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27] 내게로 오라(90~92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4-03 21:36
조회
1383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4월 3일 / 최형묵 목사


제27강 내게로 오라(90~92절)


9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로 오십시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다스림]은 가볍습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쉼을 찾을 것입니다.”

91 그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말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늘과 땅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도 여러분 중에 있는 이를 알아보지 못하니, 지금 이 순간도 분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9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십시오. 그러면 찾을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나는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가 대답하려 하는데, 여러분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90. (* 유사병행구: 마태 11:28~30)

* 내게로 오라: 유사병행구가 마태복음에 등장하지만, 많은 점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음. 우선 초청대상이 다름. 마태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지만 도마에서는 누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것으로 보편적 인간실존을 함축. 초대에 응한 결과를 가져오는 주체가 다름. 마태에서는 ‘쉬게 할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도마에서는 ‘쉼을 찾을 것’이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단순한 문장형태의 차이를 넘어 마태와 도마의 신학적 입장 차이를 함축. 믿음의 대상을 추구하는 신학과 스스로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가는 태도를 역설하는 신학의 차이. 또한 멍에와 짐[다스림]에 관한 마태의 부연설명과 도마의 간결한 언명의 차이. 이것은 발화자 곧 예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과 예수를 따르는 길에서 누리는 삶의 실제를 강조하는 것의 차이를 함축. 여기서 ‘멍에’와 ‘짐’[다스림]은 보편적 인간실존을 함축. 멍에는 소가 일할 때 매는 도구로서, 상징적 의미로는 어떤 권위에 복속하는 것을 뜻함. ‘짐’ 또는 ‘다스림’으로 번역된 말은 ‘멍에’의 상징적 의미에 곧바로 상응. 땅 위에서 몸을 지니고 어딘가에 귀속되어 물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존. “인간에게 몸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노자). ‘쉼’은 궁극적으로 그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 예수는 멍에와 짐을 벗어버릴 수 있다고 선언하지 않음. 가벼운 멍에와 짐을 지고 쉼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함.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거운 굴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즐겁게 향유되는 상태. 자신을 위한 진정한 쉼. 멍에가 일상적 삶의 조건이라면 그것에 매이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삶. 그 멍에가 상징적인 의미로서 어떤 권위를 말한다면 자신의 삶을 속박하는 어떤 외적 권위가 아니라 거꾸로 자신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권위를 말함. 안식일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안식일, 종교를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종교를 말함.


91. (* 유사병행구: 마태 16:1~3, 누가 12:54~56)

* 당신은 누구신지: 역시 다른 복음서에 유사병행구가 등장하지만 차이가 나는 구절. 우선 청중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종말론적 맥락이 제거된 점이 다름. 흥미롭게도 도마복음에서 ‘믿음’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유일한 구절.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통상적인 교리적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에 대한 신뢰를 뜻함. 예수 앞에 선 이들은 예수를 믿기 위해 정체를 밝혀 줄 것을 요구하지만, 예수는 말로써 스스로를 밝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서 있는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일갈. 하늘과 땅의 기상을 알아본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헤아릴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말함. 그런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지금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선 존재를 알아차려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을 질타하고 있음. 구구한 언어를 넘어선 직관과 깨달음. 지금 눈앞에 서있는 이를 알아본다는 것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그를 알아볼 만한 내면적 성찰에 이르렀을 때 가능. 자신들 가운데 살아 있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92. (* 유사병행구: 마태 7:7, 누가 11:9)

* 찾지 않는 어리석음, 의심을 폐기한 종교: 다른 복음서에 유사병행구가 등장하지만 아주 딴판. 다른 병행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말한다면 도마의 이 구절은 찾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의 노력을 말함. 구하면 주시고, 그 다음에 구하는 이가 발견한다는 다른 병행구와 달리 이 구절은 구하면 곧바로 발견한다고 말함. 도마의 일관된 관점. 흔히 교회에서 통용되는 속물적 신앙을 정당화하는 구절로 오용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 이 구절은 예수를 따르는 도반들의 성장과정을 반영. 처음에는 물음이 많았으나 그 물음들이 하잘것없는 것들이어 대답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성장하여 답을 하면 알아들을 만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의문을 저버리고 자명한 듯이 여기는 도반들의 상태. 끊임없는 의심과 물음, 찾음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찾지 않는 자만과 어리석음. “물음이 대답을 결정한다.”(안병무). 의심 없는 믿음, 물음 없는 종교의 폐해성. 도마복음은 이 대목에서 잘못된 믿음의 현실을 질타하며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예수의 말씀을 부각시키고 있음.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그 문제의식과 직결되고 있음.    


* 다음 제28강(4/10) 주제는 “찾는 자의 태도”(93~9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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