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 마태 2:16~18; 누가 23:27~29[정용택 목사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9-02-10 15:23
조회
41865
2019년 2월 10일(일) 오전 11시 천안살림교회
제목: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본문: 마태복음 2:16~18; 누가복음 23:27~29
정용택 목사

2: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23:27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 여자들은 그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28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돌아다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29 보아라, 사람들이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본 적이 없는 가슴이 복되다’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표준새번역)



1. 성서를 읽는 세 가지 방식

성서 특히 역사적 기록의 형태를 띠고 있는 복음서를 읽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성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즉 본문의 진정한 의미에 직접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독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독법에 따르면, 우리는 성서에 기록된 진술을 읽자마자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법에서는 해석자가 놓여 있는 삶의 자리가 달라질 경우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령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러 명일 경우 해석자가 그 중 누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엇갈리는 해석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이라 일컫는 마가, 마태, 누가복음 간에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낼 경우 그 이야기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를 둘러싸고 각자가 정확한 해석이라 주장하는 상호배타적인 독법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심지어 복음서가 전하는 사건에 대해 성서 외의 다른 역사적 자료에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면, 혹은 성서 기록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충하는 기록이 발견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우리는 그 많은 텍스트-해석들 중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각각의 상이한 주장들을 과연 무슨 기준으로 선별하고 판단할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두 번째 독법이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역사비평이라 불리는 근대적인 성서 읽기 방식입니다. 한국 교회에선 여전히 첫 번째 독법이 성경무오설이라는 이름으로 지배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지만, 사실 근대 계몽주의 이래로 학문적 성서연구에선 역사비평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선 싫든 좋든 ‘주석’이라 불리는 역사비평의 기본적인 방법론을 배우고 익혀야만 합니다. 역사비평은 공관복음에서 서로 일치하는 자료들을 비교하여 그중에 가장 앞서는 것을 가려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동일한 성서 본문의 다양한 사본들을 비교하면서 원문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무엇인지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요세푸스의 저작처럼 신약성서 시대의 사건과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 자료들과 성서를 비교하면서 성서 기록의 역사적 진위를 판단합니다. 이와 같이 성서에 대한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비평을 통해서 근대적 성서 독법은 원문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 ‘본질’을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것으로 남겨두게 됩니다.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개연성과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실증할 수 없는 초월적인 어떤 것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가 한정되어 있고, 우리와 성서 저자들 사이에는 엄청난 시공간적 간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놓여 있는 삶의 자리에 한계 지워져 있는 부분적 양상, 어쨌든 간에 왜곡되고 변형될 수밖에 없는 해석에, 그리하여 진리가 아닌 ‘일리’에 도달하게 됨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의 인격과 말씀과 행적이 담고 있는 진리는 우리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어떤 것으로, 철학적인 용어로 하자면 ‘물자체(物自體)’로, 우리의 주관 바깥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오늘날 신학에서 이른바 탈근대적post-modern 해석, 또는 급진적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독법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독법은 역사비평의 성과 위에서, 그것을 극단으로 밀어붙임으로서 얻어지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얼핏 보기엔 역사비평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관점상의 중요한 전환이 있습니다. 우리들 바깥에 있는 텍스트의 초월적인 의미, 혹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진정한 텍스트가 따로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렸기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그간의 통념이 무너집니다. 오히려 애초부터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 혹은 진정한 텍스트로서 원초적인 사건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는 인식이 대두된 것입니다. 예수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그의 행적을 기록한 텍스트가 여럿이고, 또한 해석자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육신부터 예수운동을 거쳐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예수사건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이 이미 그 자체로 탈중심화되어 있는, 즉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무한히 개방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독법의 차이를 오늘 읽은 첫 번째 본문을 가지고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역사인가, 신화인가, 아니면 기억인가?

