적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 사랑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출발점을 말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충실성을 배제하고 추상적인 박애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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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0 10:46
    따끈따끈한 정리...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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