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12] 믿음으로 의롭게 - 갈라디아서 2:15~2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12-18 22:16
조회
882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12월 18일 / 최형묵 목사


제12강 믿음으로 의롭게 - 갈라디아서 2:15~21


1. 유대인과 이방인 - 2:15


안디옥 회식 사건에 대한 언급 이후 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 주장은 베드로에 대한 질책에 이어지고 있어, 베드로에게도 동일하게 주장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이 편지에서의 주장은 사후적으로 정리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본격적인 주장의 첫 대목에서 바울은 먼저 당시 유대교적 관념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유대인’ 대 ‘죄인인 이방인’이라는 표현은, 이방인은 존재 자체로 ‘죄인’이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은 죄인이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유대인 가운데도 죄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 가운데 죄인은 율법에 의해 용서받을 수 있다. 반면에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에게는 아예 그런 가능성조차 없다. 그것이 당시 유대교적 관념이었다.


2. 믿음으로 의롭게 - 2:16~21


바울은 당시의 유대교적 관념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의 핵심이자 동시에 사도 바울의 핵심 메시지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일까?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겨지는 내용을 명문화한 법조문이다. 이 점에서 보면,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말은 그 법조문들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은 단지 법조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를 말하고 있다. 법조문에 의해 떠받쳐지는 하나의 체제,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격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자격없는 사람, 곧 ‘죄인’으로 나누는 체제를 말한다. 율법이 논란이 될 때 현실적으로 가장 일차적인 초점이 된 것은 할례 문제였다. 율법이 그냥 법조문이거나 도덕율이었다면 자격에 상관없이 그 법조문 내지는 도덕율을 따르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런데 핵심적 사안으로 할례를 요구했다는 것은 가장 일차적으로 구원의 공동체 성원으로서 자격을 문제시했다는 것을 말한다. 곧 할례를 받아 유대인 공동체 안에 들어와야 그 다음에 구원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율법의 준수 여부가 현실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율법은 단순히 도덕율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체제를 말하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을 확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항상 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없는 대상들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개방적인 공동체라 하더라도 그 현상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체제 안에 있는 사람과 체제 밖에 있는 사람이 나뉜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 현실을 말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법조문에 의해 뒷받침되는 체제의 논리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자격을 문제시하는 논리를 뛰어넘는다. 누구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종의 노파심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여 주심을 구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입니까?” 이 물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실제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나 완벽할 수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상황을 말한다. 여전히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는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쉽게 말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죄 짓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또 다른 올가미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냐고 바울은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숱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실존적 정황,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은, 단지 어떤 체제 밖에 있다는 것만으로 ‘죄인’이 되는 삶의 방식에 더 이상 매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적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자격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 상황, 그 상황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마다 사람들의 의지 또는 양심에 상관없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자격여부를 결정하고, 의인과 죄인을 나누는 삶의 방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나는 율법 앞에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진정한 내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율법 앞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말은, 율법에 의존해 자기존재를 인정받았던 삶은 율법의 해악과 무용성이 드러나는 순간과 더불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를 죄인으로 배제하고 스스로만 의롭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이 주는 보장을 떨쳐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림으로써 전적으로 그런 삶의 방식을 무너뜨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삶의 의지만이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한다.

줄여 말하면,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방향에서 율법을 따르는 삶의 무용성을 말함과 동시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진실을 말한다. 첫 번째는 처음부터 의인과 죄인을 갈라는 놓는 삶의 방식이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격과 업적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부정이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소용없게 되었고,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런 삶의 방식에 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 혁명을 말함과 동시에 진정한 삶의 주체로서 자기자신의 근본적 혁명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선언적 주장을 펼쳤다면, 이후 내용에서 이를 더 상세하게 논증한다.
전체 6
  • 2013-12-07 15:05
    '기독교'와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쓰든 의미상 상관 없습니다.
    rn'아랍어'가 아니고 '아람어'입니다. 히브리어까지 포함하여 다 셈어이지만 구별됩니다.
    rn그리고 내용중에 '이집트 갈데아'는 중간에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이집트 또는 갈데아... 갈데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오늘날 이라크)입니다.
    rn역시 훌륭한 생중계 고맙습니다.

  • 2013-12-07 21:09
    수정해서 다시 올린 파일입니다.

  • 2013-12-09 16:41
    늘 요약본을 봐오지만, 참 대단하십니다...
    rn제자가 훌륭해서 그런지, 가르침이 특별해서 그런지... 아뭏든 존경스럽습니다^^

  • 2013-12-09 16:42
    둘 다 훌륭해서 그렇습니다. ^^

  • 2013-12-09 23:12
    더욱 정진 하겠습니다. 불끈!!!

  • 2013-12-10 00:48
    요약본이라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rn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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