오늘 읽은 첫 번째 본문은 잘 아시다시피 예수의 탄생과 동시에 일어난 헤롯왕의 유아학살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서 왕의 탄생을 쫓아온 박사들이 왕이 될 그 아기를 찾게 되면 자신에게 돌아와서 자세히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도 그 아기에게 경배하겠다고 말하면서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요. 누가 봐도 헤롯이 그 아기를 죽일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에 어떤 왕이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동방박사들은 왕으로 태어난 아기, 곧 예수를 만나서 그에게 예물을 바쳤고, 곧 이어 꿈에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헤롯에게로 가는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을 통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후 동방박사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헤롯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나기로 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대대적인 유아학살로 인해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가 베들레헴과 인근 지역에서 퍼지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 본문을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독법을 가지고 차례로 살펴보지요. 우선 성경무오설에 입각하여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라면 이 본문을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름도 알 수 없고,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인지도 알 수 없는 동방박사야 그렇다 쳐도,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 즉 기원전 73년경에 유대 남쪽의 이두매 지역에서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인으로 출생하여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로마제국 황제로부터 팔레스타인 전지역을 통치하는 왕으로 임명된, 자신의 후계자들 중 그 누구도 얻지 못한 ‘대왕’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았던 헤로데 1세는 성서뿐만 아니라 요세푸스의 역사서에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니 사실은 성서보다 더욱 소상하게 그 행적이 역사에 남겨진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본문은 얼핏 보기에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독법에 따르자면 이 이야기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자마자 역사적‧신학적‧윤리적 문제들이 차례로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는 역사적 문제입니다. 헤롯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살펴보려 할 경우, 제일 먼저 과연 헤롯이 정말 이러한 학살을 벌였는가를 마태복음의 본문 외에 다른 텍스트들에서 찾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권의 공관복음 가운데 예수 탄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뿐인데, 일단 누가복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성서보다 헤롯에 대해 더 많은 기록을 남긴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7권, 75년경 완성)나 『유대 고대사』(20권, 93/4년경 완성) 등에선 이런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요세푸스는 헤롯의 재위 말년을 그의 잔혹한 행위를 중심으로 해서 철저하게 기록했는데, 베들레헴에서 아기들을 살육한 사건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유아 출생률과 사망률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베들레헴 같은 촌락들의 인구를 1,000명 정도로 가정할 경우 살해된 아기는 20명 이내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8킬로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지역”에 팔레스타인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까지 포함시킨다면 학살당한 아기의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 이 정도의 거대한 학살이 실행되려면 상당히 체계적인 행정력과 훈련된 군사력이 필요할 것이며, 만일 정말로 실행되었다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까지 수시로 드나드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당대의 유대인들 중 그 누구도 이 사건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학살당한 유아들의 숫자가 적어도 수십 명에 이른다면, 그 부모와 가족들은 백 명은 족히 넘을 것이고, 따라서 이토록 거대한 학살 사건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소문이 퍼졌을 것이 확실합니다. 어쩌면 소문이 문제가 아니라 베들레헴은 유다의 전설적인 왕 다윗의 고향이자 예언자 미가가 메시아가 나올 땅이라고 예언했던 장소로서, 마태복음도 정확히 그러한 메시아 대망사상에 입각하여 ‘나사렛 예수’를 베들레헴 출생으로 기록할 만큼 유대인들이 중요시했으며, 실제로 예루살렘과 더불어 유다지파 다윗 왕가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던 도시입니다. 가뜩이나 유대인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헤롯이 유대 민족주의의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면 대규모 반란에 직면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요세푸스 역시 그 사건을 절대 모를 리가 없습니다. 더욱이 요세푸스는 헤롯을 최대한 매도하기 위한 의도로 실제보다 훨씬 혐오스럽게 보이도록 그의 말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시골 마을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았고, 때로는 마을과 촌락을 돌아다니면서 대량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하스몬 왕조의 안티고누스와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둘러싼 전쟁을 벌일 때는 상대의 지역을 공략하여 다섯 개의 소도시를 파괴했고 그 거주민 2천명을 살해했으며 그들의 집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는 대제사장 히르카누스부터 자기 아내 미리암과 그의 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가 자신보다 백성들의 지지를 더 얻는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했던 잔혹한 폭군입니다(『유대 고대사』, 제16권 11장 7절). 죽기 직전엔 자신의 첫 아내 도리스가 낳은 아들 안티파스가 왕위를 노린다고 의심하며 사형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여동생 살로메와 남편 알렉사스를 불러, 자신의 사망 소식이 들리면 전국 각지에 불러 모아 경기장에 가둬놓은 유대인 유력인사들을 죽이라는 충격적인 명령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같은 책, 제17권 6장 5절, #175-9). 물론 유언의 집행자였던 살로메와 알렉사스가 헤롯의 명령을 거슬러 경기장에 갇혀 있던 이들을 풀어주었기에 실제로 참극이 벌어지진 않았다고 합니다(같은 책, 제17권 8장 2절, #193). 그러나 어쨌든 요세푸스가 보기에 헤롯은 불경건함은 기본이고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면 친족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독재자였음에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앞서 설명한 대로 유아학살 사건의 규모와 심각성을 인정한다면, 요세푸스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고, 나아가 헤롯의 말년을 최대한 잔혹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했던 요세푸스라면 자신의 목적에 너무나 잘 부합하는 저 유아학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으니 마태복음의 기록은 역사적 진위를 의심받게 됩니다.

