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가을 들녘은 풍요롭건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8-31 21:26
조회
1517
* <주간기독교> 다림줄 50번째 원고입니다(140901).


가을 들녘은 풍요롭건만


선선한 바람이 이는 아침 아우내 뚝방 길을 걷자니 푸른빛에서 노란빛으로 바뀌어가는 들녘이 더 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 들녘을 앞에 둔 동네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다.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는 초가을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수 십년 사이 추수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그래서 새삼 그 풍경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고 넉넉해진다. 그러나 그 평화롭고 넉넉한 풍경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정부는 얼마 전 쌀 시장 전면 개방화를 선언했다. 요체는 이렇다. 그간 세계무역기구 체제하에서 쌀 시장은 제한적인 보호조치를 받고 있었다. 일정 분량 의무적으로 쌀 수입을 허용하는 대신 전면적 개방화를 유예 받아왔다. 그런데 그 유예기간이 올해로 종료된다. 결국 유예기간을 연장하거나 전면 개방화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의 방침은 개방화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전면 개방화에도 일정한 보호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산 쌀 가격과 외국산 쌀 가격의 차이를 반영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조건이다. 정부는 유예기간을 연장하면서 의무수입 물량을 높이는 것보다 전면 개방하고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이 국내 쌀 농업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라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농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매우 공격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시행하고 있는 중이고, 심지어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자유무역협정의 요체는 관세를 철폐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농산물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보호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관세철폐를 요체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에서 언제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게다가 역대로 정부의 농업정책이 성공한 바 없고, 갈수록 농촌이 피폐화된 현실에 비춰보면 결코 기우가 아니다. 쌀 시장 전면 개방화는 이미 피폐해진 농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죽하면 추수를 앞두고 논을 갈아엎겠는가?


호주의 역사학자 개번 매코맥은 허울뿐인 풍요를 추구하는 산업 체제를 비판하며 이런 말을 한다. “... 경제학자들이 식량과 같은 상품의 시장가격과 그 진정한 생태학적ㆍ사회학적인 가격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식당과 호텔이 멀리 떨어진 지역의 생태계나 주민들에 대한 수탈에 의존하지 않는 메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문제들에 대한 대처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전망이 밝아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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