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30] 하나님 어머니(99~101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4-26 10:30
조회
2357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4월 24일 / 최형묵 목사



제30강 하나님 어머니(99~101절)


99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과 어머님이 밖에 서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들이요 내 어머니입니다. 그들이 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100 그들이 예수께 금전 한 닢을 보이고 말했습니다. “황제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세금을 요구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리고, 나의 것은 나에게 주십시오.”

10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하는 것처럼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하는 것처럼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나에게 [죽음을 주었고]{거짓을 주었지만}, 나의 참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99. (* 유사병행구: 마가 3:31~35, 마태 12:46~50, 누가 8:19~21)

*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 아마도 예수운동의 실제적 정황을 드러내 주는 본문일 것. 비범한 예수의 언행에 그 어머니와 형제들은 조바심을 갖고 대했을 것. 밖에 서 있다는 말은 그 정황을 드러냄. 예수는 이에 대해 모진 발언으로 기존의 가족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족을 말함. 그 새로운 가족이야말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선포함. 새로운 가족의 유대를 이루는 근거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말함. 그렇다면 예수가 부정한 가족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혈연적 유대관계로 얽힌 가족관계. 그 혈연적 유대관계를 넘어 새로운 의지로 결합하는 관계를 지향. 다른 병행구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음. 엉뚱한 물음. 예수는 과연 혈연적 가족관계를 어떻게 체험했을까? 본문에 따르면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가족관계 자체를 송두리채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그렇게 부정했다면 ‘아버지’라고 했을까? 혈연적이고 인습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지향한 것. ‘출가공동체’.


100. (* 유사병행구: 마가 12:13~17, 마태 22:15~22, 누가 20:19~26)

* 황제의 것, 하나님의 것, 그리고 나의 것: 공관복음서의 유사병행구들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맥락이 유사하고, 따라서 그 의미도 비교적 분명함. 물론 공관복음서의 병행구들에 대한 해석도 간단하지는 않고,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 상황 가운데서 그 논쟁에 휘말리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의중을 포기하지도 않은 현명한 답변으로 간주됨. 곧 로마당국에 빌미를 주지도 않고, 유대주의자들을 거스르지도 않은 현답. 나아가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말함으로써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근본적 인식의 태도 또한 피력한 것으로 간주됨.

그런데 다른 공관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나의 것’에 대한 언급으로, 이 구절은 매우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 되어버림. 공관복음서의 대립구도를 그대로 전제하는 가운데 ‘나의 것’이 뜻하는 바를 해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나타내는 차원을 한층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음. 곧 ‘내가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나의 길을 따르라’는 정도의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것.

그러나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각각 로마주의와 유대주의를 나타내고, 따라서 부정해야 할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라 본다면, 이 구절의 초점은 전적으로 ‘나의 것’에 있음. ‘하나님의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유대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도마복음에서 ‘하나님’이 줄곧 ‘아버지’로 표현되고 있는데 반해 이 대목에서 낯설게 등장하는 데 있음. 여기서 로마주의는 당시 금전이 나타내는 바, 곧 황제의 초상과 함께 ‘티베리우스 가이사, 하나님이 되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신성한 황제’(앞면), ‘최고의 제사장’(뒷면)이라는 문구가 나타내듯 신성화된 로마제국 황제의 권력, 로마제국의 질서를 말함. 유대주의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제의적 질서를 나타냄. 이렇게 보면 둘을 모두 원주인에게 돌려주라는 것은 그로부터 해방되라는 것을 말함. 결국 ‘나의 것’은 그것들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음. 그렇다면 본문은 딜레마적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따르는 길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매우 급진적이고 전혀 새로운 차원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음.  


101.

* 하나님 어머니: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도마복음 고유한 말씀. 다만 도마복음 55절과 유사하고, 바로 앞의 99절과 그 의미가 통하는 구절. 이기적 자아의 온상으로서 혈연적 가족관계를 부정했듯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정하고 있음. 곧바로 이어지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듭난 자아, 새로운 가족관계를 이루는 근거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함. 절대적 신성. 다음 구절이 흥미로움. 죽음을 준 어머니와 생명을 준 어머니. 혈육상의 어머니와 영적인 어머니를 말하는 것으로, 절대적 신성을 ‘아버지’로만 말하지 않고 ‘어머니’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예수는 신성에 대해서도 양성을 인정하고 있음. 초기기독교에서도 성령은 여성으로 인식되었음.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라틴어가 공식언어로 사용되면서 남성(Spiritus Sanctus)으로 통용되기 시작함.


* 다음 제31강(5/1) 주제는 “소 여물통에 누워 있는 개”(102~10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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