둘째로, 사건 자체의 역사적 진위 여부를 떠나서 유아들의 관점에서 볼 때도 심각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바로 유아들의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만일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수를 제외한 그 수십 명의 유아들이 도대체 왜 죽어야 했으며, 그들의 불행은 누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가 자신이 지은 그 유명한 극시 〈대심문관〉을 아우 알료샤 카라마조프에게 들려주기 전에 먼저 꺼낸 이야기도 바로 그런 아이들의 고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알료샤와 나눈 신에 관한 긴 대화 끝에 자신이 내린 최후의 결론으로 단순한 무신론을 넘어선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반(反)신론을 개진합니다.

“나는 최후의 결론으로서는 이 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이 점은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신이 창조한 세계를, 신의 세계라는 것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야.”(『카라마조프네 형제들』 1, 408)

그리고 “무엇 때문에 형님이 ‘이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겠죠?”라는 알료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대심문관’ 바로 앞의 ‘반역’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장에서 제시됩니다. 이반이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서도 정작 신이 만든 이 세계, 그의 섭리와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도무지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을 당하며 죽어간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 일반의 고통이 아니라 특별히 당시 세계에서 아무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데 집중합니다. 강도에게 몰살당하는 아이들,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공중에 던져올려 졌다가 총검으로 받아진 젖먹이 아기, 부모에게 죽을 때까지 매질당하는 아이, 엄동설한에 밤새도록 변소에 갇혀 울부짖던 아이, 심지어는 주인의 개를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발가벗겨져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개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아이까지 도스토옙스키가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토대로 집필한 대목이 쉴 새 없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반의 요점은 명쾌합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이 땅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당시, 러시아 정교회가 견지하던 신학적 논리로야 얼마든지 간단히 답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죽은 후, 그 고통에 합당한 영생을 보장받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이반은 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가 보기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막연한 영생의 가능성보다 자신들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아이들의 눈물과 그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훨씬 더 고려할만한 가치 있는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고통 받는 이유를 몰랐던 아이들이 종말의 날에 속죄의 구원을 얻는다 하더라도 왜 그리고 어떻게 속죄 받았는지 이해할 도리가 없는데 속죄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저는 청년들 몇 사람과 함께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도 그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반 카라마조프의 입을 빌려 증언했던 바, 1880년대 제정 러시아와 유럽에서 어린 아이들이 겪고 있었던 비참한 현실이 1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지구 도처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영화는 생생히 보여줍니다.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 영화 촬영 당시까지도 실제 난민이자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동명의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자인은 신분증도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자신의 정확한 나이조차 모르며, 학교는커녕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면서 부모의 학대 속에서 가짜 처방전으로 구한 약을 팔기 위해 거리를 떠도는 아이입니다. 영화는 그 아이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을 낳은 부모를 법정에 피고인으로 세우게 되는지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자인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여동생 사하르가 열한 살의 나이로 건물주의 부인으로 팔려갔다가 결국 우려했던 일을 당하고 난 후에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왔던 자인은 끝내 무너집니다. 기회가 되시면 영화를 꼭 보셨으면 합니다. 그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뜻과 무관하게 날 때부터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가난과 굶주림과 고된 노동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차마 죽을 수 없어서 사는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1880년 소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처럼, 나딘 라바키의 2019년 영화 <가버나움> 역시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위하여,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요구되는 아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자,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만일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그 아이들의 고통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렇게 아무 죄 없는 아이들 수십 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메시아가 정말 와야만 했던 것일까요? 