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10] 바울이 사도가 된 내력 - 갈라디아서 1:11~24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11-27 22:58
조회
942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11월 27일 / 최형묵 목사


제10강 바울이 사도가 된 내력 - 갈라디아서 1:11~24


1. 바울의 소명 또는 전향 - 1:11~17


바울은 앞에서 짧은 인사와 편지를 쓰게 된 배경으로서 문제의 상황에 대해 언급한 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말하고자 하는 문제에 곧바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입장의 진실성을 설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지 자신의 소명 경험과 입장을 밝힌다. 1:11~2:14까지 이어지는 이 내용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권장되는 수사학에 따라 매우 간결 명료하게 작성되었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더 상세한 이야기가 펼쳐졌더라면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 박해자에서 그리스도 선포자로 전향하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전향의 계기에 관한 사실적 내용은 매우 절제된 형태로만 언급되어 있다. 물론 사도행전이 이에 관해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전하고 있고(9:1~19; 22:4~6; 26:9~18), 대체로 바울의 전향에 대한 이해는 그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후대에 기록되었고, 그 사건에 관한 기록이 바울 자신이 기록한 서신서에서의 내용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일차적으로 바울이 직접 말하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그 사건의 전모에 관해 예측해볼 수밖에 없다.

바울은 우선 1:1에서 말했던 내용을 다시 환기하는 형태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한다. 이것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로마세계와 유대세계에서 자신의 주장의 진실성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 수사법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그렇게  일반적 성격을 띤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이라는 진술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의 가르침을 통해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통상 다른 사도들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와 삶을 공유한 경험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그 사도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사실에 어떤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 그러한 경험이 없는 까닭에 도대체 무엇이 그 계기가 되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교회에서 바울의 권위가 이미 인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된 사도행전은 그 계기가 되는 사건을 객관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바울이 스스로의 입장을 밝혀야 했던 지금의 상황에서는 스스로 그 계기를 해명해야 했다. 바울은 지금 그 계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사건, 곧 계시의 사건으로 해명하고 있다.

13절 이하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 해명을 부연하여 보충 설명하는 것에 해당한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전력을 언급한다.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유대인으로서 교회를 박해하고 아주 진멸하려고 했던 전력이다. 이 전력에 대한 언급은, 그러했던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 전파자로, 복음 전파자로 전향하게 되었는지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자신이 그렇게 변화된 것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보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사람들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지도 않았다고 강조함으로써, 직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전향의 계기를 강조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태에서부터 불러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사건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사도행전에 따르면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의 진술은 그 놀라운 일을 경험한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커스로 되돌아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사건의 장소가 다마스커스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된 사건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지만, 인간의 경험적 차원에서 이해할 때 어떤 성격의 사건이었는지는 충분히 알 길이 없다. 여기서 한 실마리는 16절의 ‘나에게’라고 번역된 구절로서, 이 구절은 ‘내 안에’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심리적 경험, 또는 지적 충격과 변화의 경험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 똑 같은 사건을 전하는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가시적으로 목격한 사건(9:1; 15:8)으로서 성격을 암시한다. 갈라디아서의 이 대목에서도 사실은 ‘나타내보이셨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내 안에’라는 말은 ‘나에게’로 번역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쨌든 이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매우 다양한 이해방식이 있으나, 지금 갈라디아서 본문을 따를 때, 그 계시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2.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바울의 행보 - 1:18~24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바울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인간적 권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울은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의 권위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복음이 그들의 권위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바울은 놀라운 경험을 한 후 곧바로 아라비아로 향했다. 여기서 아라비아는 나바테아 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울은 거기서 선교활동을 곧바로 개시한 것이다. 그가 다마스커스로 되돌아온 것은 나바테아의 왕 아레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린도후서 11:32~33).

삼년 뒤에야 바울은 비로소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 진술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어떤 인간적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약화시키지만, 이 대목에서도 바울은 단지 만났을 뿐 어떤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두 사람, 게바 곧 베드로와 야고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뒤에 바울은 다시 이방지역으로 향한다.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이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행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유대 지역의 교회들은 바울을 알지 못한다. 그저 소문으로만 듣고 알고 있을 뿐이다. 바울이 처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그 즈음 유대 지역의 교회들과 바울의 입장은 갈등을 노정하지 않은 것 같다. 바울이 전에 없애버리려 했던 그 믿음을 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유대 지역의 교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언급에서 그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유대교 자체가 이방인 선교를 부정하지 않았던 만큼 그 선교대상의 확대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전체 4
  • 2013-11-22 10:58
    역시 생생한 현장 중계로군요.
    rn정리하는 일이 성서연구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앗아가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rn오히려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기를...

  • 2013-11-22 16:21
    아직까지는 즐겁습니다요! 성경공부에 오지 못하신 교우 여러분의 댓글이 있으면 더더욱 즐거울 것 같습니다요!

  • 2013-11-23 09:02
    사도바울의 저 단호한 '저주'의 선언을 보니, 그리 말랑말랑(?)한 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네요. 싸워할 부분에서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는 대단한 투사의 모습이 엿보이는 구절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게을러져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아 겨울이 다가오네요...

  • 2013-11-23 13:14
    그렇지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투사의 면모가 두드러지지요. 아주 단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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