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노래 - 누가복음 1:46~56[오현선 목사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8-02-11 15:18
조회
9392
2018년 2월 11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노래
본문: 누가복음 1:46~56
오현선 목사( 호남신대 교수)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누가복음은 엘리사벳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기독교의 이야기는 오랜 기간 아기를 갖지 않았던 사람과 정혼만 한 채로 아기를 가지게 된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게 합니다.

성서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성이라, 제사장의 아내라, 요셉의 아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 여겨져 기독교 공동체의 근간이 태동하는 사건이 그 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난 것은 천사로부터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을 전해 듣고 난 후입니다.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 임신을 하고 찾아간 곳은 자신의 가족이나 정혼자가 아닌 엘리사벳의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였으나 매우 정서적 사회적 위기에 처하게 된 마리아는 아마도 안전하며 신뢰할 만한 위로자가 필요한 그저 우리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임신중기를 지난 시기였으나 찾아 온 마리아를 마다하지 않고, 마리아를 품음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어려움을 감수하며 마리아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맞이합니다. 마리아를 환대하고 더불어 먹고, 돌보고, 품었던 엘리사벳은 성서에 ‘의인’이라 기록(1장6절)되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3개월을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성서이야기는 저와도 깊은 사연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벌써 오래전이지만 박사과정 논문주제 제안서를 쓸 때 만나게 된 이야기로 신학자로 목회자로 살면서 늘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말씀들 가운데 한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엘리사벳이 필요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초 신학대학을 들어갔었지만 그 때는 제가 속한 장로교 교단이 여성안수가 되질 않아서 자매교단인 미국장로교에서의 안수를 위해 미국을 갔었고 그곳에서 공부까지 하게 되었었습니다. 학비도, 영어도 준비가 되지 않았던 제게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고 박사논문 제안서를 쓰려고 고민하면서 누가복음의 엘리사벳을 만나게 된 것은 큰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부할 기회를 제공했던 미국장로교회, 제 모교인 클레어몬트신학대학교, 지도교수 메리 엘리사벳 무어 박사님. 돌아보면 수 많은 엘리사벳이 제 삶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위와 안수를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안산에서 목회를 하면서 만난 이주노동자들, 강의를 하면서 만난 다양한 폭력 희생자들이었던 신학생들, 혼인 이주여성 등은 많은 엘리사벳을 찾는 수많은 다른 얼굴의 마리아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교회는 엘리사벳의 집을 닮아야 하며 성도들은 서로에게 마리아요, 엘리사벳이어야 함을 다시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는 304명의 희생자를 만들었고 세월호는 한 척이었지만 희생자 304명 모두는 각각의 다른 아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음이 세월호에 조금씩 가까이 갈수록 느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이후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바다에 잠긴 그 날 자신의 시간도 멈춰버린 한 가족의 어머니가 어느 날 제게 물었습니다. 자신은 가족과 교회, 집 밖에 몰랐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게 하나님은 적어도 자신의 자식을 시신으로라도 만질 수 있게 했었어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왜,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물었습니다.

저 역시 어려운 마음이었지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다르게 그 분이 하나님이신 것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할 수 없는 점이 있을 것이고 그 점이 바로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세월호 곁에 왔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떠나가지만 하나님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 속에 숨져 간 연민의 하나님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하나님의 성격이지 않을까... 제 마음을 조심스럽게 나누었습니다. 목사로, 신학자로 저는 그런 하나님을 닮으려 노력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기에 그저 연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고통 가운데 계신 사람들과 연대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세월호의 두 엄마는 배가 뭍으로 올라오기 전 성탄 때마다 팽목항에서 함께 예배한 사람들에게 흐느끼며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팽목항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함께 계세요. 저 깊고 냄새나는 캄캄한 배에 하나님은 우리 아이를 안고 계셔요. 우리는 그렇게 믿어요...’ 가족들은 서로에게 엘리사벳이었으며 팽목에서, 신항에서 드린 예배의 자리는 엘리사벳의 집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서로에게 엘리사벳이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 더불어 지내며 자신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한 노래가 마리아 찬가임을 봅니다. 절절하게 고백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하나님이심인 이유가 찬가에는 스며있으며 그 노래를 들은 담장 밖,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고백을 위로의 노래, 연대의 노래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함께 하면서 해방의 시간을 누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여신도회 회원여러분! 서로에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되어 함께 품고 해방공동체를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유쾌하게 찬양하며 하나님이 누구신가 노래하시기를 바랍니다. 연민하시는 하나님을 쫒으며 함께 노래하고 연대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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