메시아를 만나서 그를 믿고 따를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조차 이미 상실해버린 그 아이들의 운명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독해를 지지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질문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문자주의적인 독해를 그대로 따를 경우 예수 자신의 자아정체성에 관해서도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록 예수는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에 멀리 떨어진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성장했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태어나던 시기에 있었던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에 일어났던 학살 사건에 대해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복음서의 그 지혜롭고 박식한 예수님이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요.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 불경스러운 질문을 던져 봅시다. 과연 자신이 어릴 적에 자기 또래의 친구들 수십 명이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비슷한 시기에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자신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을 성장 과정에서 알았다면, 과연 그 아이가 멀쩡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참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런 떼죽음 속에 친구들을 모두 잃은 한 아이가 방황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긴 무리일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처럼 말 그대로 자신 때문에, 그리고 자기 하나만 남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예수가 아무리 복음을 선포하고 기적을 행하면서 이 땅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시위하는 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었다 하더라도, 예수로 인해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이 보기에, 예수운동을 통해서조차도 자기 자식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에서 그는 결코 구원자로 인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 자신도 그런 이들과 마주하는 한에서 스스로를 구원자로 여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 때문에 죽어간 이들의 고통을 내가 해결할 수 없는데 내가 무슨 메시아이고 구세주란 말인가, 이런 자괴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각에선 예수가 행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 결국엔 예수 자신 때문에 죽어나간 이들, 예수 자신만 남기고 억울하게 몰살당한 그 유아들과 부모들을 향해 예수가 평생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도 같은 부채의식/죄의식을 짊어지고 살다가 끝내는 자신도 그들을 따라 죽는 길을 택했다는 해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는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 빚을 그렇게 탕감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예수의 죽음을 부채/죄책과 공감/희생 간의 등가적인 교환논리(‘구원경제’)로 파악하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논리를 받아들이더라도, 예수만 피해자들에 공감/희생하는 것으로는 온전한 구원경제가 실현될 수 없다고 봅니다. 희생당한 유아들과 그 부모들에게 빚/죄를 지고 있는 사람은 예수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아들의 죽음에 일차적으로 책임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을 죽인 사람, 곧 헤롯과 그의 하수인들입니다. 헤롯 일당이 유아들과 그 부모들에게 가한 그 고통의 무게와 동일한 무게의 고통이 등가교환으로 헤롯 일당에게 가해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의 고통과 분노는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 예수를 포함하여 심지어 유아들의 부모들, 그리고 다른 유대인들 역시 유아들에게 똑같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헤롯이 벌이는 유아학살을 눈으로 보면서도 끝내 막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만 유아들에게 생존의 부채의식/죄의식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죄책/채무의 주체들 각각의 편에서 합당한 속죄/탕감이 공히 이루어지지 않은 한에서, 예수만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으로는 피해자들 입장에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아무리 높은 도덕의식과 책임감으로, 나아가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의식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구원의 길을 택했다 할지라도, 가해자인 헤롯이 아무런 단죄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 죽었고 심지어는 성대한 장례식까지 치러졌으며, 그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왕좌를 나눠서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이 학살을 직접 실행한 헤롯의 하수인들이 버젓이 살아있는 한에서, 무엇보다도 학살을 방관한 대다수 유대인들이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한에서, 그저 또 다른 의미의 희생자일 뿐인 예수 한 사람이 기꺼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해서 죽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리도 만무하고 부모들의 한(恨)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며, 그와 같은 비극이 이스라엘 땅에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예수를 여전히 증오했을지라도, 만일 유아들의 부모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정했다면 그에게 진정으로 바란 것은 헤롯 왕가를 무너뜨리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가 피해자들을 향한 자신의 채무/죗값을 치른 것도,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의 죗값을 ‘대신’ 치른 것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는 바로 그와 같은 죄와 벌의 악순환을 끊어버림으로써 우리를 구원한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죗값을 치르는 대신에 문자 그대로 그런 모든 죄와 벌 또는 부채와 탕감의 순환 논리를 사랑의 논리로 철저히 깨버린 분입니다. 얼핏 정의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원한과 복수의 악순환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법적/윤리적 응보의 연쇄 고리를 끊어냈기에 예수는 유일무이한 메시아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복음은 과거의 부채를 지불 정지시키는 것, 우리를 과거의 행위들에 묶어놓는 끈들을 잘라내는 것, 과거를 청산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식”이지 보상의 논리, 교환의 논리, 채무 탕감의 논리, 응보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는 공감의 논리든 동일시의 논리든, 그 어떤 식으로도 예수의 죽음을 피해자들에 대한 부채감/죄책감을 동반한 보상의 행위로 해석하는 데 반대합니다. 