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09] 다른 복음은 없다 - 갈라디아서 1:1~10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11-21 11:37
조회
959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11월 20일 / 최형묵 목사



제9강 다른 복음은 없다 - 갈라디아서 1:1~10



1. 갈라디아서의 서문 - 1:1~5


이 앞부분은 서문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표제와 덧붙이는 말, 그리고 인사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서신의 서문이다. 당연히 발신자와 수신자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일행을 대표하여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1~2절에서는 발신자의 입장과 수신자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발신자 바울은 우선 그 일행을 대표해서 편지를 보내고 있다. 바울은 스스로의 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근거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로마세계 및 유대세계에서 철학자들이나 예언자들이 신의 뜻에 근거하여 진실을 말한다고 역설하는 일반적 형식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역사적 예수와 만남의 경험이 없는 바울에게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부활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수신자는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이다. 이것은 인접한 지역 내에서 서로 교통하는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의 상황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어지는 인사와 덧붙이는 말은 간략하지만 신학적 경향을 드러내 주고 있다. 첫 번째 은혜와 평화를 비는 바울의 인사는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구이다. 유대인들은 통상 평화를 기원하지만, 바울은 이와 더불어 은혜를 말한다. 덧붙이는 말에서 당시의 간결한 그리스도론의 요체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을 속죄의 자기희생으로 이해한 옛 그리스도론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한 죄를 전통적인 유대교의 율법 관념에 비춰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악한 세대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 실존을 말한다.

서문의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서신의 마지막 구절로 어울릴 수도 있지만, 서문의 인사말을 분명히 매듭짓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다른 복음은 없다 - 1:7~10


여기서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가 드러나 있다. 바울은 여기서 매우 격분해서 선동적인 언어로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 상황을 꼬집는다. 점차 그 상황이 확연이 드러나겠지만, 처음 언급된 이 대목의 내용으로만 보더라도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인 복음에서 그렇게 빨리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버린 갈라디아 교회들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아예 ‘다른 복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갈라디아 교회들이 미혹된 ‘다른 복음’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복음’이라란 것이 무엇일까? 2장 7절에 ‘할례 받은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과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이 구별되어 있고, 이것은 선교대상의 구분을 나타내고 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과 그 선교대상의 구분과 역할의 분담은 피차간에 양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지금 이 대목에서 아예 ‘다른 복음’의 존재 의의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이 주장은 단지 선교대상의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성격 자체를 왜곡시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불러주신’ 그 진실에 반하는 사태가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의 그 동요는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사태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며, 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자신들을 포함하여, 설령 천사라 할지라도 복음을 왜곡시키면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고, 이어 다시 한 번 그 의의를 강조하여 왜곡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이 저주의 선언은 서신의 결론부(6:16)에 나오는 축복과 대비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서신에 담긴 이 저주와 축복의 선언은 이 서신이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신성한 법’의 전승을 가지고 있는 고대 근동 및 그리스-로마세계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주장은, 그것이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어법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바울만의 고유한 어법은 아니다. 그리스-로마세계의 철학자들, 성서의 예언자들 또한 자신의 주장의 진정성을 말할 때 자주 사용한 어법이다. 그것은 인간 일반을 아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대비되는 인간의 마음은, 통상 사기, 중상, 마술, 아첨 등을 나타낸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다. 그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은 난제이고, 많은 경우 그것은 독단을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진리 주장의 정당성 여부가 전혀 검증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지, 어떤 효과를 겨냥하고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진실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격분하고 있는지, 그렇게 격분하는 가운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확신을 단순한 독단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주장의 진의는 본론에 들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전체 2
  • 2013-11-14 14:56
    놀라운 정리 실력! 다만 정리 내용중 '로마가 헬라어 사용'했다는 것은 '로마세계'에서 헬라어가 통용되었다는 것으로 정정 필요할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의 공식언어로 라틴어가 있었으니까...
    rn* 각주와 그림까지 붙은 이 글은 우선 이곳에 올려진 상태로 두었다가, 성서연구란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처리하겠습니다.

  • 2013-11-14 20:00
    수정 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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