예수는 그런 논리를 말소시켰던 분이며, 사랑을 통해 급진적으로 그런 모든 죄와 벌의 상징체계를 ‘해체’하신 분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의와 책임의 도덕적 가면을 쓰고 죄와 벌의 법적 논리로 무장한 채 부채와 탕감의 윤리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그 어떤 종류의 속죄의 신학도 우리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간주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죄와 벌의 논리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강고하게 지속되는 이 세계에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단절이 발생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역사는 예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예수가 삶과 죽음으로 증명한 복음의 요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심으로써,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4-5). 그러므로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어떤 결정적인 단절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교와 달리, 기독교에선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일어나야 할 모든 사건들은 이미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일어났고, 예수 말고 우리가 기다려야 할 새로운 메시아는 없으며, 우리는 구원의 사건, 즉 메시아의 도래를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되고, 메시아는 이미 도래했으며, 메시아 사건은 이미 일어났으므로 우리는 이미 일어난 예수사건의 지속적인 여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그 깨달음,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전체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이처럼 유아학살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역사적‧신학적‧윤리적 문제들에 차례로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근대적인 성서학의 해결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요세푸스의 저술들과의 비교를 통해, 역사비평적 독법은 동방박사의 방문, 애굽으로의 도피, 베들레헴의 대량학살 사건으로 구성된 마태복음의 유아기 설화는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로서 역사성이 전혀 없는 허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태복음을 요세푸스와 교차검증하면서 애초부터 그것과 일치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백번양보해서 헤롯이 죽으면서 내린 대량학살 명령이 마태복음의 이야기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계획으로만 끝났을 뿐 실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유아학살 이야기는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내리는 것입니다. 더욱이 별이 나타나 왕의 탄생을 알려주는 이야기, 갓 태어난 왕이 박해를 당하는 이야기,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선물을 바치는 이야기는 다른 종교의 신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근대 이후의 대다수의 성서학자들은 마태복음 2장의 배후에서 역사적으로 실증 가능한 요소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해왔습니다. 따라서 이제 마태복음의 유아학살 이야기는 종교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창작된 ‘신화’ 내지는 ‘전설’이고, 요세푸스의 저술은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 ‘역사’이자 ‘진실’로 각각 나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유아학살 이야기의 역사적 진실이 요세푸스의 저작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비평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요세푸스의 텍스트 역시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미묘하게 다른 서술을 보여줍니다. 앞서 헤롯이 유언으로 남겼던 학살 명령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요세푸스는 실패로 끝난 그 명령과 같은 것 같지만 뭔가 분명히 다른 형태의 학살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 있어서도 아무 잘못도 없는 이들을 각 집에 한 명씩 무조건 처형시키라고 명령하여 온 백성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울부짖도록 만들어 자기 장례식에 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는 등 그의 성격의 괴이한 한 단면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 주었다.”(같은 책, 17권 6장, 6절, #181)

앞서 말씀드린 학살 유언이 경기장에 전국각지의 유대인 저명인사들을 가둬놓고 한꺼번에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었던 반면에, 지금 소개해드린 명령은 각 집에 한 명씩 무조건 처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유력인사들을 불러 모아서 경기장에 감금한 후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온 백성들의 집에서 한 명씩 닥치는 대로 처형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실행되었는지 여부를 요세푸스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명령이 같은 것이라 보기엔 그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고, 따라서 요세푸스 자료 안에서도 헤롯의 최후에 일어난 학살 명령의 진위 여부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세푸스 자료의 비일관성은 자연스럽게 마태복음이 전하는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를 무조건 허구로 단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마태복음의 이야기의 사실성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요세푸스의 자료가 헤롯의 최후 학살 명령에 대해 일관성이 없는 서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학살이 실행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복음서와 역사적 사료를 대조하면서 어떤 사건의 역사성을 교차 검증하는 역사비평식 독법을 철저히 밀어붙였을 때, 헤롯의 유아학살의 역사적 허구성이 확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이 더욱 묘연해지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헤롯이 이 명령을 내리고 죽은 것이 정확히 주전 4년인데요. 학자들은 바로 그 무렵에, 그러니까 최대 2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예수가 먼저 태어났다고 추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요세푸스가 전하는 헤롯의 최후 학살 명령의 배경이 마태복음이 묘사하고 있는 베들레헴 유아학살 사건의 정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헤롯이 의도했던 상황과 동일하게, 마태복음은 자식을 위해서 애통해했던 구약성서의 라헬 이야기를 가져와서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베들레헴 학살 사건이 헤롯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다윗 왕가의 후손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벌어진 일이라는 마태복음의 설명 역시 요세푸스가 전하는 헤롯의 학살 명령의 배경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이 헤롯과 그의 후손들이 가진 왕권이 헤롯의 형제인 페로라스와 그의 아내와 그 후손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바리새인 중 유력한 용의자들 외에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신의 신하들을 처형시켰고, 자기 가족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의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요컨대, 역사비평적 독법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의 본문이 역사성이 없는 전혀 신화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역사비평을 철저하게 따를 경우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마태복음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복원될 수도 입증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그럴듯한 역사적 개연성을 가진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추정입니다. 우리는 역사비평적 독법의 극한에서, 역설적이게도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단순히 신화적‧종교적 상상력의 산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근대의 성서학은 마태복음 유아학살 사건의 진실이 요세푸스의 저술에 있다고 믿었지만, 역사비평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요세푸스조차도 진실을 명확히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진실은 그야말로 (마태와 요세푸스 모두의) 저 너머에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비평의 잠정적인 결론은 예수탄생 당시 헤롯의 유아학살은 명백한 역사적 허구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당한 역사적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러나 최종적인 진실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에 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제가 근대적인 역사비평식 성서독해의 전제 위에서, 단지 그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급진적인 성서읽기가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포스트-역사비평적 독법은 진실이 저 너머에 있다는 역사비평적 독법의 잠정적 결론을 정반대로 전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아학살과 같은 예수사건이라는 ‘본질’의 외재성(“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이 사실은 성서 본문이든 일반적인 사료든 고고학적 유물이든 그 어떤 텍스트들이 아니라, 바로 그 예수사건이라는 본질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예수사건이라는 내적인 ‘본질’이 이미 그 자체로 탈중심화되어 있다는 것으로, 따라서 그 무한히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본질은 사건 발생 이래로 계속해서 이어져온 사건에 대한 현재적 해석과 사후적 개입을 통해서 소급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유아학살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예수사건을 구성하는 모든 이야기들의 본질은 성서와 사료 저 너머에 미지의 것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응답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신앙적 행위를 통해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일부 급진적인 성서학자들은 복음서를 요세푸스의 저술들 같이 실증적인 역사기록을 목표로 단독의 역사가에 의해 집필된 역사적 사료로 보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렇다고 복음서를 고도의 신학적‧종교적인 함의를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예수전기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사건에 대한 여러 층위의 기억이 구술전승을 통해서 메시아공동체 안에서 연행과 채록을 반복한 끝에 완성된 집단적 텍스트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문맹률이 97%에 달했던 1세기 당시의 매체 환경에서, 복음서는 예수의 십자가처형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다양한 연행의 상황에서 여러 이야기꾼과 청중들 가운데서 말해지고 들려지고 쓰여지고 고쳐지고 다시 말해지고 들려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성된 구술연행적 사건의 과정이자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서의 조성 원리를 집단적 차원의 기억과 구전과 연행에서 찾는다는 것은 복음서에 담긴 이야기들의 본질적 의미나 역사적‧신학적 진실이란 역사비평적 독해의 성과 위에서 그 이야기들을 읽고 나누면서 예수사건에 도달하려는 모든 사후의 해석과 적용과 개입들을 통해 계속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3. 그들이 기다렸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다!

앞서 우리는 마태복음이 전하는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의 진실이 마태와 요세푸스 저 너머에 남겨져 있다는 역사비평적 독법의 결론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급진적 독법은 저 너머 어딘가에 진실이,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가, 사건의 본질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이루어지는 응답들 속에서 본질이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읽은 두 번째 본문은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가 가리키고 있는 저 너머의 어떤 진실에 대한 최초의 응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응답의 주체는 예수님입니다. 저는 누가복음의 이 본문이 어쩌면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의 본질이 신앙의 주체들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의 한 증거일 수 있다고 봅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지요.

마태복음의 유아살해 이야기가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듯이, 오늘 읽은 두 번째 본문 역시 누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 이 본문이 누가복음만의 특수한 자료인 이유는 23장 26절까지는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과 동일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지만, 27절에서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처형지로 끌고 가던 중에 시몬이라는 이름의 구레네 출신 사람을 만나게 되고, 예수를 대신하여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게 했다는 것까지는 누가복음도 마가 및 마태와 동일하게 묘사하지만, 그 뒤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뒤따랐다고 기술한다는 점에서 누가복음은 특별한 것입니다. 마가와 마태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가 예수님을 뒤따랐던 큰 무리들 가운데서도 일단의 여성들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여인들은 서서 구경하다가 예수님이 운명하시고 나서야 애도를 표했던 무리나 백성들과 달리, 처음부터 “그를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토록 애절하게 통곡했던 여인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23장 49절과 55절의 서술에 근거하여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여인들을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운동에 동참했던 막달라 마리아로 대표되는 여성 제자들이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 누가복음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뒤따라오던 여성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여기서 “예루살렘의 딸들”은 실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성들을 가리키기보다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기쁨이나 슬픔에 대한 신의 계시에서 국가나 도시를 나타내는 단어로 호칭하는 구약성서적 양식의 일환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예수님이 그 여성들에게 전하고 있는 예언은 실제로 이후에 유대-로마전쟁에서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상황, 그래서 예루살렘의 여성들이 겪게 될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에 관한 예언을 굳이 갈릴리에서 와서 갈릴리로 다시 돌아갈 여성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 여성들을 실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제 요점은 우리는 그 여성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나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 대조를 통해서나 이 여성들을 갈릴리의 여성 제자들과 무관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누가복음만의 이 특별한 서술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가와 마태의 평행본문과 비교할 때도 그렇고, 누가복음 내부의 서사 세계에서 볼 때조차도 너무나 ‘갑툭튀’ 같은 이 예루살렘 여성들의 정체를 확정지을 수 있는 분명한 단서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결국 이 본문 역시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해석적 개입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비평적 독법을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며 애통해하던 그 여성들의 정체에 관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관점을 뒤집어서 탈근대적 독법에 입각하여 애초부터 진실은 사후의 해석적 개입을 계속해서 재구성되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한히 열려 있는 진실에 하나의 해석적 상상으로 다가가 보려 합니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던 여인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부르면서, 그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본 적이 없는 가슴이 복되다.” 많은 학자들이 해석하듯이, 확실히 이는 약 40년 뒤인 유대-로마전쟁에서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겪게 될 상황에 관한 예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헤롯의 유아학살 당시에 갓난아기를 죽임당한 어머니들이 느꼈을 심정에 대한 회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친 김에, 저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마태복음 예수탄생 설화 가운데 등장하는 베들레헴과 그 인근지역에서 헤롯에 의해 갓 태어난 자식들이 죽임당하여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를 냈던, “자식들을 잃고 우는” 라헬에 비유되었던 그 여성들과 누가복음 이 본문의 “예루살렘의 딸들”이 모종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예수님 탄생 무렵에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그 인근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우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더욱이 그것이 마리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와 연관된 일인지도 알 수 없지만, 헤롯왕이 자신의 죽음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려 했고, 또한 그것이 실행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따라 오던 여인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며 그 여인들에게 마치 그녀들이 겪었던 심정을 묘사하는 것처럼 말씀하고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헤롯의 대량학살이라는 어떤 비밀스러운 사건에 사후적으로 개입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중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종일관 예루살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마가복음과 달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운동 초기부터 이미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 가운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에만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가르치시면서 각 성읍과 마을을 지나가셨다”(17:11)고 나오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에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21:37) “모든 백성이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성전으로 모여들었다”(21:38)고 전합니다.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던 대제사자들과 무리들에 따르자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며 가르치면서, 백성을 선동”했습니다(23:5). 이렇듯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달리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도 다수 존재했을 가능성을 도처에서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불릴 수 있을만한 예루살렘이나 그 인근 지역에서 거주하는 여성 제자들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여성들 가운데 헤롯왕이 죽을 무렵, 그러니까 예수님이 태어날 즈음에 일어난 학살사건을 몸소 겪은 여성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확히 언제 그 여성들이 예수님과 조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품고 있었던 원한과 분노를 극복하는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가 마태복음에는 신화의 색채를 띤 전승으로 남아 있지만, 다른 복음서에서 그리고 성서 바깥의 역사 기록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연유도 저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 헤롯이 죽으면서 내린 대량학살 명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서 오늘의 두 본문도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대량학살 명령에 관한 요세푸스의 두 가지 언급 중에서 좀 더 뒤에 나오지만 진짜 실행되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고 있는 명령, 즉 “각 집에 한 명씩 무조건 처형하라는 명령”에 무게를 둘 경우 우리는 예수와 관계없이 정말로 유대 지역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졌고, 그래서 그 피해자들 가운데 “예루살렘의 딸들”로 불리는 일부 여성들이 훗날 예수의 제자나 지지자가 되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마태복음 앞에 놓는 것인데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예수와 무관한 대량학살이 예수 때문에 일어난 대량학살로 예수운동의 지지자들에겐 기억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와 무관하게 일어났던 사건을 예수와 관련된 사건으로 기억했고, 그러한 기억이 담긴 전승을 마태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는 것은 자신들이 겪은 그 무의미한 고통을 예수 탓으로 돌린 것이 아니라, 메시아적 구원사 안에서 메시아의 탄생과 더불어 일어난 ‘고난(苦難)’으로 의미화해 나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라 성찰적 극복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과거들이 무효화되고 죄와 벌, 원한과 복수의 악순환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 쪽으로 그들이 믿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한편, 살로메와 알렉사스가 헤롯이 죽기 직전에 경기장에 갇혔던 사람들을 몰래 풀어 주었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에 무게를 둘 경우 대량학살 사건은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을 마태복음 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뒤에 둠으로써 우리는 마태복음의 유아학살 이야기의 기억사적 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역사책에서 그것이 지워져 버렸다는 좀 더 파격적인 상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구전으로 전달되어 복음서에 기록된, 혹은 마태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진 여성들의 기억 속에선 과거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지만, 이후에 그들이 예수를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서 복음의 논리를 통해 소급적으로 그것을 무효화시켰다고, 아예 역사책 속에서 그것을 ‘지워버렸던’ 것으로 상상해보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서 헤롯에 의해 자식을 잃은 여성들이 그 사건을 메시아의 탄생과 관련지음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했거나, 아니면 정말로 시간의 뒤틀림과도 같은 ‘기적’이 일어나서 그런 비극적 사건 자체가 역사에서 깨끗이 지워져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시간의 구원 가능성, 소급적 반전 가능성에 내기를 거는 것이 오늘날 신학에서 너무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가 복음을 통해 그들에게 다가갔고, 그들이 예수가 전하는 복음,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삶과 세계에 초래한 결정적인 ‘단절’을 깨닫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유아학살을 포함하여 예수사건이라는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사후적인 개입과 만남을 통해 그 진리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완성되어 왔고, 조금씩 그 진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왔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소급적/사후적인 본질의 재구성을 통해서 예수사건과 연루되어 고통을 당했던 과거 세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묶어놓는 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예수와 “예루살렘의 딸들”의 마지막 만남은 그렇게 죄가 용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으로 소급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말소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가해자를 그리고 관련된 책임자들을 무조건 용서했거나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체념 속에 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원한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단절의 가능성을 복음 안에서 찾아 나갔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그냥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속 세대가 과거 세대의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발터 벤야민이라는 유대계 독일 비평가‧철학자의 글에서 차용했습니다. 벤야민은 그의 최후 유작이 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글을 스무 개의 테제 형태로 남겼는데요. 그 글의 제2번 테제에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는 그것을 구원으로 지시하는 어떤 은밀한 지침(指針)을 지니고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 예전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 속에는 이제는 침묵해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 만약 그렇다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와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고, 과거는 이 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요구는 값싸게 처리해버릴 수 없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벤야민 선집 5), 331~332)

벤야민은 여기서 메시아적 구원사건을 과거의 희생자들을 현재 세대에 속한 이들이 역사적으로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 즉 회억(回憶)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회억으로 옮겨진 벤야민의 용어 ‘Eingedenken’은 ‘기억하다, 명심하다, 잊지 않다’를 뜻하는 독일어 동사 eingedenk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회상과 애도적 기억을 모두 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연구자들에 의해 ‘회억’이라는 신조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벤야민에게 신학이란 곧 메시아적 구원이자, 그것을 가능케 하는 ‘회억’의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회억은 미완결된 것(행복)을 완결된 것으로, 완결된 것(고통)을 미완결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신학이다”(『아케이드 프로젝트 I-2』, 1073[N 8, 1]).

벤야민에게 회억이란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끝난 듯이 보이는 과거 희생자들의 고통이 ‘미종결된 것’으로 바뀔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는 현재 고통스럽고 비참한 조건에 놓여 있는 우리가 이 세계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선, 그러한 조건이 만들어진 과거를 우리가 회상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보다 앞서서 지배와 억압의 조건들에 맞서 싸우다가 패배당한 세대의 고통 및 비탄을 지금 여기의 세대가 복구하고 과거의 세대가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거나 도달하지 못했던 목표를 현재의 세대가 완수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의 그들이 쓰러져 가면서 미래에 자신들의 목표를 완수해주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과거 세대의 입장에서, 오늘의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대량학살 사건에서 죽어갔던 이들의 편에서 기다려졌던 사람으로 “예루살렘의 딸들”과 만났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앞선 세대의 사람들에게 “기다려졌던 사람들”로 그들 앞에 서야할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회억이 과거에 그들이 시도했지만 끝내 목표를 완수하지 못한 실패, 더 나아가 그들이 행동하지 못해서 역사 속에서 잊혀져버린 패배, 이웃들과의 연대를 방해하는 권력을 파괴하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그런 적폐들까지도 소급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혁명적 개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그들이 이루지 못한 해방은 현재의 우리를 행위를 통해 소급적으로 완성되며, 그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순간, 우리의 현재를 조건짓고 있는 과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기에 우리의 현재도 미래도 바뀔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사건의 본질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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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